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묻지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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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다시 왔다.
가는 비였다. 처마 끝에 맺혔다가, 떨어지지 못하고 매달렸다. 여산은 부뚜막에 불을 지폈다. 젖은 날엔 사람이 없었다. 없는 날일수록 국물을 오래 잡았다. 오지 않을 손님을 위해 끓이는 국물은 맛이 깊었다.
매향이 왔다. 비를 맞고. 삿갓도 없이. 어깨가 젖어 색이 짙었다.
"국밥 하나."
여산은 그릇을 내밀었다. 매향은 앉았다. 그러나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국물에서 김이 올라 얼굴을 가렸다.
어젯밤, 매향은 오라비를 벤 자들의 표식이라 말했다.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여산은 그 밤 내내 하나를 물을 수 있었다. 묻지 않았다. 오늘도 묻지 않기로 했다. 물으면 매향이 무엇을 답할지 알았다. 답을 들으면 매향을 손님으로 둘 수 없었다.
이 골목에선 신분을 묻지 않았다. 그 규칙은 매향에게도 적용됐다.
"주인장." 매향이 먼저 말했다. "왜 안 묻소."
"뭘."
"어제 내가 한 말."
여산은 국자를 저었다.
"손님이 셈하고 갈 말이면, 셈하고 가시오."
매향의 손이 젓가락을 쥐었다. 그 손은 사람을 재는 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재야 할지 모르는 손이었다. 젓가락 끝이 국물 위에서 잠시 흔들렸다.
"내 오라비는 빚을 지고 죽었소." 매향이 국물을 봤다. "돈이 아니라 이름을. 흑연방 장부에 오른 이름을. 그 이름을 지우려면 벤 자를 찾아야 했소. 벤 자를 찾으면, 벤 자를 부린 자에게 닿고."
매향이 여산을 봤다.
"닿았소. 이 골목에서."
여산의 손목이 멈췄다. 아주 짧게. 국물을 저을 때처럼. 그는 그 말이 자기를 향한 것인지, 문턱 밖 곽노야를 향한 것인지 재지 않았다. 재면 답이 나올까 봐.
밖에서 물지게 소리가 났다. 도련이 비를 뚫고 들어왔다. 어깨가 젖고, 머리에서 물이 흘렀다. 소년은 물독 앞에 물통을 내렸다. 손이 조용했다. 무거운 것을 든 뒤에도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매향의 눈이 그 손을 봤다. 어제까진 재는 눈이었다. 오늘은 아는 눈이었다.
"주인장." 매향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 아이도, 이름이 장부에 있소?"
여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밥을 한 술 더 얹었다. 매향의 그릇에.
"국밥집 장부엔 외상만 적소. 사람은 안 적고."
거짓말이었다. 부뚜막 아래 흙 속에, 적히지 않은 이름 하나가 반쯤 부러진 칼과 함께 누워 있었다. 그러나 매향은 더 캐지 않았다. 매향도 알았다. 캐면 손님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도련이 젖은 소매를 짜며 다가왔다.
"누나도 왔네요. 오늘 손님 우리 둘뿐이에요."
매향이 소년을 봤다. 웃으려다, 웃지 못했다. 대신 젓가락을 들어 국밥을 한 술 떴다. 오라비를 벤 자들의 표식이 부뚜막 위에 두 닢, 뒷면으로 나란히 서 있는 그 방 안에서, 매향은 그 자들의 손을 물려받았을지 모를 소년과 마주 앉아 국밥을 먹었다.
여산은 그 셋을 봤다. 자기와, 벤 자들의 표식을 아는 여자와,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을. 한 그릇 앞에 앉은 세 개의 사연을.
비가 굵어졌다. 처마 끝의 물방울이 마침내 떨어졌다.
"천천히 먹어라." 여산이 말했다. 도련에게. 매향에게도.
밤이 깊었다. 두 사람이 돌아가고, 여산은 장부를 폈다. 매향. 매강호. 그 아래 빈 줄. 그는 붓을 들었다. 도련의 이름을 적으려다, 멈췄다. 적으면 장부의 이름이 되고, 장부의 이름은 언젠가 사연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붓을 내렸다. 대신 부뚜막 위 동전 두 닢을 봤다. 뒷면 두 개. 흠집 두 개. 그 옆에 세 번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곽노야는 표식으로 셈을 상기시켰다. 매향은 그 표식을 알아봤다. 이제 남은 것은, 표식을 손에 쥔 자가 직접 문턱을 넘는 일이었다.
손끝이 저렸다. 오늘은 국물을 오래 저었으니, 그 탓이라 여겨도 좋았다.
여산은 그러나, 그렇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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