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청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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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가게를 안 연다.
일요일에 문을 연 적이 두 번 있고 두 번 다 예식장 축사 때문이었다.
오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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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서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왔다.
반으로 접힌 것이다. 위쪽이 안으로 접혀 들어가 있고 아래쪽 여백만 밖에 있다.
가방에 넣어 와서 책상에 놓았다.
놓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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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그것을 봤다.
접힌 채였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널면서 세 번쯤 방 쪽을 봤다.
빨래집게가 두 개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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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어제 넣어 달라고 한 봉투는 가게 서랍에 있다.
상자에 열한 통이 있고 그중 하나는 겉면이 백지다. 나머지 열 통은 여덟 해 치가 쌓인 것이고 이름이 적힌 것도 있다.
일요일에는 그 상자를 안 생각하려고 했는데 빨래를 널면서 두 번 생각했다.
세림이 오늘 뭘 하는지는 안 궁금했다. 그건 물어보면 되는 것이라 궁금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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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시에 방에 들어갔다.
책상 앞에 앉아서 종이를 앞으로 당겼다. 당기고 손을 뗐다.
여드레 됐다.
이재가 이걸 접어서 카운터에 놓고 간 것이 지난 월요일이다. 그날 나는 아래쪽 두 줄만 보고 위쪽은 안 폈다.
그 뒤로 여섯 번쯤 서랍을 열었고 여섯 번 다 안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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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편 이유는 알고 있었다.
손님이 맡긴 것은 손님이 보라는 데까지만 본다. 접어서 준 것은 접힌 데까지만 보는 것이다.
그건 규칙이 아니라 습관이다.
여덟 해 동안 아무도 그걸 어기라고 한 적이 없어서 규칙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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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는 이제 손님이 아니다.
지난 월요일에 공책의 그 줄에 내가 줄을 그었다. 이름 위에만 그었고 번호는 뒀다.
줄을 그은 사람의 물건을 나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른다. 그런 경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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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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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에 청색 글씨가 있었다.
세 줄이었다.
십 년 된 볼펜 자국이라 색이 가라앉아 있었다. 파랗다기보다 회색에 가까운데, 검정 옆에 놓으면 파란 쪽이다.
아래쪽에 검정 두 줄이 있었다.
한 장에 두 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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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이번 주에 갑니다.`
`가기 전에 한 번 뵙고 싶습니다.`
`날짜와 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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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이 있었다.
두 장짜리 편지였고 첫 장은 길었다. 열흘 전에 이 사람이 카운터에서 그걸 읽고 길게 썼다고 했다. 자기가 짧게 쓰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도 했다.
첫 장에 뭘 썼는지 나는 모른다. 그건 그가 갖고 갔다.
두 번째 장만 여기 있고, 길게 쓴 사람이 마지막 장에서 세 줄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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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줄이 거기서 끊겨 있었다.
`는` 다음에 아무것도 없었다.
받침 다음에 획이 하나 시작되다 만 자국이 있었다. 자음 하나를 긋다가 뗀 자리다. 잉크가 점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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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점을 봤다.
십 년 전에 이 사람은 여기까지 쓰고 멈췄다. 다음에 올 것은 날짜와 자리다. 그걸 쓰면 편지가 끝난다.
끝내지 못했다.
끝내지 못한 채로 접어서 봉투에 넣고 우체국 창구에 냈다. 등기로 냈다. 등기는 사람이 나와서 받아야 한다.
받는 사람은 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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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래쪽 두 줄을 봤다.
`이천십육년 이월 이십일 저녁 일곱 시`
`시청 앞 정류장`
검정이었다.
십 년 뒤에 같은 사람이 같은 종이의 아래를 채웠다. 위와 아래 사이에 십 년이 있고, 그 십 년이 색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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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으로 쓰면 그때 쓴 게 됩니다.
지난 월요일에 그가 한 말이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문장으로만 들었다.
오늘 종이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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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종이를 다시 접지 않았다. 접으면 위와 아래가 갈라지고, 갈라지면 한 장에 두 색이 있는 것이 안 보인다.
펴 놓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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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쯤에 이면지를 한 장 꺼냈다.
