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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나에게 보낼 편지를 나에게 맡겼다

27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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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문이 안 잠겨 있었다. 손잡이가 돌아갔다.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세림이 카운터 안쪽에 있었다. --- 앞치마를 안 맸다. 무릎 위에 얹어 놓고 앉아 있었다. 매듭이 그대로 안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손에 종이가 한 장 있었다. 내가 어제 파란 줄 칸에 세워 넣은 것이다. --- "왔어." "응." "…….." "언제 왔어." "여덟 시." --- 나는 앞치마를 걸고 카운터로 갔다. 세림이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안 받았다. "두 해 치야." 내가 말했다. "알아." 세림은 그 말만 했다. --- 세림은 말이 빠른 사람이다. 버스 얘기를 하면 몇 번인지 어디서 탔는지 앞에 탄 사람이 뭘 들고 있었는지까지 나온다. 문장이 길어질 때는 다른 이유가 있고 나는 그 신호를 안다. 오늘은 짧았다. 두 자, 세 자로 끊겼다. 오늘 세림은 거짓말을 안 하고 있었다. --- 세림이 발치에서 보퉁이를 들어 카운터에 올렸다. 천으로 싼 것이고 매듭이 하나였다. "열어 봐." --- 봉투였다. 파란 줄 봉투다. 세로로 세워 묶여 있었고 종이끈이 가운데를 한 번 돌았다. 나는 끈을 풀었다. --- 세지 않았다. 세림은 세는 사람이고 나는 만지는 사람이다. 한 장씩 넘겼다. 봉투는 손끝에 걸린다. 안에 종이가 들면 두께가 생기고 두께가 생기면 넘길 때 소리가 달라진다. 서른여섯 장이 다 같은 소리였다. 이 소리로 나는 손님이 편지를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안다. 넣고도 안 넣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넣었다고 믿는데 책상에 두고 온 사람이 있다. --- 겉면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받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없다. 안쪽을 벌려 봤다. 풀칠 자리가 마른 그대로다. 한 장도 안 썼다. "한 장도 못 썼어." 세림이 말했다. --- "이 주 됐어." "…….." "가져간 게." "열두 밤 됐어." 세림이 그렇게 고쳤다. 세는 사람이라 그렇다. --- 나는 봉투를 도로 세워 놓았다. 카운터 아래 서류함을 열었다. 세림의 항목 종이가 거기 있었다. 손님 것은 셋째 칸에 넣는다. 세림 것도 거기 넣었다. 꺼내서 폈다. --- `열일곱 겨울, 현관 비밀번호` `졸업식 날 아침` `이천십육년 이월, 어머니가 준 봉투` --- 세림이 그 종이를 봤다. "그거 아직 있었네." "있지." "…….." "왜 안 썼어." --- 물어볼 줄 알았다. 여덟 해 동안 나는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손님들은 늦으면 늦었다고 하지 왜냐고는 안 묻는다. 값을 안 냈으니 물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림은 물었다. "세 번째 줄 때문에." --- "그게 왜." "사실이 아니어서 못 쓴 건 아니야." 나는 종이를 카운터에 놓았다. "사실이라서 못 썼어." --- 세림이 나를 봤다. "무슨 말이야." "그 봉투 우리 엄마가 넣었어." --- 가게가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자전거가 지나갔다. 벨을 두 번 눌렀고 두 번 다 다른 데를 향한 소리였다. "어머니가." "응." "…….." "어머니는 나한테 준 적 없다고 했어." "알아. 그 말도 들었어." --- "그럼 둘 중에 뭐가 맞아." "둘 다 엄마가 한 말이야." 나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숨을 한 번 쉬었다. "나한테는 썼다고 했어. 열흘 전에. 앉아서." --- 세림이 항목 종이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당겨서 세 번째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 짚고 안 뗐다. "뭐라고 쓰셨는데." --- 여기서 멈출 수 있었다. 멈추면 세림은 십 년 전에 받은 봉투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만 알고 하루를 지나갈 것이다. 그건 좋은 소식에 가깝다. 누군가 넣어준 것이 확실해졌으니까. 멈추는 것이 대필이다. 항목에 없는 것은 안 쓴다. 