29화
열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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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세림이 열 시에 왔다.
앞치마를 매고 진열대부터 봤다. 파란 줄 칸에 서른다섯 장이 있다.
"하나 모자라네."
"네가 가져갔잖아."
"알아."
세림은 그러고 재고를 셌다. 소리를 내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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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에 겉봉 손님이 왔다.
어제 담아 둔 스물세 장을 내주었다. 손님이 봉투를 하나씩 넘겨 보다가 열두 번째에서 멈췄다.
"이거 오씨 맞죠?"
"맞습니다."
"어, 맞네."
손님이 값을 치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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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카운터로 왔다.
"오씨가 뭐."
"손님 목록에 오씨가 하나 있었어."
"…….."
"그래서?"
"그래서는 없어."
세림이 웃었다. 어제는 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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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 반에 한 사람이 더 왔다.
마흔쯤 된 남자였고 서서 십 분쯤 봉투를 골랐다. 고르다가 카운터로 왔다.
"편지도 써 주십니까."
"씁니다."
"…….."
"뭘 쓰는지 여쭤도 됩니까."
"항목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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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이요."
"하고 싶은 말을 낱개로요. 문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남자가 잠깐 생각했다.
"두 개밖에 없는데요."
"둘이면 둘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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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두 개를 말했다.
나는 적었다. 적고 나서 하나를 짚었다.
"이건 손님이 보신 겁니까, 들으신 겁니까."
"…….."
"들었습니다."
"그러면 들었다고 쓰겠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조금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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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진열대 쪽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다가 내가 고개를 들자 봉투를 다시 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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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시에 문을 잠갔다.
토요일 점심에는 한 시간 닫는다. 가게를 연 첫해부터 그랬고 손님들도 안다.
골목을 나와 왼쪽으로 두 번 꺾으면 국숫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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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우리를 보고 고개만 끄덕였다.
자리가 정해져 있다. 창 쪽 두 번째다. 세림이 안쪽에 앉고 내가 바깥쪽에 앉는다.
국수가 나왔다.
세림이 고춧가루 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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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넣었다.
한 번 흔들고 두 번째를 흔들 때 손목을 한 번 더 쳤다. 늘 하던 그대로다.
나는 그것을 보고 젓가락을 들었다.
"수진아."
"응."
"어제 내가 셈 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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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어디가."
"세 개만 셌잖아."
세림이 국수를 뒤적였다.
"어머니가 한 거 세 개. 내보낸 거, 봉투, 네 편지."
"응."
"내가 한 건 안 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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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들었다.
세림은 세는 사람이다. 흰 큰 것 스물넷. 안 틀린다.
어제 열두 밤이라고 고쳤다.
"네가 한 게 뭔데."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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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가 뭔데."
"…….."
"십 년."
세림이 젓가락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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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나 내보낸 건 어머니가 한 거야. 봉투도 어머니 거고 네 편지도 어머니 거야. 그건 다 남이 한 거니까 손해면 손해고 이득이면 이득이야."
세림이 말했다.
"그건 세면 돼."
"…….."
"내가 여기 십 년 있은 건 내가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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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느 쪽에 넣어."
세림이 나를 봤다.
"이득이야, 손해야?"
"…….."
"어느 쪽에 넣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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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을 안 했다.
세림이 자기 국수를 봤다.
"어느 쪽에도 안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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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고 싶어서 있었는데."
세림이 그렇게 말하고 멈췄다.
"있고 싶었던 게 어머니가 만들어 준 거면."
"…….."
"내가 있고 싶어 한 것도 어머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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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수를 먹지 않고 있었다.
"세림아."
"기다려 봐."
세림이 손바닥을 폈다.
"내가 지금 세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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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세기 시작했다.
"스물둘에 네가 갔으면 나는 혼자였어. 안 갔으니까 안 혼자였고. 그러면 안 혼자인 십 년이 이득인데, 그 십 년 동안 내가 한 게 있잖아. 아침에 나오고 봉투 세고 너 밥 안 먹으면 국수 사러 가고. 그건 내가 한 거야. 근데 그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어머니가 만든 거면 그 자리에서 내가 한 것도 어머니가 만든 거고, 그러면 내가 한 게 뭐가 남아. 아무것도 안 남아. 아무것도 안 남으면 그건 계산이 안 되잖아. 계산이 안 되는데 나는 어제 남는 장사라고 했어. 남는 장사라고 하려면 뭘 넣고 뭘 빼는지 알아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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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의 말이 빨라졌다.
