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사십 년 늦은 표행

13

둘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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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올라갔다. 강을 왼쪽에 두고 걸었다. 올라갈수록 물소리가 커지고 물길이 좁아졌다. 사흘째 아침에 여울이 나왔다. 돌이 많았다. 물이 무릎께였고 가운데쯤에서 허리까지 온다고 건너온 사람이 말해 주었다. --- 서진하는 궤짝을 어깨 위로 올렸다. 끈을 풀어 다시 꼬았다. 등에 지는 매듭이 아니라 머리 위로 받치는 매듭이다. 오단이 그렇게 매는 것을 사 년 동안 두 번 봤다. 두 번 다 물을 건널 때였다. --- "한 소저." "네." "먼저 건너십시오." "…….." "보퉁이는 제가 나중에 가져가겠습니다." 한지운이 책이 든 보퉁이를 내밀었다. 서진하는 그것을 궤짝 위에 얹어 끈으로 한 번 더 감았다. --- 물이 찼다. 무릎에서 허벅지로 올라오는 데 열 걸음이 걸렸다. 돌이 둥글고 이끼가 앉아 있어서 발을 밀듯이 옮겨야 했다. 가운데쯤에서 왼발이 미끄러졌다. ---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서진하는 궤짝을 놓지 않았다. 왼손으로 궤짝 밑면을 밀어 올리고 오른쪽 무릎을 물속 돌에 박았다. 무릎이 먼저 닿았다. 궤짝은 안 닿았다. --- 일어서는 데 시간이 걸렸다. 궤짝을 이고 있으면 허리를 못 쓴다. 다리 힘만으로 서야 한다. 세 번 밀어서 섰다. 건너편에 닿았을 때 바지가 허리까지 젖어 있었다. 궤짝 밑면을 만져 봤다. 말라 있었다. --- 한지운이 수건을 꺼냈다. "무릎 보십시오." "괜찮습니다." "…….." "피 납니다." 서진하는 바지를 걷었다. 무릎 아래가 찢어져 있었다. 깊지 않았다. --- 한지운이 책을 폈다. 앞장이었다. `여울 건넘. 궤 물에 안 닿음. 서 표사 무릎 다침.` "그거 적으십니까." "근수가 달라졌으면 적어야 합니다." 한지운이 붓을 닦았다. "안 달라졌으니 안 달라졌다고 적습니다." --- "한 소저." "네." "안 달라진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한지운이 붓을 넣었다. "모릅니다." "…….." "밑면이 말라 있는 것만 압니다. 그건 서 표사가 만져 보셨고 저는 옆에서 봤습니다. 근수는 나루에서 잰 뒤로 안 쟀습니다." "그러면 안 달라졌다고 적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고쳐 적겠습니다." --- 한지운이 책을 다시 폈다. 앞 줄을 안 지웠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밑면 마름. 근수는 안 잼.` 서진하는 그 두 줄을 봤다. 위에 적힌 것과 아래에 적힌 것이 다른 말인데 위에 것을 안 지웠다. 고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런 뜻이었다. --- 마을은 여울에서 반나절이었다. 집이 스무 채쯤이고 객점이 하나였다. 강을 건너온 사람이 하룻밤 자고 가는 자리다. 객점 앞에 늙은 여자가 나와 있었다. "자고 가시오?" "자고 가겠습니다." "몇이오." "둘입니다." --- 여자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장부를 들고 나왔다. 두꺼웠다. 표지가 세 번 덧대어져 있고 끈이 두 겹이었다. "이름." "서진하입니다." "소속." --- 서진하는 잠깐 멈췄다. 국 이름을 대면 그 이름이 이 장부에 적힌다. 대지 않으면 안 적힌다. "연수표국입니다." --- 여자가 붓을 놓았다. "뭐라고 했소." "연수표국입니다." 여자가 서진하를 봤다. 오래 봤다. "탁이라 하오."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 "이 집 삼 대째요." --- 탁 노파가 장부를 앞으로 넘겼다. 넘기는 손이 익숙했다. 어디쯤에 무엇이 있는지 세지 않고 아는 손이다. "여기 외상은 규칙이 있소." "…….." "들으시겠소?" "듣겠습니다." --- "갚으면 줄을 긋소." 탁 노파가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가로로 그어진 줄이 있었다. "안 갚으면 안 긋소. 종이가 삭으면 새 종이에 옮겨 적소. 옮길 때 액수는 옮기고 이름은 안 고치오." "…….." "그리고 하나 더 있소." --- "본인이 아니면 줄을 안 긋소." 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남이 대신 내면 어떻게 하십니까." "새 줄에 적소. 누가 대신 냈다고." 탁 노파가 장부를 덮지 않았다. "그러면 두 줄이 되오. 안 갚은 줄 하나, 대신 낸 줄 하나." --- "왜 그렇게 하십니까." "갚은 사람이 갚았다고 적혀야 하니까." "…….." "안 갚은 사람도 안 갚았다고 적혀 있어야 하고." --- 탁 노파가 장부를 뒤로 넘겼다. 뒤로 갈수록 종이가 누렜다. 세 번째 덧댄 자리를 지나자 글씨체가 달라졌다. 거기서 멈췄다. "연수표국이라 했지." "그렇습니다." --- 한 줄이 있었다. `馬幼` 두 자였다. 줄이 안 그어져 있었다. --- 서진하는 그 두 자를 봤다. 마유. 둘째 자리에서 죽은 표사다. 