세림은 손님이 아니다. --- "방을 구하라고." 세림의 손끝이 종이에서 떨어졌다. "…….." "그 줄이야?" "그 줄이야." --- 세림은 오래 있었다. 농담을 하지 않았다. 정색할 자리를 농담으로 넘기는 사람인데 오늘은 넘길 것을 안 꺼냈다. "그러니까." "응." "내보낸 사람이랑." "…….." "내가 십 년 고마워한 사람이 같은 사람이네." ---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하려면 다른 사실을 대야 하는데 나한테 없다. 있는 것을 다 꺼내 놓았고 남은 것이 없다. 세림이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 세림이 일어나서 진열대 쪽으로 갔다. 가서 아무것도 안 만졌다. 손을 뒤로 하고 봉투 진열을 보고 섰다. 흰 큰 것 스물넷, 흰 작은 것 스물아홉, 크라프트 열넷. 세는 소리가 안 났다. "수진아." "응." "어머니 지금 잘 계셔?" "…….." "그저께 봤어. 밥 차려 주셨어." 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듣고 싶어서 물은 것 같지는 않았다. --- 한참 있다가 세림이 물었다. "너 그거 언제 알았어." "열흘 전." "…….." "열흘 동안 뭐 했어." ---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봉투를 세었고 정류장에 갔고 사진을 봤고 발주를 넣었다. 그중에 세림에게 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열흘 동안." 내가 말했다. "안 물었어." --- 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카운터 아래를 봤다. "나도 안 물었어." "…….." "뭘." "네가 요새 이상한 거." --- 나는 다른 것을 물어야 했다. 물어야 하는데 순서가 있었다. 이 사람한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오늘 처음 생겼고, 그건 오늘 아니면 또 미뤄진다. "세림아." "응." "십 년 전에 우리 엄마한테 편지 보냈어?" --- 세림이 나를 봤다. "보냈어." 부인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고도 안 했다. "이월 스무날쯤." "…….." "그건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말해 줬어." --- "뭐라고 썼는지도 말했어?" "언제까지요." 세림의 어깨가 한 번 움직였다. "넉 자라고 하셨어." "…….." "넉 자 맞아." --- "물음표는." 내가 물었다. "찍었어." "…….." "확실해?" "찍었어. 그거 찍고 한참 봤어." "…….." "어디서 썼어." "고시원에서." 세림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봉투는 사거리 문구점에서 샀어. 파란 줄 있는 걸로 골랐어. 받은 거랑 같은 거로." "…….." "왜 같은 걸로 샀어." "같은 거면 알아보실까 봐." ---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없었다고 한 게 아니라 기억이 안 난다고 했고, 나는 있었으면 있었다고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걸 그날 밤에 적어 두지도 않았다. 편지는 탔다. 태운 사람이 기억을 하나 갖고 있고 쓴 사람이 기억을 하나 갖고 있다. 둘이 한 자리에서 어긋난다. --- 어긋나는 자리는 어느 쪽도 못 고친다. 물음표가 있었으면 그건 묻는 말이다. 언제까지 나가야 하느냐를 물은 것이다. 없었으면 묻는 말이 아니다. 나는 여덟 해 동안 손님들에게 이 대목을 설명해 왔다. 확인이 안 되는 항목은 세 가지 중에 하나로 처리한다고. 안 쓰거나, 흐리게 쓰거나, 자리를 비워 둔다고. 정직한 건 비우는 쪽이라고도 했다. --- "세림아." "응." "세 번째 항목 어떻게 할까." 세림이 종이를 봤다. "방법이 몇 개야." "세 개." --- "안 쓰거나, 흐리게 쓰거나, 비워 두거나." 세림이 그 세 개를 손가락으로 세었다. 소리를 안 내고 셌다. "네 번째는 없어?" "없어." "…….." "그럼 오늘은 안 고를래." --- 세림이 일어섰다. 무릎에 있던 앞치마를 들고 목에 걸었다. 뒤로 돌려 매면서 끈을 한 번 당겼다. 매듭이 바깥으로 나왔다. "열 시 다 됐어." 세림이 말했다. "오늘 겉봉 남았지." --- 나는 항목 종이를 서류함에 도로 넣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그대로 두었다. 세림이 진열대로 갔다. 파란 줄 칸 앞에 서서 잠깐 보고, 서른여섯 장 묶음을 들어 그 칸에 넣었다. 칸이 찼다. --- "일흔둘 오면 어떡해." 세림이 물었다. "두 칸 써야지." "…….." "칸 하나 더 있어?" "만들면 돼." 세림이 재고를 세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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