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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 늦은 표행

9

남의 이름

봉놋방에서 창기표국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셋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쪽이었다. 마흔쯤이고 어깨가 두꺼웠다. "그 궤 무겁겠소." "무겁습니다." "안에 뭐가 들었소." "모릅니다." --- 사내가 웃었다. "모른다니 표사구먼." 서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위삼이오. 창기표국 표사요." "서진하입니다." "국이 어디요." ---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한지운이 벽 쪽에 앉아 있었다. 이쪽을 안 보고 있었는데 안 보고 있다는 게 보였다. "연수표국입니다." 위삼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연수요?" "…….." "거 사십 년 전에 없어진 데 아니오." ---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표물을 진다고." "…….." "미결입니다." 위삼이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미결이면 국이 지는 거지 사람이 지는 게 아닌데." "국이 없습니다." --- 위삼이 옆 사람에게 술을 따라 주고 자기 잔에도 따랐다. "깃발은." "없습니다." "소리는." "못 냅니다." 위삼이 잔을 들었다가 안 마시고 내려놓았다. --- "여기서 북로 끝까지 가려면 세 군데를 지나오." "…….." "셋 다 사람이 있소. 오늘 낮에 만난 데는 그중에 제일 순한 데고." 서진하는 모칠을 생각했다. "제일 순한 데였습니까." "모 노인 말이오? 그 양반은 값만 받고 안 건드리오." --- "나머지 둘은요." "하나는 값을 두 번 받소." 위삼이 손가락을 폈다. "한 번은 지날 때 받고 한 번은 짐 보고 더 받소. 짐 보자고 하면 보여 줘야 하고." "봉인이 있으면요." "봉인 있는 건 안 뜯소. 대신 값이 올라가지." --- "세 번째는요." 위삼이 손가락을 접었다. 접은 손을 무릎에 놓고 잠깐 있었다. 앞의 둘을 말할 때와 얼굴이 달랐다. "깃발 없으면 안 통과요." "…….." "값을 부르지도 않소. 그냥 안 보내." 방 안 등잔이 한 번 흔들렸다. --- "이유가 뭡니까." "거기가 십오 년 전에 한 번 크게 당했소." 위삼이 잔을 비웠다. "깃발 없는 무리가 지나갔는데 그게 짐꾼이 아니라 다른 거였소. 그 뒤로 깃발 없으면 아예 길을 안 열어." "…….." "규칙이라 그렇소. 사람이 나쁘고 좋고가 아니라." --- 서진하는 궤짝 쪽을 봤다. 방 가운데에 놓아 두었다. 벽에 안 붙였다. 봉놋방이라 사람들이 오가는 자리인데도 그렇게 뒀다. 위삼이 그것을 아까부터 보고 있었다는 걸 그는 알았다.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까." "있소. 열흘 더 걸리고 겨울에는 못 가오." "지금은 가을입니다." "지금은 되지." 위삼이 서진하를 봤다. "열흘 더 걷겠소?" --- "아니면요." "우리 밑에 붙으시오." 위삼이 그렇게 말했다. "우리도 그 길로 가오. 사흘 뒤에 떠나는데 짐이 두 대요. 궤 하나 더 얹는 건 표 안 나오." "…….." "깃발 하나 밑에 짐이 몇이든 그건 우리 셈이오. 길에서는 창기 표행으로 봅니다." --- 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어깨가 조금 내려간 것을 스스로 알았다. "값은요." "셈은 해 봐야 아는데, 궤 하나면 은자 서너 냥쯤이오." "…….." "많습니까." "많습니다." --- "많지." 위삼이 인정했다. "그런데 세 번째 자리에서 막히면 열흘을 더 걷거나 겨울을 나야 하오. 겨울을 나면 값이 그보다 더 드오." 서진하는 셈을 했다. 모칠에게 한 냥 반이 있다. 서너 냥이 더 붙으면 다섯 냥이 넘는다. 지금 그의 전대에 스무 푼이 안 든다. 한 냥이 백 푼이다. 다섯 냥이면 오백 푼이고, 짧은 표행 하나를 받으면 예닐곱 푼쯤 남는다. 셈이 안 선다. 셈이 안 서는데도 그는 계산을 두 번 했다. 두 번째에도 같은 수가 나왔다. 수가 안 바뀌는데 계산을 다시 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다른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 "생각해 보겠습니다." "천천히 하시오. 사흘 있소." 위삼이 자리에 누웠다. "다만 하나만 말해 두겠소." "…….." "우리 깃발 밑에 들어오면, 그 궤는 우리 표물이 되오." --- 서진하는 그 말을 되짚었다. "도착하면 우리 것으로 도착합니다." "그렇소." "…….." "기록도요?" "기록은 우리가 하지. 