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안 물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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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에 세림한테 연락이 왔다.
`가게에서 볼래`
시각이 안 붙어 있었다. 여덟 해 동안 세림이 보낸 것 중에 시각이 없는 것은 없었다.
`몇 시`
`아무 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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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에 갔다.
셔터가 내려 있었다. 골목이 조용하고 옆집 세탁소만 열려 있다.
세림이 먼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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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앞에 서 있었다.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있었다. 여덟 해 동안 세림은 늘 뭔가를 들고 출근했다. 가방이거나 봉지거나 수레 손잡이거나.
"왔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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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셔터를 올렸다.
혼자 올리니까 소리가 났다. 골목 끝까지 가는 소리다.
세림이 반대쪽을 안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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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갔다.
불을 켰다. 진열대에 봉투가 그대로 있다. 이 주 전에 덮어 둔 그대로다.
먼지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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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진열대 앞으로 갔다.
파란 줄 칸을 봤다.
"몇 장 남았지."
"몰라."
"…….."
"세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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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세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어 셌다. 여덟 해 동안 하던 그대로다. 열까지 가면 한 번 끊고 다시 센다.
"마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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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남았네."
"일흔둘 들여왔으니까."
세림이 칸에서 손을 뗐다.
"서른하나 팔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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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그램은."
세림이 옆 칸으로 갔다.
열여덟 장 올려 둔 데다. 엄마가 두고 간 것이고 한 장에 오백 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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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장."
"…….."
"열두 장 팔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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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들었다.
세림이 여섯 장을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가장자리가 안 눌린 낱장이다.
"이건 어떡해."
"몰라."
"…….."
"가져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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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여섯 장을 도로 놓았다.
"안 가져가."
"왜."
"내 거 아니야."
세림이 칸에 손을 짚었다.
"어머니가 여기서 팔라고 두고 가신 거잖아. 다 팔리면 다 팔린 거고 안 팔리면 안 팔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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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세림이 손님 의자에 앉았다. 여덟 해 동안 거기 앉은 적이 없다.
앉고 나서 한 번 움직였다. 높이가 안 맞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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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나 일 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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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운터를 짚고 있었다.
"어디."
"도매상."
"…….."
"우리 다니던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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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문구?"
"응."
세림이 손을 무릎에 놓았다.
"사장님이 저번에 물어보셨어. 가게 접었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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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물어보셨는데."
"그날."
세림이 그렇게 말했다.
"국수 먹고 오후에 갔다고 했잖아. 거기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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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받았다.
그날 세림이 어디 간다고만 했고 나는 안 물었다.
"왜 안 말했어."
"안 됐으니까."
"…….."
"어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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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자리야."
"재고."
세림이 말했다.
"들어오고 나가는 거 세는 자리야. 사장님이 나 세는 거 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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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여덟 해 동안."
세림이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내가 거기서 받아 오면서 늘 셌잖아. 차에 싣기 전에 한 번 세고 내려서 또 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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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세림이 두 번 세는 것을 나는 여덟 해 동안 봤다. 두 번 세면 안 틀린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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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야."
"다음 주 월요일."
"…….."
"빠르네."
"빠른 게 좋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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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접힌 것이고 두 번 접혀 있었다. 펴서 카운터에 놓았다.
이력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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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봤다.
손은 안 댔다.
"이거 네가 썼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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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날 밤에."
세림이 종이를 손끝으로 반 뼘 밀었다.
"국수 먹고 가서 그날 밤에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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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봤다.
칸이 있고 칸마다 글씨가 있었다. 세림 글씨는 작고 위로 올라간다.
경력 칸에 두 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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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 ~ 2024.08 편지대필점 여백`
`재고 관리 · 매입 · 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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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이 없네."
"없어."
세림이 말했다.
"쓰려다가 못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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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쓰려고 했는데."
"직원이라고 쓰려니까 월급 받는 사람 같고."
세림이 종이를 봤다.
"동업자라고 쓰려니까 그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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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비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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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칸을 봤다.
비어 있었다.
