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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은 자리가 먼저 아프다

2

약지

수요일 아침에 소원이 어제 것을 꺼냈다. 접수대 앞이었고 나는 막 들어와서 가방을 내려놓은 참이었다. "원장님." "네." "어제 남기태 님 기록이요." --- "말씀하십시오." "저는 그거 비워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소원을 봤다. 반대할 줄 알았다. "의외입니다." "제가 뭐라고 할 줄 아셨습니까." "적어야 한다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 소원이 접수대 서랍을 닫았다. "모르는 걸 적으면 그게 진단이 됩니다." "…….." "나중에 누가 그 기록을 보면 원장님이 아니라 글자를 봅니다." 소원이 화면을 켰다. "그런데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하십시오." "안 적으신 거하고 못 적으신 거하고 어느 쪽입니까." ---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소원이 더 안 물었다. 그게 이 사람의 방식이다. 물어야 할 것을 물어 놓고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답은 기록에 남을 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열 시에 세 분 계십니다." "네." --- 첫 분은 서른한 살 남자였다. 한 달 전에 계단에서 미끄러져 손목을 짚었다고 했다. 정형외과에서 사진을 찍었고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직 아파요." "어디가요." 그가 왼쪽 손목의 엄지 쪽을 짚었다. --- 나는 그 자리를 눌렀다. 그가 표정을 바꿨다. "거기요." "…….." "사진 언제 찍으셨습니까." "다친 날요." --- 나는 손을 뗐다. "다시 찍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거기 아무것도 없다던데요." "그때는 없었을 겁니다." 그가 나를 봤다. --- "손목에는 사진에 늦게 나오는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처음에 안 보이다가 몇 주 지나서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뼈가 붙기 시작하면 그때 나옵니다." "그러면 지금은요." "지금은 저는 모릅니다." "…….." "제 손으로는 여기가 아프다는 것까지만 압니다." --- 그가 잠깐 있었다. "그럼 뭐 하러 왔나 싶은데요." "그럴 수 있습니다." 나는 종이에 정형외과 이름을 적었다. "여기 가시면 됩니다. 한 달 지났다고 말씀하시고, 처음 사진에 없었다고도 말씀하십시오." --- 그가 종이를 받았다. "그거 말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없었다는 걸 알면 다시 봅니다." --- 그가 문 앞에서 돌아섰다. "원장님." "네." "거기 가서 뭐라고 해요. 한의원에서 가라고 했다고 해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 "싫어하지 않을까요." "싫어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사진은 찍어 줍니다." --- 그가 나가고 나서 나는 기록을 적었다. `좌 수근부 통증. 수상 1개월. 초기 영상 이상 없음. 재촬영 권고.` 이건 다 적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것, 내가 권한 것. 내가 만진 것은 안 적었다. 만져서 안 것이 그가 이미 말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 점심을 먹고 아버지한테 갔다. 수요일마다 간다. 요양원은 여기서 버스로 스물두 정거장이고 면회는 두 시부터다. 아버지는 사 년째 거기 계신다. --- 아버지는 삼십 년 동안 동네에서 뼈를 만졌다. 간판은 없었다. 면허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냥 최씨 아저씨네라고 했고, 발목을 접질리거나 어깨가 빠지면 병원보다 먼저 왔다. 어떤 해에는 하루에 열 명씩 왔다. 지금은 오른손이 떨려서 젓가락을 왼손으로 쓰신다. --- "왔냐." "네." "…….." "밥은." "먹고 왔습니다." 아버지는 창가 자리에 앉아 계셨다. 오후에는 늘 거기 앉으신다. 오른손을 왼손이 덮고 있었다. 떠는 걸 누르는 자세다. 내가 앉으니까 왼손을 치웠다. --- 나는 아버지 앞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할지 정하고 오지 않는다. 정하고 오면 다 하고 나서 할 말이 없어진다. "아버지." "응." "갈비뼈요." 아버지가 나를 봤다. --- "부러진 자리가 붙으면 어떻게 됩니까." "두꺼워지지." "얼마나요." "만져질 만큼." 아버지가 왼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손끝에 걸려." --- "그게 언제 부러진 건지는 압니까." "모르지." 바로 나왔다. "오래된 건 매끈해. 