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사십 년 늦은 표행

15

짐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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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걸었다. 강을 벗어나자 길이 마른 흙으로 바뀌었다. 산자락을 왼쪽에 두고 남쪽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궤짝이 등에 있었다. 표기는 안 세웠다. 이 길로 다니는 짐 중에 깃발을 세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세우고 다니는 짐은 국이 있는 짐이고, 국이 있는 짐은 관도로 간다. 그래도 아침마다 한 번 정했다. --- 걸으면서 서진하는 셋을 세었다. 짧게 짜라. 못으로 박지 말고 걸쇠로 하라. 그리고 하나. 앞의 둘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쪽을 본다. 짧으면 사람이 안 들어간다. 걸쇠면 열린다. 둘 다 관을 관이 아니게 만드는 조건이다. --- 그러면 세 번째도 그쪽일 것이다. 서진하는 그 생각을 하고 나서 걸음을 늦췄다.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떤 종류인지는 안다. 모르는 것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셈이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기 전과 알고 난 뒤는 다르다. --- "한 소저." "네." "도가가 셋이라고 한 것도 그 사람 기억입니다." 한지운이 걸음을 맞췄다. "그렇습니다." "…….." "둘이었는데 셋으로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 "넷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지운이 말했다. "열여섯이었고 밤이었고 졸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확실한 건 두 개고 나머지는 개수뿐입니다." "…….." "적을까요." "적으십시오. 다만 개수도 확실하지 않다고 적어 주십시오." --- 사흘째 낮에 마을이 나왔다. 집이 마흔 채쯤 되고 길가에 대장간이 있었다. 풀무 소리가 길까지 났다. 서진하가 그 앞에서 멈췄다. --- 기억이 났다. 지붕이 낮고 문이 없는 집이다. 삼 년 전 겨울에 여기서 반나절을 보냈다. 오단이 뭘 고치는 동안 그는 문간에 앉아 손을 녹였다. 무엇을 고쳤는지는 기억이 안 났다. --- 대장장이가 밖으로 나왔다. 쉰쯤 되었고 팔뚝이 굵었다. 서진하를 보고 눈을 좁혔다. "자네 왔었지." "왔습니다." "…….." "삼 년 전 겨울입니다." "그 노인은." --- "돌아가셨습니다." 대장장이가 아무 말도 안 했다. 풀무 소리가 안에서 계속 났다. 아이 하나가 밟고 있었다. "들어오게." --- "엄가요." "서진하입니다." 엄가가 화덕 옆의 상자를 발로 밀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그 노인 이름은 오단이오." "…….." "이름은 알고 계셨습니까." "삼십 년 넘게 왔는데 모르겠나." --- 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나루에도 검소에도 오단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랫말 도가는 사십 년 전 밤에 온 사람의 얼굴도 못 봤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뭘 고치러 오셨습니까." "고리." --- 엄가가 벽에 걸린 쇠고리 하나를 집어 던졌다. 서진하가 받았다. 손바닥만 하고 두꺼웠다. "등짐 끈에 물리는 거요. 그 노인 건 저것보다 작았고." "…….." "매번 고리만 고치셨습니까." "매번은 아니고, 오는 김에 고쳤지." --- "몇 번쯤 오셨습니까." "세지는 않았소." 엄가가 집게로 화덕을 뒤적였다. "우리 아버지 때부터 왔으니까. 이십 년쯤은 아버지가 봤고 그다음은 내가 봤소." "…….." "일 년에 한 번쯤은 왔소. 어떤 해는 안 오고." --- "고리가 왜 자꾸 상합니까." 엄가가 집게를 놓았다. "늘어나오." "…….." "뭐가요." "고리가." --- 엄가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쇠가 늘어나는 건 무게가 걸려서요. 사람이 지고 다니면 어깨 쪽 고리가 먼저 늘어나오. 그러면 헐거워지고 헐거워지면 짐이 흔들리오." "…….." "그래서 몇 번은 더 굵은 걸로 갈았소." --- 서진하는 손에 든 고리를 봤다. "굵게 가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짐이 무거우면 굵게 하오." 