여덟 해 동안 세림이 뭐였는지 나는 한 번도 이름을 안 붙였다. 붙일 일이 없었다. 둘이서 하는 데라 부를 일이 없었다.
손님들은 세림을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나도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둘 다 사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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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나 이거 너한테 안 물어보고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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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에서 눈을 안 뗐다.
"그래."
"…….."
"화 안 나?"
"왜 화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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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해 동안 종이 쓸 일 있으면 너한테 물어봤잖아."
세림이 말했다.
"세금 내는 것도 묻고, 주인집에 보내는 것도 묻고, 도매상에 보내는 것도 묻고."
"…….."
"그건 가게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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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네 거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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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종이를 다시 봤다.
두 줄 중에 아래 줄에 세 가지가 적혀 있다. 재고 관리, 매입, 접객.
접객은 내가 한 것이다.
손님이 앞에 앉으면 내가 앉았고 세림은 진열대 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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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객은 네가 안 했잖아."
세림이 고개를 들었다.
"했어."
"…….."
"손님 들어오면 내가 먼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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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인사지."
"인사가 접객이야."
세림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손님 나갈 때 문 잡아 준 거 나야. 여덟 해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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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에 아무 말도 안 했다.
문이 안쪽으로 열린다. 손님이 봉투를 들고 나가면 한 손이 없다. 그래서 누가 잡아 줘야 한다.
여덟 해 동안 그걸 누가 했는지 나는 오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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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아."
"응."
"고쳐 줄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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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종이를 접었다.
두 번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고쳐 달라고 가져온 거 아니야."
"알아."
"…….."
"보여 주려고 가져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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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세탁소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옆집은 열한 시 반에 한 번 나와서 옷을 내건다. 여덟 해 동안 그 소리를 들었다.
오늘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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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줄 나왔어?"
내가 물었다.
세림이 잠깐 있었다.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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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안 알려 줘."
세림이 말했다.
"열흘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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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 뭐 했는데."
"기다렸어."
"…….."
"안 나오는 거 기다리면 나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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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물컵이 없는 자리에 손을 놓았다.
가게에는 물컵이 없다. 여기는 국숫집이 아니다.
놓고 나서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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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번엔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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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일어섰다.
일어서서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걸고 나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꺼낸 것이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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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에 놓았다.
소리가 났다. 여덟 해 동안 세림이 아침에 이걸로 셔터를 올렸다.
"이거 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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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봤다.
"석 달 남았어."
"알아."
"…….."
"방 안 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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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줄게."
세림이 말했다.
"내가 갖고 있으면 아침에 올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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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쇠에 손을 안 댔다.
카운터 위에 그대로 있었다.
여덟 해 동안 이 가게에 열쇠가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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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아."
"응."
"월요일 몇 시야."
"여덟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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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
"버스로 사십 분."
세림이 문 쪽으로 갔다.
"여기는 십오 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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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문고리를 잡았다.
잡고 안 열었다.
"수진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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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직 여섯 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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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응."
"…….."
"일곱 번째는."
"안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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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이 주 만이다.
"쓰면 말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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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
"그것도 안 물어보고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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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나갔다.
문이 닫히고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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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쇠를 안 치웠다.
카운터 위에 놓인 채로 뒀다. 옆에 백 그램 여섯 장이 있고 그 옆에 파란 줄 마흔한 장이 있다.
셋 다 안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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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에 셔터를 내렸다.
내리고 골목으로 나왔다. 세탁소 앞에 옷이 걸려 있었다.
간판을 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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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종이를 폈다.
두 줄이 적힌 그 종이다.
세 번째 줄이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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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을 들었다.
`세림이 접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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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고 나서 그것을 봤다.
첫 줄은 없는 것이고 둘째 줄은 있는 것이고 셋째 줄은 여덟 해 동안 있었는데 내가 안 적은 것이다.
셋이 같은 종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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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줄은 안 적었다.
펜을 놓고 종이를 그대로 뒀다.
책상 위에 넷이 있었다. 어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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