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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의 값

16

국이 식기 전에

여각 마당에는 눈이 반쯤 녹아 질척였다. 남설은 뚝배기를 앞섶에 품어 안았다. 김이 목덜미로 올라왔다. 국이 식지 않도록 걸음을 늦추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밥알 속까지 배게 하는 손놀림처럼, 걸음에도 완급이 있었다. 마당 한쪽에 심부름꾼 아이가 서 있다가 남설을 알아보고 안채를 가리켰다. 창고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을 흘끗 본 남설의 손끝이 뚝배기 위에서 잠깐 멎었다. 쌀섬이 그득했다. 짚신이 궤짝째 쌓였고, 베가 두루마리로 층층이 얹혀 있었다. 곳간은 비지 않았다. 종이에서 지운 값이, 벽 안쪽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남설은 그것을 오래 보지 않았다. 안채로 들었다. 차경은 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불 위로 나온 손이 야위었다. 셈을 세던 손이었다. 남의 사정을 저울에 얹던 손이었다. 그 손이 지금은 제 몸무게도 못 얹을 만큼 가벼워 보였다. "남 낭자." 차경이 눈을 떴다. 목소리에 물기가 없었다. "값을 여쭈러 오셨소." "국이 식기 전에 왔습니다." 남설이 뚝배기를 머리맡에 놓았다. 뚜껑을 열자 김이 방 안에 퍼졌다. 장국이었다. 집간장으로 잡은 맑은 간. "차 주인 몫이라 정 어른께서 끓이신 게 아닙니다. 제가 부었습니다." 차경이 그 김을 보았다. 오래. "열 냥은," 남설이 무릎을 접었다. "도로 가져왔습니다. 받지 않았어요." 차경의 야윈 손이 이불 위에서 미세하게 오므라들었다. "그럴 줄 알았소." "차 주인 이름 옆자리엔 아직 값이 없습니다. 열 냥을 얹으면 값이 매겨지고, 값이 매겨진 이름은 사고팔 수 있게 되지요." 남설이 끝을 낮췄다. 날카로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겨눌 곳을 바꿨을 뿐이었다. "제 손으로 도로 저울에 오르시려던 거지요. 죽을 때가 되어도 셈으로 마지막 값을 치르려고요." 차경이 천장을 보았다. 한참 만에 입을 뗐다. "이십 년을 셈으로 살았소. 붙인 사람은 이름이 안 남는다 했지. 나는 그 뒤에 숨어 밑천을 세었고." 그가 숨을 골랐다. "그런데 낭자가 내 이름을 적었소. 값도 없이. 처음으로 나도 장부에 오른 사람이 됐단 말이올시다. 그 자리가 어찌나 무겁던지." "열 냥으로 그 자리를 사서 도로 내리려 하셨습니까." "내리려던 게 아니라," 차경이 눈을 감았다. "값을 매기면, 최소한 셈은 되니까. 값 없는 이름은 셈이 안 되오. 셈이 안 되는 건,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남설은 대꾸하지 않았다. 뚝배기를 차경 쪽으로 조금 밀었다. 뚜껑 없이. 김이 그대로 올라오게. "창고를 봤습니다." 남설이 말했다. "종이에선 값을 지우셨는데, 곳간은 그대로더군요. 짚신도, 쌀도, 베도요. 지운다고 없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차경의 손이 멎었다. "어느 쪽이 진짜 차 주인이신지," 남설이 일어섰다. "저는 아직 모릅니다. 종이인지, 곳간인지. 놓으신 건지, 도로 무시려는 건지요. 그건 다음 장이 서는 날에 압니다." 남설이 문간에서 돌아보았다. "다만 국은 오늘 식습니다. 식기 전에 드세요. 값은 두 돈입니다. 여각에 오시면요." 차경이 야윈 손으로 뚝배기를 끌어당겼다. 손이 떨렸다. 수저를 드는 데 오래 걸렸다. 국물을 한 술 떠 입에 넣었다. 집간장의 간이 혀에 닿았다. 그가 수저를 쥔 채로, 오래 그대로 있었다. "낭자." 차경이 말했다. 목소리가 잠겼다. "창고 열쇠는 마루 밑에 있소. 저 곳간을, 낭자가 셈하시오. 나는 값을 못 매기니." 남설은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앞치마 안의 접힌 종이를 한 번 눌렀다. 어미의 획과, 비어 있는 두 글자. "곳간은 나흘로 안 비워집니다." 남설이 낮게 말했다. "차 주인 손으로 세우신 걸, 제 손으로 셈할 수는 없어요. 다만—" 문을 밀었다. 마당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 "국이 식으면, 다시 데워 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잡숫고 계세요." 바깥, 눈은 녹아 물이 되었고 장은 아직 서지 않았다. 여각 창고 문이 반쯤 열린 채였고, 안채에서는 한 사람이 식어 가는 국을 오래 떠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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