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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의 값

18

저울 없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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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레째 장이 파할 무렵, 여각 창고 문이 활짝 열렸다. 차경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있었다.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야윈 손으로 마루 밑에서 꺼낸 열쇠를 쥐고 있었다. 열쇠는 이미 쓸모가 없었다. 문은 반나절 전부터 열려 있었으니까. "차 주인." 남설이 뚝배기를 앞섶에서 꺼냈다. 김이 올라왔다. "국이 식었을까 봐, 데워 왔습니다." 차경이 그 김을 보았다. "곳간을 셈하러 오신 게 아니었소?" "셈하러 온 게 아닙니다." 남설이 그릇을 마루에 놓았다. "흩으러 왔어요." 복단이 뚝배기 광주리를 내려놓았다. 창고 안으로 성큼 들어가 짚신 궤짝 앞에 쪼그렸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세기 시작했다. "한 켤레, 두 켤레… 아 글쎄, 이게 다 열두 궤짝이거든요." 복단이 목소리를 늘였다. "베는 열여덟 필, 쌀은—" "값은 안 매겨요." 남설이 짚신 한 켤레를 집어 들었다. "세기만 하시고요." 남설은 그 짚신을 마당으로 가지고 나왔다. 눈길을 헤치고 온 노파가 좌판 어귀에 서 있었다. 남설이 짚신을 노파의 발치에 놓았다. "신을 사람에게요." 남설이 말했다. 값을 부르지 않았다. 노파가 젖은 짚신을 벗고 마른 것을 신었다. 그뿐이었다. 장부에 오를 이름도, 옆에 적을 값도 없었다. 차경이 마루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오래. 남설이 앞섶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정만호가 밀어 넣어 준 것. 지워진 이름들의 목록. 붉은 줄이 그어졌으나 눌린 자국은 종이 안쪽에 남아 있었다. 남설이 그것을 펼쳐 복단이 세어 부르는 수와 맞춰 갔다. "짚신 열두 궤짝." 남설이 종이의 한 줄을 짚었다. "여기, 지운 값이 짚신 열두 궤짝이라 적혔던 자리입니다. 지우셨는데, 곳간엔 그대로 있네요." 차경의 손이 열쇠 위에서 오므라들었다. "베도 맞습니다. 쌀도요." 남설이 종이를 접었다. "붉은 줄은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지운 게 아니라, 벽 안으로 옮겨 두신 것뿐이었습니다." "그걸 다 흩으면," 차경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여각엔 아무것도 안 남소." "남을 게 있으니 셈이 되는 거지요." 남설이 처음으로 끝을 낮췄다. 날카로움을 거둔 게 아니라, 겨눌 곳을 바꾼 것이었다. "값이 없어야 셈이 안 됩니다. 차 주인 손으로 이십 년 쌓은 걸, 값 없이 내려놓으시는 겁니다. 그게 저울을 놓는 거고요." 차경이 뚝배기를 끌어당겼다. 수저를 드는 데 오래 걸렸다. 국물을 한 술 떴다. 집간장의 간이 혀에 닿았다. 그가 수저를 쥔 채로 마당을 보았다. 노파가 마른 짚신으로 눈을 밟고 돌아가고 있었다. "낭자." 차경이 말했다. "저 짚신값은, 이제 누가 무오." "아무도요." 남설이 창고 문을 마저 밀어 열었다. 겨울 볕이 곳간 안으로 들었다. "흩어진 건 임자가 없으니까요." 복단이 쌀섬을 짊어지고 나왔다. 다리를 절었으나 걸음이 가벼웠다. 쌀이 없는 좌판 어귀에 그것을 부렸다. 값을 부르지 않았다. 좌판 주인이 어리둥절해 남설을 보았다. 남설은 고개만 저었다. 되물을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 차경이 국을 한 술 더 떴다. 손이 떨렸다. "정 어른은," 차경이 물었다. "오늘도 안 오셨소." 남설의 손끝이 접힌 종이 위에서 잠깐 멎었다. 그 안쪽엔 어미의 획이 든 다른 종이가 겹쳐 있었다. 두 종이가 앞섶에서 나란히 눌렸다. "부뚜막을 지키신다 했습니다." 차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말을 묻지 않았다. 이십 년 전 셈이 아직 제 앞에 놓인 적 없다는 것을, 그도 셈으로 살아온 자라 알았을 것이다. 놓이지 않은 셈은 값이 없고, 값이 없는 것은 재촉할 수 없다. 해가 기울 때까지 곳간은 흩어졌다. 짚신은 발치로, 쌀은 좌판으로, 베는 겨울을 나야 하는 이의 등짐으로. 복단이 부른 수와 종이의 지운 값이 마지막 한 줄까지 맞았다. 붉은 줄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빈 곳간 앞에서 남설이 문을 닫았다. 잠그지는 않았다. 잠글 것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차 주인." 남설이 뚝배기를 도로 광주리에 담았다. 국은 다 식어 있었다. "곳간은 비웠습니다. 이건 제가 셈한 게 아니라, 차 주인이 여신 겁니다." 차경이 빈 그릇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두 돈을 꺼내 그 곁에 세웠다. 정확히 두 돈이었다. "국밥값이올시다." 차경이 말했다. "여각에 왔으니." 남설이 그 두 돈을 집었다. 처음으로, 값을 받았다. 흩는 것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걸 이제 알았다. 국에는 값이 있었다. 곳간에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 장은 파했고 눈은 물이 되어 흘렀다. 앞섶에서 두 종이가 여전히 겹쳐 눌렸다. 한 장은 다 맞춰 비었고, 한 장은 아직 두 글자가 비어 있었다. 어미의 획 옆, 파다 만 자리. 국밥집 부뚜막에서 정만호가 국을 젓고 있었다. 시렁의 빈자리는 그대로였다. 남설이 문을 밀고 들어서자, 그는 국자를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곳간은." "비웠습니다." 남설이 두 돈을 부뚜막에 놓았다. "붉은 줄은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정만호가 그 두 돈을 보았다. 오래 궂은 날 쑤셔 온 어깨가 국솥 위로 낮게 굽었다. 그는 뚝배기 하나를 꺼냈다.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냈다. 한 번. 두 번. 밥알 속까지 온기가 배도록. "앉아라." 정만호가 국을 밀어 놓았다. "곳간은 다음 장이 아니었구나." 남설이 국을 받아 들었다. 김이 얼굴로 올라왔다. "그럼 다음 장은 뭡니까." 정만호의 손이 국자 위에서 멎었다. 이십 년을 미뤄 온 손이었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남설의 앞섶에서 삐져나온 종이 끝을 한 번 보았다. 어미의 획이 든, 두 글자가 비어 있는 그것을. 국은 식지 않았다. 여드레째 장이 저물고, 곳간은 비었고, 아직 놓이지 않은 셈 하나가 부뚜막 위 김 속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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