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긴 말
돌아가는 길은 사람이 많았다.
북로 본길을 버리고 동쪽으로 빠지면 강을 끼고 도는 관도가 나온다. 열흘이 더 걸리는 대신 마을이 촘촘하고 주막이 반나절마다 있다.
사흘을 걸었다.
사흘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 서진하에게는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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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사람이 있었다.
주막 마당이었다. 서진하가 궤짝을 지고 나오는데 문 밖에 남자가 서 있었다.
쉰쯤 되어 보였다. 옷이 좋았다. 길 다니는 사람의 옷이 아니라 앉아서 일하는 사람의 옷이었다.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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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 표사시지요."
서진하는 걸음을 멈췄다.
"…….."
"이름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세 군데서 들었습니다."
남자가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배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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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일을 오래 했습니다."
배중이 말했다.
"관에서 하는 일은 아니고 사삿일입니다. 없어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알아봅니다. 이십이 년 했습니다."
"…….."
"오늘은 물건이 아니라 궤를 보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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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궤짝 끈을 고쳐 쥐었다.
"보실 수 없습니다."
"보는 것과 여는 것을 나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배중이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았다.
"보는 것은 지금 하고 있습니다. 등에 있으니까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여는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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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문간에 나와 섰다.
배중이 그쪽에 목례를 했다.
"한지운 장궤시지요. 연수표국 한 장궤의 손녀분."
"…….."
"할아버님 함자는 압니다."
한지운이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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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이 깁니다."
배중이 말했다.
"끝까지 들으시면 두 분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듣고 아니라고 하시면 저는 오늘 물러갑니다. 그건 약속드립니다."
서진하는 궤짝을 내려놓지 않았다.
"말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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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배중이 손가락을 폈다.
"첫째, 그 궤는 사십 년 전에 부친 것입니다. 부친 쪽이 있고 받을 쪽이 있습니다."
"압니다."
"받을 쪽이 아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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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회읍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는 오늘 처음 들었다. 오단은 회읍이 북로 끝이라고만 했다.
"살아 있습니까."
"부친 사람은 죽었습니다. 받을 쪽은 대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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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배중이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표물이 도착하지 않으면 표국이 배상합니다. 연수표국은 배상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배상 의무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
"운송 중인 물건은 아직 실패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십 년 동안 그 궤는 운송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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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문간에서 한 걸음 나왔다.
배중이 그것을 봤다.
"장궤께서는 아시겠지요."
"압니다."
"…….."
"도착하는 순간 셈이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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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배중이 세 번째 손가락을 폈다.
"안에 든 것이 온전한지 아무도 모릅니다."
서진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봉인이 있으니 안 열었다는 건 압니다. 안 열었다고 안이 그대로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십 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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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들어갔을 수도 있고 쥐가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배중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도착해서 여는 순간에 두 분이 그 자리에 계시게 됩니다. 받을 쪽이 궤를 열고 없다고 하면, 그 말을 반박할 사람이 두 분뿐입니다."
"…….."
"두 분은 안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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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말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지금 열어서 적어 두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배중이 고개를 숙였다.
"입회인 앞에서 열고, 든 것을 적고, 다시 봉하고 갑니다. 봉인은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관인은 아니지만 셈이 붙는 자리에서는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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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도착했을 때 다투지 않게 됩니다."
"…….."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만 배상하면 됩니다. 지금 열지 않으시면 도착해서 없다고 할 때 전액을 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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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궤짝의 무게를 느꼈다.
말이 맞았다.
그것이 제일 나쁜 점이었다. 이 사람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셈이 맞았고, 맞는 말을 반박하려면 셈이 아닌 것을 꺼내야 한다.
셈이 아닌 것을 꺼내면 고집이 된다.
오단이 사십 년 동안 한 것이 고집으로 보였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오단이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그는 모른다.
사 년 동안 그 사람은 판단을 붙이지 않고 사실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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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사는 표물을 열지 않습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배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
"그런데 그건 국이 있을 때 규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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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입니까."
"열지 않는 것은 표국이 신용을 파는 방식입니다."
배중이 처음으로 반 걸음 다가왔다.
"봉인째 나르면 국이 안을 모른다는 게 증명됩니다. 그래서 국이 훔치지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그 신용을 사는 사람이 표은을 냅니다."
"…….."
"연수표국은 없습니다. 팔 신용이 없고 낼 사람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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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규칙이 지금 지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배중이 물었다.
서진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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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마당을 지났다.
주막 안에서 그릇 소리가 났다. 아침 손님이 밥을 먹고 있었다.
한지운이 말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누가 보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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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이 잠깐 있었다.
"받을 쪽입니다."
"이름은요."
"오늘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한지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도 오늘은 안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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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이 한지운을 봤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저는 적는 사람입니다."
한지운이 문간에서 완전히 나왔다.
"오늘 열면 행장에 이렇게 적힙니다. 아무 날 아무 데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의 입회하에 개봉함."
"…….."
"그 줄은 나중에 아무 값도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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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이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
"제 이름은 밝혔습니다. 보낸 쪽 이름을 안 밝힌 것입니다."
"그 차이가 종이 위에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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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이 두 손을 다시 모았다.
"오늘은 물러가겠습니다. 약속드린 대로."
"…….."
"다만 한 가지만 남기고 가겠습니다."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접힌 것이고 봉투에 안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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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고 태우셔도 됩니다."
배중이 그것을 마당 돌 위에 놓았다.
"세 번째 자리 이야기입니다. 깃발 없으면 안 보내는 자리요. 두 분이 돌아가시는 이 길은 그 자리를 피하는 길이 맞습니다."
"…….."
"그런데 이 길 끝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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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이 물러섰다.
"그 사람은 값을 안 받습니다."
"…….."
"짐을 봅니다."
배중이 돌아섰다. 세 걸음 가서 멈췄다.
"서 표사."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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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압니다."
서진하가 궤짝 끈을 쥐었다.
"…….."
"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안 믿습니다."
배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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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이 갔다.
마당에 종이가 남았다.
한지운이 먼저 가서 그것을 집었다. 펴서 읽고 서진하에게 건넸다.
지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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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낀 관도가 그려져 있고 마을 이름이 열 몇 개 적혀 있었다. 그중 하나에 동그라미가 있었다.
동그라미 옆에 두 자가 적혀 있었다.
`檢所`
검소. 짐을 보는 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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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두 자를 봤다.
"한 소저."
"네."
"이 사람이 왜 이걸 줬을까요."
한지운이 지도를 접었다.
"저희가 그 자리에서 열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겠지요."
"…….."
"오늘 안 열었으니 나흘 뒤에 남이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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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지도를 보퉁이에 넣었다.
넣고 나서 새 책을 꺼냈다.
앞장을 폈다.
`四日 후 檢所. 배중이라는 자가 알려 줌. 보낸 쪽 이름 밝히지 않음.`
적고 나서 붓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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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마당에 서 있었다.
궤짝이 등에 있었다.
한 뼘 들었다 놓아 볼까 하다가 안 했다. 그것은 아침에 하는 것이고 오늘 아침에는 이미 했다.
무게가 어제와 같았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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