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그릇 밑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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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뒤 장이 서기 전, 나흘이 지나갔다.
그 나흘 동안 국밥집엔 손이 뜸했다. 여각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이 저잣거리에 돌았으나, 값을 매기는 입은 조심스러웠다. 차경에게 외상 진 자가 반이었다. 그 반은 아직 어느 쪽에 얹혀야 할지 셈을 미루고 있었다.
남설은 그 나흘을 부뚜막에서 났다. 국자를 쥐는 손이 조금씩 굳은살을 얻었다. 뜨거운 뚝배기를 맨손으로 잡다 데어, 엄지 아래 두덩에 물집이 앉았다. 정만호는 그것을 보고도 말이 없었다. 다만 제 손을 한 번 폈다 쥐었다. 검 두덩의 굳은살이 두꺼운 손이었다.
사흘째 밤, 남설은 어미가 남긴 그릇을 꺼냈다.
빈 그릇이었다. 이 저잣거리에 처음 닿던 날, 값을 치를 게 이것뿐이라 문 앞에 든 그릇. 남설은 그것을 부뚜막 불빛 아래로 돌렸다. 밑바닥에 새김이 있었다. 삐뚤한 칼끝 자국. 어미가 유서와 함께 남긴 표식이었다.
"어르신." 남설이 그릇을 내밀었다. 끝이 날카로웠으나, 낮았다. "이 밑에 새긴 이름, 아십니까."
정만호가 그릇을 받았다. 손끝으로 밑바닥을 훑었다. 오래 궂은 날 어깨를 쑤셔 온 손이, 그 자국 위에서 멎었다.
"남가." 그가 낮게 말했다. "네 아비 성이지."
"아니요." 남설이 고개를 저었다. "성 밑에, 자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미가 파다 만 자국이요."
정만호가 그릇을 기울였다. 삐뚤한 획 아래, 파다 만 자리. 이름이 되려다 만 여백이었다. 그는 오래 그것을 보았다.
"어미는," 남설이 말했다. "벤 자의 이름을 알면서도, 이 밑에 다 새기지 못했습니다. 새기면 제가 좇을 테니까요. 좇으면 갚을 사람을 또 잘못 찾을까 봐요. 그래서 비워 뒀습니다."
부뚜막에서 국물이 끓었다. 정만호는 그릇을 부뚜막에 내려놓았다. 빈 채로.
"어깨가 왜 쑤시는지," 그가 국솥으로 몸을 돌렸다. 낮은 무게중심이 발밑에 배어 있었다. "물은 적 있지."
"이자라 하셨지요."
"이십 년 전 그 겨울," 그의 손이 국자를 잡았다. 두덩의 굳은살이 나무 자루에 익었다. "객주 뒷방에서 한 사람을 벴다. 관이 붙인 청부였고, 죄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뒤늦게 알았지."
국자가 국물을 저었다. 천천히.
"그 한 번을 벤 팔이," 그가 말했다. "십오 년을 국을 저었다. 벨 때 쓴 어깨로, 밥을 말았어. 결림은 그 어깨가 아직 그 겨울을 지고 있어서다. 잊으라고 저어도, 몸은 안 잊더구나."
남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집 앉은 손으로 빈 그릇을 다시 쥐었다. 밑바닥의 파다 만 자리가 손끝에 닿았다.
"어미가 이걸 비워 둔 건," 남설이 오래 만에 입을 열었다. "어르신을 좇지 말라는 게 아니라, 좇거든 이 자리에 무얼 새길지 제가 정하라는 뜻이었나 봅니다."
"새겨라." 정만호가 국자를 놓았다. "네 손으로."
남설은 칼끝을 들지 않았다. 붓도 들지 않았다. 다만 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밑바닥의 자국 위로 김이 올랐다. 파다 만 여백이 국물에 잠겼다.
"오늘은 여기까지 채우겠습니다." 남설이 그릇을 정만호 앞에 놓았다. 토렴한 국밥이었다. "값은—아직 안 정했습니다. 비워 둡니다. 어미가 그랬듯이요."
정만호는 그 그릇을 오래 보았다. 그러곤 수저를 들었다. 이십 년을 벤 어깨로, 처음 제 앞에 놓인 그 이름의 국물을 떠 넣었다. 뜨거웠다. 속까지 배어 있었다.
바깥, 눈이 그쳤다. 하루 뒤면 장이 섰다. 차경이 다시 올 것이었다. 닷새 뒤엔 없던 일이 될 거라 했다.
그러나 그릇 밑의 자리는, 이제 비어 있으되 임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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