꺼내서 앞에 놓고 펜을 들었다. 뭘 쓸지는 안 정했다.
이 일을 하고부터 나는 뭘 쓸지 안 정하고 펜을 든 적이 없다. 손님이 항목을 주면 그다음에 든다.
십 분 있다가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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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도 안 썼다.
할 말이 없어서 안 쓴 건 아니다. 항목으로 만들면 세 개쯤 나온다. 그건 셀 수 있다.
손님이 항목 셋을 주고 가면 그 사이를 내가 채운다. 채우는 게 내 일이다.
내 것은 셋인 채로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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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지를 뒤집어 놓았다.
뒤집으면 뒷면이 나오고 뒷면은 아무것도 없는 종이다. 백지가 두 번 되는 셈인데 그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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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 반에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접수 공책이다. 어제 가게에서 가져왔다. 왜 가져왔는지는 그때 안 정했다.
백 몇 번째 줄을 폈다.
이름 위에 줄이 있고 번호가 그 아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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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앞에 십 분쯤 있었다.
할 말을 정하려고 했다.
정하면 대필이 된다. 나는 그것을 열 달 전에 손님한테 말한 적이 있고 지난달에는 나한테 말했다.
정하지 않고 걸면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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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볼 것이 하나였다.
그건 정한 게 아니라 원래 하나였다.
번호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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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신호에서 받았다.
"여보세요."
"이재 씨."
"…….."
"수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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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났다. 밖인 모양이었다.
"일요일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
"밖이십니까."
"극장 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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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책상에 종이가 펴져 있었다.
"이재 씨."
"네."
"두고 가신 종이 오늘 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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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자 있었다.
"위쪽도요?"
"위쪽도요."
"…….."
"죄송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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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접었으니까 제가 접은 겁니다."
그가 말했다.
"두고 가신 것도 이재 씨입니다."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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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그가 자리를 옮기는 것 같았다.
"수진 씨."
"네."
"뭐 물어보시려고 거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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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으십시오."
나는 종이의 아래쪽 두 줄을 봤다.
"그날 거기 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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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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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그가 더 말하지 않았다. 몇 시에 갔는지 얼마나 있었는지 말 안 했고 나도 안 물었다.
"…….."
"비는 안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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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 말을 하고 조용해졌다.
밖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한 대였고 천천히 갔다.
"이재 씨."
"네."
"저는 그날 그 편지 못 봤습니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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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셨습니까."
"지난주에 알았습니다."
"…….."
"수진 씨가 말씀해 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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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씨."
"네."
"그날 몇 시까지 계셨습니까."
"…….."
"그건 안 물으시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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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제가 대답하면 수진 씨가 그걸 세게 됩니다."
나는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세면 안 됩니까."
"…….."
"세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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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가운데 접힌 자리가 아직 뜬다. 여드레 접혀 있었으니 눌러도 금방 안 눕는다.
"이재 씨."
"네."
"이거 돌려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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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수진 씨."
"네."
"그건 제가 부치려던 겁니다."
"…….."
"부치려던 건 받는 사람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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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받는 사람 거가 되려면 도착해야 한다. 도착 안 한 것은 부친 사람 것이다. 여덟 해 동안 나는 그렇게 알았고 손님들한테도 그렇게 말했다.
반송된 편지는 쓴 사람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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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갖고 있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네."
"…….."
"수진 씨."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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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다음 달에 문을 엽니다."
그가 말했다.
"조명을 새로 답니다. 한 달쯤 걸립니다."
"…….."
"그러시군요."
"오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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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니다."
"…….."
"그냥 어디 있는지 말씀드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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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책을 봤다.
이름 위에 줄이 있고 그 아래 번호가 있다. 지난 월요일에 그은 줄이고 자로 안 대고 그었다.
줄이 조금 비뚤다.
"이재 씨."
"네."
"오늘 걸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안 걸었습니다."
"…….."
"압니다."
전화가 끊겼다.
먼저 끊은 쪽이 어디인지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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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종이가 펴져 있었다.
청색 세 줄과 검정 두 줄이 한 장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접지 않고 책 사이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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