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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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종이를 붙인 것은 그다음 주였다.
무엇을 적을지 사흘 걸렸다. 사흘 동안 세 번 썼고 세 번 다 버렸다.
첫 번째는 길었다. 여덟 해 동안 고맙다는 말이 들어갔다.
두 번째는 이유를 적었다. 이유를 적으니 변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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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이렇게 됐다.
`이달 말까지 합니다.`
`맡기신 것 있으신 분은 찾아가 주십시오.`
두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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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그것을 붙였다.
안쪽에서 테이프를 붙이면 밖에서 종이가 흔들린다. 바깥에서 붙여야 안 흔들린다.
세림이 밖으로 나가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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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부터 손님이 조금 늘었다.
닫는다고 하면 오는 사람이 있다. 여덟 해 동안 지나다니기만 하던 분들이다.
겉봉을 맡기는 분이 많았다. 겉봉은 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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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부탁하는 분도 있었다.
두 분 중 한 분은 썼고 한 분은 못 썼다.
쓴 것은 짧은 것이었다. 감사 카드 넉 줄이고 항목이 둘이었다. 손님이 준 것에서 안 벗어나면 손이 나갔다.
못 쓴 것은 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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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쯤 지나서 나는 그것을 알았다.
내가 쓰는 것과 못 쓰는 것 사이에 선이 있고, 그 선은 준 것을 벗어나느냐 아니냐에 있었다.
여덟 해 동안 벗어나는 것이 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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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쓴 손님에게는 값을 안 받았다.
세 분이었다. 세 분 다 돈을 놓고 가려고 했고 두 분은 도로 가져갔고 한 분은 놓고 갔다.
놓고 간 것은 서랍에 넣었다. 어디에 쓸지는 안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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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오일에 손님이 하나 왔다.
예순 몇쯤 된 남자였다. 문 앞에서 종이를 읽고 들어왔다.
"저기."
"네."
"여기 제 거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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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함이요."
"곽인수요."
나는 공책을 폈다.
앞에서 서른몇 장 넘긴 자리에 있었다. 줄이 안 그어져 있다.
날짜가 육 년 전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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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있어요?"
"육 년 됐습니다."
남자가 카운터를 짚었다.
"그거 아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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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랍 아래 칸을 열었다.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이름 있는 것 일곱 중에 곽인수가 있었다.
두 장짜리다. 두께로 안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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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그것을 받았다.
받아서 겉면을 봤다. 이름 석 자가 내 글씨로 적혀 있다.
"이거."
"네."
"…….."
"제가 쓴 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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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썼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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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봉투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뒷면에 안 적는다.
"안 열어 보십니까."
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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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열래요."
"…….."
"왜요."
"열면 지금 읽는 거잖아요."
남자가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육 년 전에 읽었어야 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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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은요."
"안 받습니다."
"받으셔야죠."
"육 년 전에 받았습니다."
남자가 잠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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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안 냈는데요."
나는 공책을 봤다.
값 칸이 비어 있었다.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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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지갑을 꺼냈다.
육 년 전 값을 지금 값으로 냈다. 나는 그것을 받았다.
받고 공책의 그 줄에 줄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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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네."
"이거 왜 여태 갖고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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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질문에 답을 준비한 적이 없다.
"안 버립니다."
"그게 답니까."
"…….."
"그게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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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문 앞까지 갔다가 봉투를 다시 꺼냈다.
꺼내서 겉면을 한 번 더 봤다.
"선생님."
"네."
"이 글씨 안 바뀌셨네요."
"…….."
"육 년 됐는데요."
"안 바뀌었습니다."
남자가 봉투를 도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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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문 앞에서 한 번 돌아섰다.
"저는 그날 못 부칠 거 알면서 부탁했어요."
"…….."
"아셨어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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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어요."
남자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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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진열대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하나 갔네."
"응."
"…….."
"몇 개 남았어."
"열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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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카운터로 왔다.
와서 상자를 봤다. 뚜껑이 열린 채로 있었다.
"수진아."
"응."
"저번에 내가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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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
"안 간 것끼리 있는 건 괜찮다고 했잖아."
"응."
세림이 상자 안을 봤다.
