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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나에게 보낼 편지를 나에게 맡겼다

7

발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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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열한 시에 왔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진열대를 보고, 카운터를 보고,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봤다. 순서가 늘 그렇다. "밥은." "먹었어요." 엄마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앉으면서 가방을 무릎에 올렸다. "세림이는." "은행 갔어요." "그 애 요새 어떠니." "괜찮아요." 엄마는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안에 든 것은 쥐포였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것이고 지금은 안 먹는 것이다. 엄마는 그걸 십 년째 사 온다. "장롱 위에 상자 있잖아." "네." "그거 언제 가져갈 거니." "뭐가 들었는데요." "네 거." 엄마는 그 말을 하고 진열대 쪽을 봤다. "버리려다가 못 버렸어." 내 물건 중에 엄마 집에 남아 있을 만한 게 뭔지 나는 짐작이 안 갔다. 스물둘에 나와서 지금까지 세 번 이사했고, 이사할 때마다 짐은 줄었다. "뭔데요." "가서 봐."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화제를 돌렸다. 아파트 재활용 요일이 바뀐 이야기, 아래층 사람이 이사 간 이야기, 병원에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라고 한 이야기. 말하는 동안 엄마는 진열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편지지가 색깔별로 꽂혀 있는 칸이었다. "저건 얼마니." "한 장에 삼백 원이요." "비싸다." "백 그램짜리는 오백 원이에요." "그건 더 비싸고." 엄마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열 생각도 없어 보였다. 값만 물어본 것이었다. 여덟 해 동안 엄마는 이 가게에서 아무것도 산 적이 없다. 편지 한 통을 부탁한 적도 없다. 나는 중간에 한 번 물었다. "엄마." "응." "강이재 알죠." 엄마는 쥐포 봉지를 접고 있었다. 접던 손이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접고 나서 무릎에 올렸다. "콜레스테롤이 이백사십이래." "엄마." "그 정도면 약 먹어야 한대." 엄마는 십일 시 사십 분에 일어섰다. 나가면서 문고리를 잡고 뒤를 돌아봤다. "수진아." "네." "장롱 상자는 네가 와서 가져가." "택배로 부치면 되잖아요." "부치는 건 싫어." 문이 닫혔다. --- 두 시에 우편물이 왔다. 고지서 두 장과 광고물, 그리고 봉투 하나였다. 봉투는 흰색이었고 규격이 작았다. 우표가 붙어 있었고 소인이 찍혀 있었다. 소인 날짜는 그저께였다. 받는 사람 칸에 가게 이름과 주소가 있었다. 글씨는 볼펜이었고, 세로가 짧고 획이 얇았다. 나는 그 글씨를 안다. 발신인 칸은 비어 있었다. 칸 자체가 없는 게 아니었다. 칸은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안이 비어 있었다. 봉투를 뜯었다. 안에 종이가 한 장 있었다. 항목이 두 줄이었다. `도서관 삼 층, 십일월` `빌려간 책`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항목이 아니라 문장이었다. 그가 항목 종이에 문장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빈 줄은 그대로 두십시오.` 나는 그 종이를 한참 봤다.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쓰게 하던 사람이 항목을 부쳤다. 우표를 사고 소인을 받았다. 그러면서 발신인 칸은 비웠다. 이름을 안 적은 것과 이름이 없는 것은 다르다. 안 적은 사람은 적을 수 있는데 안 적은 것이다. 나는 어제 만든 봉투를 서랍에서 꺼냈다. 받는 사람 칸이 비어 있었다. 두 봉투를 카운터에 나란히 놓았다. 한쪽은 위가 비었고 한쪽은 아래가 비었다. --- 세 시에 세 번째 편지를 시작했다. 도서관 삼 층은 열람실이 아니라 서고였다. 