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적히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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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탁 노파가 마루에 앉아 종이를 쓰고 있었다.
붓이 아니라 몽당연필이었다. 종이는 한 장이고 줄이 네댓이었다.
서진하가 나오는 것을 보고 노파가 연필을 놓았다.
"가시오?"
"묻고 갈 것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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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짠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안 짜오."
탁 노파가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아랫말에 목수가 있소. 그 집이 삼 대째 짜오."
"…….."
"그때 짠 사람이 아직 있습니까."
"아들이 있소. 예순 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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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말은 걸어서 반각이었다.
집 앞에 켜 놓은 나무가 쌓여 있었다. 마당에 톱밥이 깔렸고 개가 한 마리 묶여 있었다.
늙은 남자가 대패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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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표국 표사입니다."
남자가 대패를 놓지 않았다.
"그런 국은 없소."
"없습니다."
"…….."
"그런데 이름은 그거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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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대패를 놓았다.
"도가요."
"서진하입니다."
"뭘 알러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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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 전에 이 집에서 관을 하나 짰습니다."
"사십 년 전이면 우리 아버지요."
"어르신은 그때."
"열여섯이었소. 옆에서 붙들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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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이 길에서 사십 년 전을 본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나루에도 없었고 검소에도 없었다.
"기억하십니까."
"관은 많이 짰소."
도가가 톱밥을 발로 밀었다.
"그런데 그건 기억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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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왔소."
도가가 말했다.
"등불 들고 둘이 왔는데 하나는 마당에 안 들어왔소. 들어온 사람이 값을 나중에 준다고 했고."
"…….."
"아버지가 그런 건 안 받는데 그날은 받았소."
"왜 받으셨습니까."
"급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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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선 사람은 못 보셨습니까."
"등불을 그쪽이 들었소."
도가가 마당 문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등불 든 사람은 얼굴이 안 보이오. 불이 앞에 있으니까."
"…….."
"키는요."
"모르오. 마당이 어두웠고 나는 안에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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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짰습니까."
"밤새 짰소."
도가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둘이서 밤새 짜면 하나 나오오. 대충 짜면 그렇소."
"…….."
"대충 짜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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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가 처음으로 서진하를 봤다.
"세 가지를 말했소."
"…….."
"짧게 짜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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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요."
"사람 눕히는 거 아니라고 했소."
서진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관은 사람을 눕히는 것이다. 사람을 안 눕힐 것이면 그것은 관이 아니라 궤다. 궤를 짜 달라고 하면 되는 것을 관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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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못으로 박지 말라고 했소."
"…….."
"그럼 어떻게 합니까."
"걸쇠요."
도가가 마당 구석의 나무 상자를 발로 툭 쳤다. 뚜껑에 쇠 걸쇠가 달려 있었다.
"저런 거요. 여닫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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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상자를 봤다.
못을 박은 관은 못 연다. 못을 뽑으면 뽑은 자국이 남는다.
걸쇠는 열고 도로 닫으면 닫은 자리가 열기 전과 같다.
"세 번째는요."
"기억 안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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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 나십니까."
"세 개라고 했는데 두 개만 기억하오."
도가가 대패를 다시 잡았다.
"열여섯이었소. 그날 밤에 졸았고."
"…….."
"아버지는 알았을 텐데 여쭤본 적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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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은 어떻게 됐습니까."
"안 왔소."
"…….."
"그 뒤로 아무도 안 왔소."
도가가 대패질을 시작했다.
"우리는 장부를 안 쓰오. 탁씨네가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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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씨네가 값을 치렀습니까."
"안 치렀소."
대패가 한 번 멎었다.
"그 집도 못 받았으니 우리한테 줄 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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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드리겠습니다."
도가가 대패를 놓았다.
"얼마인지 모르오."
"…….."
"사십 년 전 값을 내가 어떻게 아오."
"지금 값으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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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가 한참 있다가 값을 말했다.
서진하는 전대를 풀어 셌다. 어제 낸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셈을 소리 내어 세는 버릇이 나와서 반쯤 세다가 그만두었다.
도가가 받아서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적지 않았다.
이 집은 장부를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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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한지운이 걸음을 맞췄다.
"서 표사."
"네."
"적어도 되겠습니까."
"적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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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걸으면서 적었다.
`아랫말 도가. 그때 열여섯. 밤중에 짬. 짧게. 못 대신 걸쇠. 셋째 조건은 못 들음.`
"세 번째를 모른다는 것도 적으십니까."