창기 아무 날 아무 데서 궤 하나 인수, 아무 데서 인계. 그렇게 남소." --- 위삼이 돌아누웠다. "그게 싫으면 걷든가." 누운 채로 한마디를 더 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오. 우리도 젊을 때 남의 깃발 밑에 두 번 들어갔소." "…….." "들어가 봐야 아는 것도 있소." --- 그날 밤 서진하는 마당으로 나갔다. 깃발대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천은 감겨 있었다. 감아 두면 이슬을 덜 맞는다. 아침에 풀어서 다시 매면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감고 매일 푸는 일을 창기 사람들은 몇 해나 해 왔을 것이다. 한지운이 뒤따라 나왔다. 발소리를 안 죽였다. 오는 걸 알리려고 그렇게 걷는 사람이 있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 "한 소저." "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됩니다." 서진하는 그 대답이 너무 빨라서 한 번 더 물었다.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방에서 다 했습니다." --- "…….." "값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지운이 깃발대를 봤다. "저 밑에 들어가면 이 표행은 창기 표행이 됩니다. 창기 행장에 적히고 우리 행장에는 안 적힙니다." "우리 행장은 반권입니다." "반권이라도 행장입니다." --- "도착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서진하가 말했다. 말하고 나서 자기 목소리가 낯설었다. "궤짝이 회읍에 닿기만 하면 됩니다. 누구 표행으로 닿든." 한지운이 이쪽을 봤다. --- "오 표두가 사십 년 동안 왜 안 그러셨을까요." "…….." "길에 표국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사십 년이면 얹어 갈 기회가 몇 번은 있었습니다." 서진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안 얹으셨습니다." --- "이유를 아십니까." "모릅니다." 한지운이 그렇게 말했다. "모르는데 안 하셨다는 건 압니다." --- 서진하는 궤짝을 생각했다. 방 가운데에 있다. 벽에 안 붙어 있다. 오단이 사 년 동안 그렇게 뒀고 그도 그렇게 둔다.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다. 이유를 모르는데 따라 하고 있다. 두 손으로 내려놓는 것도 그렇다. 한 손으로 놓으면 한쪽이 먼저 닿아서 안에 든 것이 쏠린다고 오단이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는 그대로 한다. 따라 하는 것이 열 가지쯤 된다. 그중에 이유를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 "한 소저." "네." "어제는 제가 안 물어서 못 지웠습니다." "…….." "오늘은 제가 얹자고 했습니다." 한지운이 대답하지 않았다. --- "두 번 다 제가 틀린 겁니까." "모릅니다." 한지운이 깃발대에서 눈을 뗐다. "어제 것은 제가 옳다고 생각했고 오늘 것도 제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옳은 것은 다른 일입니다." "…….." "그건 도착해 봐야 압니다." --- 한지운이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뒤도 안 돌아봤다. 서진하는 마당에 남았다. 깃발대에 손을 댔다. 손바닥으로 한 번 감싸 쥐었다가 뗐다. 쥐었을 때 손이 아는 굵기였다. ---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진하는 마당 끝에 앉았다. 담 아래에 짚단이 쌓여 있었고 그 옆이 말라 있었다. 앉아서 궤짝 생각을 그만두고 오단 생각도 그만두고, 회읍이 어떤 데인지 생각해 보려고 했다.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사 년 동안 그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었고, 들은 것은 죽기 반 시진 전이다. 북로 끝이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가 본 적 없는 데로 가는 짐을, 열어 본 적 없는 채로 지고 있다. --- 이튿날 아침에 위삼이 물었다. "정했소?" "아직입니다." "이틀 남았소." 서진하는 궤짝을 지고 주막을 나섰다. 이틀 동안 갈 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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