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묻지 않았다
아침에 구평이 밥을 지었다.
보리에 감자를 섞은 것이었고 반찬은 어제 그 소금이었다. 셋이 앉아 먹었다.
구평의 저고리 앞섶이 어제와 달랐다.
품이 조금 도톰했다. 사람 하나가 밤새 앉아 있었고 아침에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다.
서진하는 그쪽을 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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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슈."
"북쪽입니다."
"북쪽 어디."
"회읍입니다."
구평이 숟가락을 놓았다.
"멀구먼."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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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 끝이었다.
구평은 더 안 물었고 서진하도 안 물었다.
밥을 먹고 그릇을 개수통에 담았다. 한지운이 물을 부었다. 구평이 자기가 한다고 했고 한지운이 그러시라고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 한지운이 부엌을 한 번 둘러봤다. 시렁과 그릇과 벽에 걸린 낫을 차례로 봤다.
보는 것을 서진하가 봤고, 구평도 봤다.
셋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떠날 때 구평이 문밖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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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슈."
"…….."
"올 일 있으면."
서진하는 궤짝 끈을 고쳐 멨다.
"오겠습니다."
구평이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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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는 데 반 시진이 걸렸다.
내려오는 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서진하는 발밑을 봤고 한지운은 앞을 봤다.
평지에 닿아서 한지운이 멈췄다.
"서 표사."
"네."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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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궤짝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놓았다.
"봤습니다."
"…….."
"한 소저도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한지운이 보퉁이를 고쳐 멨다.
"저는 눈을 안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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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봤습니다. 품에 넣는 것까지."
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저는 감았습니다."
"아십니다."
"…….."
"숨소리가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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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길가 돌에 앉았다.
앉아서 신을 벗고 안에 든 자갈을 털어 냈다. 한 짝에서 두 개, 다른 짝에서 하나가 나왔다.
"왜 안 물으셨습니까."
"…….."
"서 표사."
"물으면 내놓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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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고개를 들었다.
"내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내놓게 하는 건 뺏는 겁니다."
"…….."
"그 사람은 열댓 번 없다고 했습니다. 열여섯 번째에 우리가 봤다고 하면 그 사람은 열댓 번을 거짓말한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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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신을 신었다.
"저는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묻는 것과 뺏는 것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묻는 건 그쪽이 답을 고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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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말을 되짚었다.
"안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
"안 내놓으면요."
"그러면 안 내놓는다고 적습니다."
한지운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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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조각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
"제 손에 없어도 됩니다. 어디 있는지만 알면 됩니다."
"…….."
"그것이 거기 있다는 걸 적어야 합니다."
"적으면 뭐가 됩니까."
"없어진 자리가 확인됩니다."
한지운이 보퉁이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가 풀지 않았다.
"미결은 그때 지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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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궤짝을 봤다.
"어제 못 지운다고 하셨습니다."
"어제는 못 지웠습니다."
"…….."
"어젯밤에 지울 수 있게 됐는데 안 물으셔서 못 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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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한 번 지났다.
서진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젯밤에 그는 눈을 감으면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본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고.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들으니 그것은 자기가 편하려고 한 일일 수도 있었다.
물으면 구평이 곤란해진다. 곤란해진 사람을 보는 것이 서진하는 싫다. 싫은 것을 안 하려고 안 물었다면, 지킨 것은 구평이 아니라 자기 쪽이다.
한지운은 재촉하지 않았다. 화도 안 냈다. 다만 사실을 말한 사람의 얼굴로 서 있었고, 그것이 화를 내는 것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돌아갈까요."
"안 갑니다."
"…….."
"오늘 돌아가면 그건 뺏는 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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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걷기 시작했다.
서진하가 궤짝을 지고 따라갔다.
한참 가다가 한지운이 말했다.
"서 표사는 그 사람이 왜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안 해 봤습니다."
"저는 밤에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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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댓 명이 왔고 두 번은 집을 뒤지게 했습니다."
한지운이 앞을 보고 말했다.
"뒤지게 하려면 나올 게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있었습니다."
"…….."
"그러면 그때는 없었거나, 뒤질 때 몸에 지니고 있었거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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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세 번째를 생각했다.
"아니면 그 사람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지운이 걸음을 늦췄다.
"어떻게요."
"주운 사람은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십 년을 아무도 안 찾아왔으면요."
"…….."
"그때는 주운 사람이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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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 뒤에 말했다.
"그건 적을 수 없습니다."
"…….."
"장부에 그런 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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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이 북로 본길이고 오른쪽이 다시 산으로 든다. 둘째 자리는 북로를 따라 이레쯤 가야 나온다고 행장에 적혀 있었다.
서진하는 왼쪽으로 발을 뗐다.
한지운이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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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진쯤 갔을 때 앞에서 수레가 왔다.
두 대였고 소가 끌었다. 짐이 높게 실려 있고 위에 멍석을 덮었다.
수레 옆에 사내가 셋 걸어왔다. 그중 하나가 긴 막대를 들고 있었다.
막대 끝에 천이 매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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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것을 봤다.
붉은 바탕에 글자가 둘이었다.
바람이 불어서 천이 펴졌다. 글자가 보였다.
`昌記`
창기표국이다.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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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가 가까워졌다.
바퀴가 돌길에 걸릴 때마다 짐이 들썩였다. 멍석 아래가 궤인지 가마니인지는 안 보였다. 표국은 짐을 가려서 나른다. 무엇을 나르는지 길에서 보이면 값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앞선 사내가 소를 몰고 뒤의 둘이 수레 옆을 걸었다. 셋 다 칼을 안 찼다. 허리에 짧은 몽둥이 하나씩만 있었다.
깃발 든 사내가 목소리를 냈다.
"창기!"
길게 늘여서 한 번 외쳤다.
산이 그 소리를 받아 되돌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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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길가로 비켰다.
궤짝을 진 채로 비켜서 있었고 한지운도 옆에 섰다.
수레가 지나갔다. 소가 셋을 한 번씩 봤다. 사내들은 안 봤다.
깃발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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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고 나서 서진하는 오래 서 있었다.
깃발이 지나갈 때 소리가 났다. 천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다. 그 소리가 수레바퀴 소리보다 작은데도 들렸다.
들린 이유는 그가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단은 사십 년 동안 저 소리를 들으면서 걸었을 것이다. 옆으로 지나가는 깃발이 몇 개였는지 세어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한지운이 먼저 걸었다.
"서 표사."
"…….."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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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그는 방금 지나간 소리를 생각했다.
함표다. 길에서 소리를 내어 국명을 알리는 것이고, 녹림에게 우리가 지난다고 알리는 인사다.
소리를 내려면 낼 이름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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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저."
"네."
"우리는 소리를 못 냅니다."
"못 냅니다."
"…….."
"그러면 여섯째에서는 뭘 냅니까."
한지운이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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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울 때까지 둘은 그 이야기를 다시 안 했다.
저녁에 주막에 들었다.
봉놋방에 사람이 넷 있었고 그중 둘이 아까 그 수레 사람들이었다.
깃발은 마당에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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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마당으로 나갔다.
밤이었고 등불이 처마에 하나 걸려 있었다.
깃발대가 땅에 꽂혀 있었다. 천은 걷어서 대에 감아 두었다. 주막에서는 감는 모양이었다.
대를 손으로 만져 봤다. 물푸레였다.
굵기가 오늘 아침 자갈밭에서 본 것과 같았다.
손가락을 벌려 재 봤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꼭 들어왔다.
자갈밭 것도 그랬다.
서진하는 손을 뗐다. 떼고 나서 그 손을 옷에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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