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사십 년 늦은 표행

10

지운 줄

산으로 되돌아가는 데 하루가 걸렸다. 궤짝을 지고 왔던 길을 거꾸로 갔다. 갈 때는 내리막이었던 데가 오르막이 됐고, 오르막이었던 데가 내리막이 됐다. 한지운은 왜 가느냐고 안 물었다. 물어보지 않는 것이 편해서 그러는 것인지, 알아서 그러는 것인지 서진하는 알 수 없었다. --- 모칠은 그 자리에 없었다. 바위가 비어 있었고 짚신 조각도 없었다. 지팡이로 찍은 자국만 땅에 남아 있었다. 지나갈 때 서진하가 발을 멈췄다. "어르신이 안 계십니다." "길값은 냈습니다." 한지운이 말했다. "…….." "적어 뒀으니 언제 오시든 남아 있습니다." --- 해가 질 무렵에 자갈밭에 닿았다. 표기대가 그대로 서 있었다. 세 뼘 남은 것이 자갈 사이에 박혀 있고 부러진 단면이 위를 보고 있었다. 돌무더기도 그대로였다. 한지운이 옮겼던 돌 세 개가 옮긴 자리에 있었다. --- 구평의 집에서 불빛이 났다. 문을 두드리니 구평이 나왔다. 이번에는 문을 다 열었다. "또 오셨소." "왔습니다." "…….." "들어오슈." --- 방 안이 사흘 전과 같았다. 아궁이에 불이 있고 벽에 농기구가 걸려 있다. 구평이 물을 떠 왔다. 서진하는 물을 받았다. 받아서 무릎에 놓고 마시지 않았다. --- "어르신." "…….." "묻겠습니다." 구평이 물그릇을 내려놓았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아궁이에서 나무가 한 번 갈라졌다. --- "그날 밤에 봤습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어르신이 아궁이 앞에 앉아 계셨고 손에 나무 조각이 있었습니다. 물푸레였습니다." 구평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 "감고 나서 사흘을 걸었는데 계속 그 생각이 났습니다." ---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요." 구평의 목소리가 낮았다.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래 준비한 사람이 준비한 대로 말하는 목소리였다. "가져가려면 가져가슈." "안 가져갑니다." --- 구평이 이쪽을 봤다. "뭐요." "안 가져갑니다." 서진하는 물그릇을 옆에 놓았다. "묻는 것과 뺏는 것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묻는 건 어르신이 답을 고르실 수 있습니다." "…….." "안 주셔도 됩니다." --- 구평이 한참 있었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벽 쪽으로 갔다. 시렁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천에 싼 것이었다. 돌아와 앉아서 그것을 풀었다. --- 나무 조각이었다. 한 뼘쯤 되고 한쪽 끝이 찢겨 있었다. 물푸레였고 결이 곧았다. 그리고 그 옆에 또 하나가 있었다. 천 조각이었다. --- 붉은색이었다. 색이 빠져서 갈색에 가까웠고 가장자리가 삭아 부슬거렸다. 손바닥만 했다. 깃발은 원래 이보다 훨씬 크다. 표차에 꽂으면 사람 상반신을 가릴 만큼 된다. 이것은 그 한 귀퉁이였다. 글자가 반쯤 남아 있었다. `連` 한 자였다. 나머지 석 자가 있던 자리는 없었다. 서진하는 그 넉 자를 안다. 사흘 전에 궤짝 앞면 봉인에서 봤다. 인주가 아직 붉었다. --- 서진하는 그것을 봤다. 만지지 않았다. 한지운도 만지지 않았다. 무릎에 손을 놓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주웠소." 구평이 말했다. --- "내가 나기 전이오. 아버지가 이 산에서 나무를 했는데, 자갈밭에 사람이 죽어 있었다고 했소." "…….." "관에 알렸더니 안 왔다고 했소. 산 위라서." 구평이 천 조각을 손끝으로 밀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묻었소." --- "돌무더기 말입니까." "아니오." 구평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저 아래 묻었소. 지금은 표가 없어서 어딘지 나도 모르오." "…….." "돌무더기에는 아무것도 없소." --- "그럼 왜 쌓으셨습니까." "아버지가 쌓았소." 구평이 아궁이를 봤다. "묻은 자리를 잊어버릴까 봐 위쪽에 표시를 해 뒀다고 했소. 그런데 아버지가 죽고 나니 그 표시가 뭘 가리키는지 나는 모르겠소." --- 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표시는 남았고 표시가 가리키는 것은 없어졌다. 