창이 없고 형광등이 낮게 걸려 있어서 책등을 보려면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야 했다. 십일월에는 난방을 안 틀어서 다들 외투를 입고 앉아 있었다. 빌려간 책. 그 도서관은 그때까지 대출 카드를 썼다. 책 뒤표지 안쪽에 봉투가 붙어 있고, 카드에 빌린 사람 이름과 날짜를 적어서 넣는다. 다음 사람이 빌리면 그 아래 줄에 적힌다. 앞사람 이름이 그대로 보인다. 나는 그 책 제목을 기억한다. 표지가 남색이었고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내 이름 윗줄에 누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그 줄을 본 기억이 없다. 카드를 꺼내 이름을 적고 도로 넣었으면서 윗줄을 안 봤을 리가 없다. 수진 씨에게. 십일월에 도서관 삼 층은 추웠습니다. 그 층에는 창이 없어서 몇 시인지 알 수 없었고, 나오면 늘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을 빌렸는데 대출 카드에 이름을 적으면서 윗줄을 봤습니다. 그다음 줄을 비웠다. 빈 줄 아래에 한 문장을 더 썼다. 그 책은 반납일보다 늦게 돌아갔습니다. 봉투에 넣고 덮었다. 풀칠은 안 했다. --- 세림은 네 시에 돌아왔다. 은행 봉투를 카운터에 놓고, 앞치마를 매고, 진열대를 한 번 정리했다. 그러고는 정리하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수진아." "응." "나 하나 부탁해도 돼?" 세림이 손등으로 진열대를 한 번 쓸었다. 종이도 없는 자리였다. "편지 하나 써줘." 나는 견본지를 꺼내려다 말았다. "네가 왜." "돈 낼게." "그게 아니라." 세림은 카운터 앞으로 와서 손님 자리에 앉았다. 여덟 해 동안 세림이 그 의자에 앉은 적은 없었다. "나 글씨 잘 쓰잖아." "잘 쓰지." "근데 내 글씨로 쓰면 내가 쓴 게 되잖아." "당연히 네가 쓴 거지." "그러니까 싫어." 세림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잠깐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받는 사람이 누구야." "어머니." "어머니 누구." "너희 어머니." 나는 펜을 들지 않았다.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냥 고맙다고." "그거면 두 줄이야. 그건 네가 써." "두 줄이 아니야." 세림이 카운터 위에 손을 올렸다. 손등으로 아무것도 쓸지 않았다. "열일곱에 너희 집 들어갔을 때 나 두 달만 있는다고 했잖아. 두 해 있었어." "알아." "그때 어머니가 나한테 뭐 하나도 안 물어봤어. 왜 왔냐고도 안 하고 언제 가냐고도 안 하고." "엄마 원래 안 물어." "안 묻는 게 제일 무서웠어." 세림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오래 있었다. "나는 물어봐 주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두 해 내내." "세림아." "준비한 걸 한 번도 못 썼어." 나는 견본지 한 장을 꺼내 앞에 놓았다. "항목만 줘." "항목?" "내가 손님한테 받는 거. 있었던 일만 세 개." 세림은 견본지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볼펜을 들었다 놓았다. "내가 쓰면 안 돼?" "항목은 손님이 쓰는 거야." 세림이 볼펜을 다시 들었다. 첫 줄을 쓰는 데 오래 걸렸다. 다 쓰고 나서 종이를 뒤집어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서 뒤집지 않고 서류함에 넣었다. "안 봐?" "오늘은 안 봐." "왜." "손님 앞에서 안 봐." 세림이 앞치마를 벗었다. 벗어서 접는데 세 번을 접었다. 평소에는 두 번 접는다. "수진아." "응." "그 사람 편지도 이렇게 써?" 나는 서류함을 닫았다. "손님 얘기는 안 해." "그치." 세림이 문 쪽으로 갔다.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자세가 낮에 엄마가 서 있던 자세와 같았다. "근데 나 그 사람 편지는 안 물어봤어." "응." "그 사람이라고만 했지." 문이 닫혔다. --- 가게에 혼자 남아서 나는 카운터 위의 두 봉투를 봤다. 세림이 쓴 항목 종이는 서류함 안에 있었다. 그것까지 세 장이었다. 발신인이 없는 것, 받는 사람이 없는 것, 아직 안 본 것. 나는 셋 다 그대로 두고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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