"모른다는 것도 알아낸 겁니다."
한지운이 붓을 닦았다.
"모르는 걸 안 적으면 나중에 사람들이 물어봤는지 안 물어봤는지를 또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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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점에 돌아왔을 때 탁 노파가 아직 마루에 있었다.
종이는 그대로 있었다. 줄이 두 개 늘어 있었다.
서진하가 그 앞에 섰다.
"어르신."
"…….."
"그거 검소로 갑니까."
"사흘에 한 번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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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봐도 됩니까."
탁 노파가 종이를 밀어 놓았다.
서진하는 무릎을 굽혀 읽었다.
`서진하. 연수표국. 등짐 하나. 스물여섯 근 반. 둘 자고 감.`
`마유 외상 대신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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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이었다.
두 번째 줄은 어제 장부에 적힌 것과 같은 말이다. 장부는 이 집에 남고 이 종이는 나간다.
서진하는 한참 그것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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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드릴 수도 있소."
탁 노파가 말했다.
"근수는 빼도 되오. 짐이 있다는 것만 적으면 되니까."
"…….."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있소. 열에 둘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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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옆에서 말했다.
"서 표사."
"네."
"그 종이는 검소로 가고 검소에서 또 다른 데로 갑니다."
"압니다."
"…….."
"배중이 사흘에 한 번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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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어제까지 그는 검소를 어떻게 볼지 정하지 못했다. 윤창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하루 만에 알았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안전하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정하지 않으면 매 마을에서 다시 정하게 된다.
마을마다 다시 정하면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게 정하게 되고, 다르게 정한 것들이 쌓이면 그것도 하나의 기록이 된다. 읽는 사람은 그 기록에서 이쪽이 무엇을 감추려 했는지를 읽는다.
오늘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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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수는 빼 주십시오."
서진하가 말했다.
탁 노파가 연필을 들었다.
"그리고."
"…….."
"두 번째 줄은 그대로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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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서진하를 봤다.
"근수는 짐 이야기입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짐은 제 것이 아닙니다. 사십 년 전에 부친 사람 것이고 회읍에서 받을 사람 것입니다. 그 사람들 물건이 몇 근인지를 제가 길에 뿌릴 권한은 없습니다."
"…….."
"두 번째 줄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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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제가 한 일입니다."
서진하는 종이에서 눈을 뗐다.
"제가 한 일은 적히는 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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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아무 말도 안 했다.
탁 노파가 첫 줄에서 근수를 지웠다. 지운 게 아니라 그 자리에 가로줄을 그었다. 이 집은 안 고치는 집이다.
`스물여섯 근 반`이 줄 밑에 그대로 보였다.
서진하는 그것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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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말하시오."
"이미 나간 종이는요."
"어제 갔소."
탁 노파가 연필을 놓았다.
"근수는 이미 나갔소. 오늘부터만 안 나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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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부탁이 아니오."
노파가 종이를 접었다.
"짐 주인이 빼라면 빼는 것이오. 그게 규칙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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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짝을 졌다.
마당을 나서는데 탁 노파가 뒤에서 한마디 했다.
"표사."
"네."
"마유 값 받은 거, 우리도 검소에 적어 보내오."
"…….."
"그건 안 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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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빼셔도 됩니다."
"…….."
"그거 적히면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보오. 좋을 것도 있고 나쁠 것도 있소."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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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가 종이를 소매에 넣었다.
"사십 년 전 그 사람은 값을 안 냈소."
"…….."
"그래서 우리 할머니가 그 줄을 안 지웠고, 나는 오늘 두 줄을 적소."
노파가 마루에서 일어섰다.
"안 달라지는 것 맞소. 그런데 적히는 건 달라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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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남쪽으로 났다.
셋째 자리까지 나흘이라고 탁 노파가 말했다. 강을 벗어나 산자락을 끼고 도는 길이고, 중간에 마을이 둘 있다.
표기는 안 세웠다.
세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늘은 세우지 않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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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반 걸음 뒤에서 걸었다.
"서 표사."
"네."
"아까 그 말씀 적었습니다."
"어느 쪽에요."
"앞장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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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뒤를 안 돌아봤다.
궤짝이 등에 있었고 근수는 어제와 같았다.
같은지 아닌지는 여전히 팔이 몰랐다.
그런데 오늘은 종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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