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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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궤짝을 한 뼘 들었다 놓았다.
스물여섯 근 반이다. 팔은 여전히 어제와 같은지 몰랐다.
서진하는 그것을 지고 마당을 나섰다.
지기 전에 잠깐 있었다. 끈을 고쳐 쥐는 동안이 아니라 그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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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걸었다.
산자락을 오른쪽에 두고 남쪽으로 갔다. 길이 좁아지고 나무가 낮아졌다.
한지운이 걸으면서 반권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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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읽는 것은 처음 봤다.
여태 그는 앉아서 읽었다. 주막 마루나 나루 마당에서 무릎에 올려놓고 폈고, 걸을 때는 보퉁이에 넣었다.
오늘은 폈다.
한 장을 오래 보고 앞으로 넘겼다가 도로 뒤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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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저."
"네."
"뭘 보십니까."
"셋째 구간입니다."
한지운이 책을 덮지 않았다.
"내일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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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여섯 줄입니다."
"…….."
"넷째 구간은 넉 줄이었지요."
"넉 줄입니다."
한지운이 걸음을 늦췄다.
"셋째는 여섯 줄인데 그중 두 줄이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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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더 안 물었다.
물으면 한지운이 말할 것이다. 그런데 어제부터 이 사람은 묻기 전에 말하지 않는다.
닷새 전까지는 물으면 답했고 안 물어도 적었다.
지금은 적기 전에 오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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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낮에 마을이 나왔다.
집이 열댓 채다. 산 아래 밭이 층으로 놓여 있고 사람이 셋 나와 있었다.
밭 가장자리에 늙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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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시오."
"무덤을 보러 왔습니다."
남자가 호미를 놓았다.
"누구 무덤이오."
"정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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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서진하를 한참 봤다.
"그 이름을 아직 대는 사람이 있소."
"연수표국 표사입니다."
"…….."
"국은 없어졌습니다."
"알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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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일어섰다.
"변가요."
"서진하입니다."
"올라가려면 반각이오."
변가가 산 쪽을 가리켰다. 길이 밭 사이로 나 있고 위로 갈수록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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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지고는 못 올라가오."
변가가 궤짝을 봤다.
"길이 한 사람 폭이오. 중간에 바위를 옆으로 지나가야 하는데 등에 그만한 걸 지고는 안 되오."
"…….."
"두고 가시오. 우리 집 마루에 두면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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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대답을 안 했다.
궤짝 끈에 손을 얹었다. 얹고 있었다.
한지운이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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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 동안 오단이 이 궤를 남의 집 마루에 둔 적이 있는지 그는 모른다.
물어볼 사람이 없다.
장부에 그런 줄이 있으면 한지운이 말했을 것이고, 한지운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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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올라가겠습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변가가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두 배 걸리오."
"괜찮습니다."
"…….."
"손을 못 쓰오. 그건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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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니다."
"바위 지나갈 때 손으로 잡고 가야 하는데 등에 진 걸 붙들고 있으면 한 손밖에 못 쓰오."
변가가 호미를 다시 들었다.
"떨어지면 짐이 먼저 떨어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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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걸렸다.
바위는 중간쯤에 있었다. 길이 바위를 끼고 왼쪽으로 꺾이는데 그 자리에서 몸을 옆으로 돌려야 했다.
서진하는 왼손으로 바위를 짚고 오른손으로 궤짝 밑을 받쳤다.
받치는 손이 있으면 잡는 손이 하나다.
세 걸음을 그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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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서 그는 숨을 골랐다.
한지운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보퉁이 하나만 들고 왔으니 그럴 만했다.
무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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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었다.
봉분이 낮고 풀이 짧았다. 열 걸음쯤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각각 앞에 나무 팻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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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서 읽었다.
`鄭三`
옆의 것으로 갔다.
`鄭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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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았다.
글씨가 달랐다. 왼쪽 것은 획이 굵고 끝이 뭉뚝하고, 오른쪽 것은 가늘고 길었다.
같은 이름을 두 사람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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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궤짝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내려놓으려면 두 손이 필요하다. 무릎을 굽히고 한 손으로 끈을 풀고 두 손으로 받아 놓는다. 표사가 짐을 놓는 방법이다.
