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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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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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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째 아침, 눈이 그쳤다. 부뚜막 위의 종이는 밤새 김을 먹어 눅눅했다. 붉은 줄이 번져, 지운 이름들 위로 물길이 났다. 정만호는 그것을 집어 불빛에 비췄다. 붉은 줄 아래, 지워진 값의 흔적이 아직 종이에 눌린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지운다고 없어진 게 아니었다. 눌린 자리는 남았다. "어르신." 남설이 국자를 잡은 채 그 종이를 보았다. "그 붉은 줄, 저는 아직 다 믿지 않습니다." 정만호가 손을 멈췄다. "값을 지운 건 종이에서지요." 남설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냈다. 한 번. 두 번. "여각 창고까지 지운 건 아닐 겁니다. 사람은 놓는 법을 나흘 만에 배워도, 곳간은 나흘로 안 비워지니까요. 차 주인이 정말 놓았는지는, 저 종이가 아니라 다음 장이 서는 날에 압니다." "그래서." 정만호가 종이를 부뚜막 위에 도로 폈다. "네가 끓이는구나. 값을 안 정하고." 남설은 대꾸하지 않았다. 국물을 부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복단이 뚝배기를 이고 들어온 건 그때였다. 다리를 절었으나 걸음이 빨랐고, 얼굴이 붉었다. "어르신." 복단이 목소리를 늘였다. "여각 심부름꾼이 왔거든요. 아 글쎄, 차 주인이 편찮으시다고요. 나흘을 그 값 없는 이름 앞에 앉아 있었다더니, 어젯밤부터 자리에 누웠대요. 그런데—" 복단이 남설을 흘끗 보았다. "심부름 온 아이가 빈손이 아니었어요. 이걸 놓고 갔어요." 복단이 내민 건 엽전 한 꿰미였다. 열 냥. 꿰미로 묶인 큰돈이었다. "차 주인 말을 전하라 했대요." 복단이 침을 삼켰다. "'남 낭자 어미의 약값이올시다. 삼 년 전 한 냥. 그때 나는 이자를 붙였고, 이제 그 이자만큼을 여기 얹소. 이건 갚는 게 아니라, 셈을 바로 놓는 것이올시다.' 그랬대요." 부뚜막이 조용했다. 국물만 끓었다. 남설이 국자를 내려놓았다. 물집 위에 얇게 앉은 굳은살이 꿰미 위에서 멎었다. 어미가 진 빚은 한 냥이었다. 이자가 붙어 두 냥 닷 돈이 되었고, 정만호가 제 장부로 옮겨 이자를 지웠다. 그런데 차경이 지금, 지워졌던 그 이자를 열 냥으로 부풀려 되돌려 놓고 있었다. "이걸 받으면," 남설이 낮게 말했다. 끝이 날카로웠다. "차 주인 이름 옆자리에 값이 매겨집니다. 열 냥이라는 값이요. 값이 매겨진 이름은—" "사고팔 수 있게 되지." 정만호가 말을 받았다. "차 주인이 마지막까지 셈을 놓지 않은 겁니다." 남설이 꿰미를 밀어 놓았다. 받지 않았다. "제 자리에 값을 매겨, 도로 저울 위로 올라오려는 거예요. 편찮다는 것도—" 남설이 입을 다물었다. 진짜인지, 셈인지, 알 수 없었다. 정만호가 꿰미를 집었다. 오래 궂은 날 어깨를 쑤셔 온 손이었다. 그는 그것을 부뚜막 위, 눅눅한 종이 옆에 나란히 놓았다. 지운 이름들과, 새로 매겨진 값 하나. 둘을 나란히 두었다. "둘 다 셈이다." 정만호가 낮게 말했다. "놓은 척하는 셈과, 도로 무는 셈.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둘 중 하나로 마지막 값을 치르려 든다." "어느 쪽입니까." 남설이 물었다. "모른다." 정만호가 국솥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서 네가 가야지. 그때처럼." 남설은 앞치마 안의 접힌 종이를 한 번 눌렀다. 어미의 획과, 값이 비어 있는 두 글자. 그러곤 뚝배기 하나를 꺼냈다. 국물을 부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밥알 속까지 온기가 배도록. "이건 차 주인 몫입니다." 남설이 그릇을 쌌다. "값을 여쭈러 가는 게 아니라, 국이 식기 전에요." 정만호가 국자를 잡으려다, 손을 멈췄다. 국자는 남설의 손에 있었다. 바깥, 눈은 그쳤고 장은 서지 않았다. 부뚜막 위에 눅눅한 종이와 새 꿰미가 나란히 놓였고, 국은 종일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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