행장의 반권이 그렇다. 다섯 자리가 적혀 있고 여섯째부터가 없다. 적힌 것은 남았는데 적힌 것이 가리키는 데는 아무도 모른다. "이건 왜 가지고 계십니까." "아버지가 지키라고 했소." "…….." "왜인지는 말 안 하셨소." 구평이 나무 조각을 봤다. --- "내가 스물다섯에 이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벌써 아팠소. 이걸 주면서 지키라고만 했지 무슨 소린지는 안 하셨소." "…….." "열댓 명이 와서 물었을 때 없다고 한 건 그래서요." "…….." "주면 안 되는 건 줄 알았소." --- 한지운이 처음으로 말했다. "주면 안 되는 게 맞습니다." 구평이 한지운을 봤다. "뭐요." "주우신 분이 지키신 겁니다." 한지운이 보퉁이를 풀었다. "주운 사람은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십 년을 아무도 안 찾아왔으면, 그때는 주운 사람이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 서진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사흘 전에 그가 한 말이었다. 한지운이 장부에 그런 칸이 없다고 했던 말이다. 한지운은 이쪽을 안 봤다. 책을 펴고 뒷장으로 넘겼다. --- `표기 하나. 미회수.` 여섯 자가 있었다. 한지운이 붓을 들었다. 들고 한참 있다가, 그 여섯 자 위에 가로줄을 그었다. --- 한 번에 그었다. 붓이 종이에서 안 떨어졌다. 줄이 여섯 자를 다 지나갔고 끝에서 조금 삐쳤다. 글자가 안 없어졌다. 줄 밑으로 여섯 자가 그대로 보였다. 지운 게 아니라 줄을 친 것이다. 그 아래에 적었다. `소재 확인. 보관자 있음. 회수하지 않음.` --- "지우셨습니까." "줄을 쳤습니다." "…….." "미결이 아니게 됐다는 뜻입니다. 없어진 게 아니라 어디 있는지 알게 됐으니까요." 한지운이 붓을 닦았다. "글자를 없애지는 않습니다. 없애면 사십 년이 없어집니다." --- 구평이 그것을 봤다. "내 이름은." "안 적었습니다." "…….." "보관자 있음, 이라고만 적었습니다." 구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천에 두 개를 도로 쌌다. --- 그날 밤에도 셋은 그 방에서 잤다. 서진하는 문 쪽에 누웠고 궤짝은 방 가운데에 뒀다. 새벽에 깼을 때 구평은 자고 있었다. 아궁이가 꺼져 있었다. --- 아침에 떠나면서 구평이 물었다. "북로 세 번째 자리 지나갈 거요?" "지나가야 합니다." "깃발 없으면 못 지나가는데." "압니다." 구평이 문틀을 짚었다. "창기 사람들이 붙으라고 했소?" --- 서진하는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아십니까." "매년 이맘때 그 사람들이 지나가오. 여기 위로도 한 번씩 오고." "…….." "붙을 거요?" --- "안 붙습니다." "그럼 어쩌게." "돌아갑니다." 구평이 눈을 좁혔다. "열흘 더 걸리오." "걸립니다." --- "겨울 오면 못 가는데." "지금 가면 됩니다." 서진하는 궤짝 끈을 고쳐 멨다. "열흘 늦게 도착하는 것과 남의 이름으로 도착하는 것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면, 늦는 쪽이 낫습니다." --- 말하고 나서 그는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했다. 오단이 한 말이 아니다. 오단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사 년 동안 그가 한 말을 다 모아도 이런 문장은 없다. 한지운이 한 말도 아니다. 자기 말이었다. 따라 하는 것이 열 가지고 이유를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그는 그저께 생각했다. 오늘 하나가 생겼다. ---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 궤짝이 한 번도 안 미끄러졌다. 끈을 새로 꼰 뒤로 처음이었다. 평지에서 한지운이 걸음을 맞췄다. "서 표사." "네." "방금 하신 말씀 적어도 되겠습니까." "…….." "어디에요." "뒷장 말고 앞장에요." --- 서진하는 앞장이 뭔지 알았다. 행장이다. 길을 적는 데다. "적으십시오." 한지운이 걸으면서 적었다. 걸으면서 적으면 글씨가 흔들린다. 그는 흔들리는 채로 적었다.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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