여기는 경사가 있었다.
놓으면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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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 채로 섰다.
무덤 앞에서 절을 하려면 손을 짚어야 한다. 팻말을 바로 세우려면 두 손으로 잡아야 한다. 풀을 걷어내려면 앉아야 한다.
셋 다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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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왼쪽 팻말 앞에 앉았다.
앉아서 팻말 아래의 흙을 손으로 다졌다. 기울어져 있던 것이 조금 섰다.
그러고 오른쪽으로 갔다. 오른쪽 것도 그렇게 했다.
서진하는 그것을 서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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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저."
"네."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압니다."
한지운이 손의 흙을 털었다.
"그런데 서 표사는 손이 없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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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가가 뒤에 올라와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모른다. 호미를 들고 왔고 그것으로 봉분 옆의 풀을 두어 번 쳤다.
"둘 다 정삼이오."
변가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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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둘입니까."
"모르오."
변가가 왼쪽을 가리켰다.
"이건 그해 여름에 생겼소. 이건,"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 뒤에 생겼소. 몇 해 뒤인지는 모르오."
"…….."
"누가 만들었습니까."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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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본 적은 있습니까."
변가가 호미를 내렸다.
"없소."
"…….."
"파면 하나는 비었을 텐데."
"그러니까 안 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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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가가 호미로 봉분 사이의 땅을 한 번 짚었다.
"둘 다 사람이 들었으면 하나는 남이오. 하나만 들었으면 나머지는 빈 것이고."
"…….."
"어느 쪽이든 파면 이름을 하나 지워야 하오."
변가가 호미를 어깨에 걸쳤다.
"우리 아버지가 안 팠고 나도 안 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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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다.
궤짝이 등에 있었다. 한 시간 지고 올라온 뒤라 어깨의 한 자리가 계속 눌려 있었다.
"어느 쪽이 먼저입니까."
"왼쪽이 먼저요."
"그러면 오른쪽은."
변가가 대답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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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보퉁이에서 반권을 꺼냈다.
새 책이 아니었다.
사십 년 된 것이고 실이 끊긴 자리가 있고 겉장이 두 번 덧대어져 있다. 여태 한지운은 그것을 읽기만 했다.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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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구간 장이었다.
여섯 줄이 있고 그중 둘이 이름이다. 나머지 넉 줄이 짧다.
한지운이 붓을 꺼냈다. 물을 조금 찍었다.
여백에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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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저."
서진하가 말했다.
"거기 적으십니까."
"적습니다."
한지운은 서진하를 안 봤다.
붓끝이 여백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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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둘. 이름 같음. 글씨 다름.`
새 책에 쓸 때보다 글씨가 작았다. 여백이 좁아서 그렇다.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들어갔다.
`이 구간에 날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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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 줄을 봤다.
"날씨요."
"다른 구간에는 다 있습니다."
한지운이 붓을 뗐다.
"첫째에 비, 둘째에 흐림, 넷째에 바람. 다섯째에도 있습니다."
"…….."
"셋째에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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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반권을 덮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걸으면서 적으신 분입니다. 걸으면 하늘을 봅니다."
"…….."
"안 적으신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서진하는 그다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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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반권을 덮었다.
덮고 보퉁이에 넣었다.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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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바위 자리에서 서진하는 다시 한 손으로 갔다. 올라올 때보다 다리가 떨렸다.
변가가 앞서 내려가면서 한 번 돌아봤다.
"거기다 놓고 가지 그랬소."
"…….."
"그러면 두 손으로 절을 하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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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을에 내려와서 마루에 궤짝을 놓았다. 두 손으로 놓았고 이번에는 소리가 안 났다.
한지운이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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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표사."
"네."
"오늘 왜 지고 올라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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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어깨를 만졌다.
눌린 자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엊그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안 적으면 안 져도 됩니다, 하셨습니다."
"…….."
"그게 어제까지 제 대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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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건 안 지는 이유가 됩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지는 이유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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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마루에서 잤다.
궤짝을 옆에 두고 손을 얹고 잤다. 고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굵어서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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