얼마 안 된 건 거칠고." "…….."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이야." --- 나는 그 대답을 받아 적고 싶었다. 받아 적으면 진료기록에 못 쓰는 말이 된다. 아버지는 의료인이 아니고 이 대화는 진료가 아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정확했다. --- "원아." "네." "누구 만졌냐."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아버지가 창밖을 봤다. "세 개 있디." --- 나는 아버지를 봤다. "제가 몇 개라고 안 했습니다." "안 했지." "…….." "그런데 왜 셋입니까." 아버지가 웃지 않았다. "둘이면 안 물어." ---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옆 자리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소리를 크게 해 놓고 아무도 안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창밖을 계속 보고 계셨다. 창밖에는 주차장이 있고 차가 넉 대 있었다. "아버지." "응." "셋이면 어떻습니까." 아버지가 대답을 안 했다. --- 한참 있다가 아버지가 오른손을 들었다. 들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손끝이 떨렸다. "만져 봐라." "…….." "뭘요." "내 손." 나는 아버지 손을 잡지 않았다. --- 아버지가 손을 내렸다. "됐다." "아버지." "됐어." 아버지가 무릎에 손을 도로 놓았다. 왼손이 오른손을 덮었다. 그날은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 요양원을 나오는데 간병하시는 분이 따라 나왔다. "아드님." "네." "아버님이 요새 오른손을 자꾸 쓰시려고 하세요." "…….." "떨리시는데요." "떨리시죠. 그런데 자꾸 뭘 잡으려고 하세요. 어제는 수건을 짜시겠다고." 그분이 웃었다. "못 짜세요. 그래도 잡으세요." ---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수건은 두 손으로 짜는 것이다. 한 손이 떨리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손 중 하나가 떨리면 나머지 하나가 방향을 못 잡는다. 아버지는 그걸 나보다 잘 안다. 알면서 잡는 것이다. ---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왼손을 봤다. 약지 두 번째 마디가 바깥으로 조금 굽어 있다. 반지를 낀 적이 없어서 굽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열네 살 때 이렇게 됐다. --- 그날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무엇을 하다가 그렇게 됐는지는 안 적는다. 적으면 그것도 기록이 되고, 나는 그 일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붙기는 잘 붙었다. 아버지가 붙였다. --- 한의원에 돌아오니 네 시였다. 소원이 접수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원장님, 남기태 님 전화 왔었습니다." "뭐라고요." "닷새 뒤 예약 확인이요." "…….." "그것만요?" --- 소원이 접수 화면을 봤다. "하나 더 물으셨습니다." "뭘요." "차트에 뭐 적혔냐고요." --- 나는 접수대 앞에 섰다.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오신 날짜하고 어디가 불편하신지 적혀 있다고 했습니다." "…….." "그게 맞습니다." "맞습니다." 소원이 나를 봤다. "그런데 그분이 그다음에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 "끊으셨습니까." "아니요." 소원이 손가락으로 접수대를 한 번 짚었다. "칠 초쯤 있었습니다." "세셨습니까." "셌습니다." --- 나는 접수대에 손을 얹고 있었다. 칠 초는 짧다. 전화로 칠 초를 비워 두는 사람은 할 말을 고르고 있는 사람이거나, 이미 고른 말을 안 하기로 한 사람이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소원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서랍을 열었다. 어제 그린 종이가 있었다. 갈비뼈 열두 줄, 점 셋. 나는 그 종이를 꺼내서 책상에 놓고 한참 봤다. --- 점 옆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다. 날짜도 안 적었고 이름도 안 적었다. 그냥 선 열두 개하고 점 셋이다. 이건 기록이 아니다. 기록이 아니어서 아무 데도 안 간다. --- 나는 그 종이를 다시 접었다. 접다가 왼손 약지가 종이 끝에 걸렸다. 굽어서 걸렸다. --- 여섯 시에 문을 닫았다. 소원이 먼저 갔고 나는 진료실 불을 끄고 나왔다. 서랍은 안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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