이름만 알았고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다. 반권 행장에 마유의 구간은 넉 줄이다. 넉 줄에 사람이 안 들어 있다. "이게 마유입니까." "우리 할머니 때 사람이오." --- "뭘 외상 했습니까." 탁 노파가 그 줄 옆을 짚었다. 품목이 적혀 있었다. `棺 一` --- 관 하나. 서진하는 한지운을 봤다. 한지운은 이미 책을 꺼내고 있었다. "어르신." "말하시오." "누구 관입니까." "안 적혀 있소." --- "이 마을에서 죽은 사람 관이면 누군지 아실 텐데요." "이 마을 사람 아니오." 탁 노파가 장부에서 손을 뗐다. "우리 할머니가 그 말은 했소. 표사 하나가 밤중에 와서 관을 하나 사 갔다고. 값은 나중에 준다고 하고." "…….." "싣고 갔소. 빈 관을." --- 서진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무릎이 시렸다. 아까 돌에 박은 자리다.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가 뗐다. 사 년 동안 오단이 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여섯이 죽었다는 말은 했고 자리마다 무엇이 남았는지도 몇 번 말했다. 관은 없었다. 한지운이 붓을 들고 기다렸다. 서진하가 말할 때까지 안 적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 빈 관을 싣고 갔다. 관은 죽은 다음에 사는 것이다. 죽기 전에 사는 사람은 자기 것을 사거나, 죽을 사람이 정해져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마유는 그해 자기 자리에서 죽었다. 관에 담겼는지는 행장에 없다. ---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안 왔소." 탁 노파가 말했다. "값 준다던 사람이 안 왔고, 우리 할머니는 그 줄을 안 지웠소. 어머니도 안 지웠고 나도 안 지우오." "…….." "지우면 관이 없어지니까." ---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객점 앞을 지나가는 발소리였다. 둘이었고 하나가 웃었다. 탁 노파가 그쪽을 보고 나서 서진하를 봤다. "짐은 마당에 두시오. 처마 밑이면 비 안 맞소." "등에 지고 자겠습니다." "스물여섯 근 반이라며." --- 서진하는 손을 멈췄다. "그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제 왔소." "…….." "누가요." "검소 종이가." --- 탁 노파가 장부 옆에 놓인 얇은 것을 들었다. 접힌 종이였다. 한 장이고 글씨가 몇 줄이었다. "검소에서 사흘에 한 번씩 이리로 보내오. 그날 지나간 짐을 적어서." "…….." "값은 안 받소. 우리도 안 주고." --- 서진하는 그 종이를 안 받았다. 받아 볼 필요가 없었다. 무엇이 적혀 있는지는 이미 안다. 윤창은 종이를 못 준다고 했다. 당신이 아는 게 남는다고 했다. 안 준다는 것과 안 적는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 "그 사람이 값을 안 받는 이유를 아십니까." 서진하가 물었다. 탁 노파가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받으면 봐 달라는 대로 봐야 하니까, 라고 하겠지." "…….."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오." --- 탁 노파가 종이를 도로 놓았다. "값을 안 받으면 짐 주인 눈치를 안 봐도 되오. 대신 적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소." "…….." "그 사람은 여태 나쁘게 쓴 적이 없소. 그런데 안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오." --- 서진하는 마당을 봤다. 궤짝이 처마 밑에 있었다. 여울을 건널 때 물에 안 닿았고 근수가 안 달라졌다. 근수가 안 달라진 것을 아는 사람이 이 마을에도 있다. 앞으로 갈 마을에도 있을 것이다. --- "어르신." "말하시오." "마유의 외상, 제가 내겠습니다." --- 탁 노파가 붓을 들었다. "줄은 안 긋소." "압니다." "…….." "들으셨소?" "들었습니다. 그래도 내겠습니다." --- 서진하는 전대를 풀었다. 여비가 줄어든다. 여울로 돌아온 나흘 값이 이미 붙어 있고 여기서 또 준다. 한지운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셈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는데 안 말했다. 값을 치렀다. --- 탁 노파가 뒷장을 폈다. 새 줄에 적었다. `馬幼 棺一 값 — 서진하 대신 냄` 적고 나서 앞으로 넘겼다. 마유의 줄은 그대로였다. --- 서진하는 두 줄을 봤다. 사십 년 된 줄 하나와 오늘 줄 하나가 있었다. 두 줄 사이에 종이 세 겹이 있었다. --- "이러면 뭐가 달라집니까." 서진하가 물었다. 탁 노파가 장부를 닫았다. "안 달라지오." "…….." "그런데 이제 두 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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