"하나 나가니까 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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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모르겠어."
세림이 그렇게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는데."
"…….."
"지금은?"
"지금도 맞는 것 같은데 좀 다르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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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뚜껑을 덮지 않았다.
"세림아."
"응."
"그 말 위로였어, 아니면 그냥 그렇게 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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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나를 봤다.
한참 봤다.
"나도 몰라."
"…….."
"그게 답이야?"
"응. 그게 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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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상자에서 손을 뗐다.
"근데 그거 물어봐 줘서 고마워."
"…….."
"왜."
"물어보면 내가 대답을 해야 되잖아."
세림이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대답하니까 내가 모른다는 걸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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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일에 어머니가 왔다.
두 번째다. 아니 세 번째다.
봉투를 들고 오지 않았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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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다며."
"응."
"…….."
"밥은."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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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손님 의자에 앉았다.
앉아서 진열대를 봤다. 백 그램이 아직 열일곱 장 있다.
"저거 안 팔렸네."
"세 장 팔렸어."
"…….."
"세림이가 한 장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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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진열대에서 눈을 안 뗐다. 백 그램은 맨 아래 칸에 있고 값표가 아직 꽂혀 있다.
한참 있다가 물었다.
"세림이 편지 썼니."
"쓰고 있어."
"…….."
"뭐라고."
"안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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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어섰다.
"그럼 됐다."
"엄마."
"…….."
"저 백 그램 가져갈래?"
엄마가 진열대를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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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가."
"그건 엄마 거야."
"팔라고 뒀잖아."
엄마가 문 쪽으로 갔다.
"안 팔리면 그건 그거대로 놔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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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구일과 삼십일에는 아무도 안 왔다.
봉투를 사러 온 사람이 둘 있었고 편지를 부탁한 사람은 없었다.
이틀 동안 나는 겉봉 열여섯 장을 썼다. 다 다른 이름이었고 다 손님 것이었다.
열여섯 장을 쓰는 동안 한 번도 안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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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일일이 마지막이었다.
수요일이었다.
세림은 수요일에 나가는 사람인데 그날은 안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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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까지 손님이 넷 왔다.
셋은 봉투를 샀고 하나는 겉봉을 맡겼다. 겉봉은 내일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내일은 없다고 말하려다 말고, 오늘 써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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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에 세림이 앞치마를 벗었다.
벗어서 못에 걸었다.
걸고 나서 다시 집었다.
"이거 가져갈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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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열쇠를 안 내놓았다.
나도 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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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꺼내 보퉁이에 쌌다.
열한 통이 들어갔다. 세림 것과 어머니 것이 그 안에 있다.
세림이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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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는 그대로 두었다.
봉투가 아직 많다. 파란 줄이 일흔 몇 장이고 흰 것도 남았다. 다 가져가려면 상자가 여럿 필요하다.
세림이 물었다.
"이거 어떡해."
"…….."
"두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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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지 뭉치와 접수 공책을 챙겼다.
공책에는 이름이 백 몇 개 있고 그중 절반에 줄이 그어져 있다. 오늘 아침에 한 줄을 더 그었다.
이재의 줄은 이름 위에만 그어져 있고 번호는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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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은 안 뗐다.
떼려면 사다리가 있어야 하고 사다리는 옆집에서 빌려야 한다. 빌리면 옆집이 묻는다.
그것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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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집에는 이달까지만 한다고 말했다.
방을 빼는 것은 아니다. 세는 석 달 치가 남아 있고 그건 그대로 두기로 했다.
석 달 뒤에 다시 정하면 된다고 했다.
주인이 그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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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껐다.
셔터를 내렸다. 세림이 반대쪽을 잡았다.
둘이 잡으면 소리가 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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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으로 나왔다.
세림이 앞치마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수진아."
"응."
"내일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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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
"국수 먹을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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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사거리 쪽으로 갔다.
가다가 한 번 돌아서 손을 들었다. 여덟 해 동안 퇴근하면서 손을 든 적이 없다.
나는 반대쪽으로 갔다.
열 걸음쯤 가다가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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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불이 안 들어와 있었다.
낮에는 원래 안 들어온다.
여백.
두 글자가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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