엄가가 다시 집게를 잡았다. "그 노인은 올 때마다 조금씩 굵어졌소. 마지막에 온 건 저만한 거였고." 벽에 걸린 것 중에 가장 큰 것을 턱으로 가리켰다. --- 서진하는 그것을 봤다. 지금 그의 궤짝 끈에 물려 있는 고리가 그것이다. 삼 년 전 겨울에 갈아 낀 것이고 그는 그날 문간에 앉아 손을 녹이고 있었다. 무엇을 고치는지 안 물었다. --- 그날 오단이 나오면서 한 말이 기억났다. 가자, 였다. 그 앞에 이름이 없었다. 사 년 동안 오단은 그를 부를 때 이름을 붙일 때도 있었고 안 붙일 때도 있었는데, 안 붙일 때가 더 많았다. 그때는 그게 말버릇인 줄 알았다. --- 한지운이 문간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어르신." "…….." "짐이 무거워지면 고리를 굵게 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짐이 안 무거워지는데 고리만 상하는 일도 있습니까." "있소. 사람이 험하게 지면 그렇소." --- 엄가가 서진하를 한 번 봤다. "그 노인은 험하게 안 졌소." 한지운이 아무것도 안 적었다. 적을 것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안 적었다. ---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삼 년 전에 저를 데리고 오셨을 때, 저를 뭐라고 하셨습니까." 엄가가 화덕을 뒤적이던 손을 멈췄다. "그건 왜 묻나."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 엄가가 한참 있었다. "짐꾼이라 했소." --- 풀무 소리가 났다. 아이가 발을 바꿔 밟았다. 화덕 안의 쇠가 붉었다가 조금 어두워졌다. 서진하는 손에 든 고리를 내려놓았다. 무릎에 놓았다가 상자 위에 놓았다. --- "제자라고는 안 하셨습니까." "안 했소." "…….." "표사라고도 안 하셨습니까." "안 했소. 짐꾼이라 했고, 그날 자네가 문간에 있어서 나는 자네가 삯 받고 온 사람인 줄 알았소." --- 엄가가 집게를 놓았다. "그런데 자네가 그 궤를 지고 있으니 오늘 다시 생각하오." "…….." "삯 받고 온 사람은 사 년을 안 붙어 있소." --- 마을 끝의 주막에서 잤다. 방이 하나였고 마루가 넓었다. 한지운이 마루에서 반권을 폈다. 서진하는 마당에 궤짝을 놓고 그 옆에 앉았다. 고리를 만져 봤다. 굵었다. --- "서 표사." "네." "제 추측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 서진하가 고개를 들었다. 한지운은 추측을 안 하는 사람이다. 개미가 줄지어 오르면 비가 온다는 것까지는 말하고, 할아버지가 반권만 갖고 돌아온 이유 앞에서는 멈춘다. 한 번 하면 그다음부터 그 눈으로 읽게 된다고 했다. "하십시오." --- "오 표두는 서 표사를 어디에도 안 적었습니다." 한지운이 반권을 무릎에 놓았다. "접수에도, 방명록에도, 이 행장에도 없습니다. 사 년입니다." "압니다." "…….." "안 적은 게 아니라 못 적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 "국이 없어서요." "그건 아닙니다." 한지운이 고개를 저었다. "국이 없어도 사람은 적힙니다. 제가 열두 번째 줄에 서 표사를 적었고 그 종이는 지금도 저희 집에 있습니다." "…….." "그러면요." --- "표사로 적힌 사람은 표물을 집니다." 한지운이 그렇게 말하고 멈췄다. 서진하는 그다음을 기다렸다. 한지운이 안 이었다. --- "한 소저." "네." "끝까지 말씀해 주십시오." 한지운이 붓을 들었다가 놓았다. "제가 말하면 그건 제 문장이 됩니다." "…….." "서 표사가 말하시면 서 표사 것이 됩니다." --- 서진하는 궤짝을 봤다. 밤이라 검게만 보였다. 봉인이 둘 있고 고리가 굵고 스물여섯 근 반이다. "안 적으면." 그가 말했다. "안 져도 됩니다." --- 한지운이 붓을 들었다. "적겠습니다." "…….." "추측이라고 쓰겠습니다." --- `추측. 오 표두는 서진하를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표사로 적히면 표물을 지게 되므로.` `이 줄은 확인된 것이 아니다.` 한지운이 붓을 닦았다. 닦고 나서 손을 한 번 멈췄다. --- "서 표사." "네." "이제 나머지도 이 눈으로 읽게 됩니다." 한지운이 반권을 덮었다. "할아버지 것도요." --- 서진하는 마당에 앉아 있었다. 오단은 죽으면서 한 마디를 했다. 여섯째에서는 소리를 내라. 그것은 종이가 아니다. 적지 않고 말로만 준 것이 무엇인지 그는 오늘 처음 세어 봤다. 하나였다. --- 새벽에 비가 왔다. 서진하는 궤짝을 마루 밑으로 옮겼다. 옮기면서 고리가 손에 걸렸다. 굵어서 걸렸다. 셋째 자리까지 이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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