숨을 안 쉬고 있었다.
여섯 해쯤 전에 한 번, 그리고 봄에 한 번, 세림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두 번 다 무언가를 덮을 때였고 나는 두 번 다 안 끊었다.
오늘은 덮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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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아."
"안 끊었으면 좋겠어."
"안 끊어."
"…….."
"그럼 계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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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계속할 게 없어."
세림이 손바닥을 내렸다.
"방금 다 했어."
세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세다가 없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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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뜨고 안 먹었다. 숟가락을 그릇에 도로 놓았다.
"수진아."
"응."
"나 이런 거 처음이야."
"…….."
"세다가 없어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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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김치를 한 접시 더 놓고 갔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그 접시를 세림 쪽으로 밀었다.
세림이 안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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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나 어제 그 말 왜 했을까."
"…….."
"남는 장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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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춧가루 통을 들었다.
내 그릇에 한 번 넣었다. 나는 원래 안 넣는다. 여덟 해 동안 안 넣었고 세림도 그걸 안다.
세림이 그걸 봤다.
"너 그거 왜 넣어."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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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그 말 네 말투야."
세림이 말했다.
"뭘 넣고 뭘 빼고, 확인된 거랑 아닌 거 나누고. 그거 내 말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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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을 내려놓았다.
내 말투인 것은 맞다. 오늘 아침에도 손님 앞에서 그걸 했고 세림이 옆에서 봤다.
그걸 하면 손님 얼굴이 편해진다. 나는 그것 때문에 여덟 해를 먹고살았다.
편해지는 것과 나아지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나눠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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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제 그렇게 말한 건 그렇게 말하면 정리가 되니까 그런 거야. 네가 손님들한테 하는 거 옆에서 봤잖아. 손님들 그거 듣고 나가면 얼굴이 편해져."
"…….."
"나도 편해지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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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해졌어?"
"어제는."
세림이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오늘 아침에 눈 뜨니까 안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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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가 불었다.
세림이 그것을 몇 젓가락 먹었다. 불은 국수를 먹으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그동안 내 것을 먹었다. 고춧가루를 넣은 쪽이 매웠다.
먹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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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로 돌아와서 세림이 앞치마를 맸다.
매고 나서 가방을 열었다.
봉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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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줄이었다.
어제 가져간 것이다. 겉면에 아무것도 없었다.
세림이 카운터에 놓았다.
나는 손을 안 뻗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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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어?"
"썼어."
"…….."
"한 장."
세림이 봉투를 손끝으로 밀었다.
"안 부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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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집었다.
집으면 안다. 안에 종이가 들면 두께가 생기고, 백 그램이면 손톱에 걸리고 팔십이면 미끄러진다.
팔십이었다.
한 장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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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사람은."
"안 썼어."
"…….."
"쓸 거야?"
세림이 대답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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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서랍 아래 칸을 봤다.
거기 상자가 있다. 완성해 놓고 안 찾아간 편지를 넣는 데다. 여덟 해 동안 열한 통이 모였고 이번 달에 하나가 나갔다.
세림은 그 상자를 안다.
"거기 넣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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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내가 쓴 거 넣는 데야."
"알아."
"…….."
"그래도 거기 넣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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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랍을 열었다.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봉투가 열 개 있었다. 겉면에 이름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세림 것을 맨 위에 놓았다.
놓고 나서 옆으로 밀어 아래쪽에 끼웠다. 맨 위에 있으면 열 때마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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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덮었다.
서랍에 넣고 밀었다.
세림이 진열대로 갔다. 오후 손님이 오기 전에 봉투를 정리한다.
정리는 오전에 이미 했다. 아침에 세고 진열까지 맞춰 놨는데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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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줄 칸에 서른다섯 장이 있었다.
세림이 그것을 세는 소리가 났다.
서른다섯까지 세고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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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상자에 열한 통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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