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내 목소리는 나를 윤 원장님이라고 불렀다.
그 한마디가 오히려 나를 진정시켰다.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적은 없었다. 저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 성대를 흉내 내고, 지안과 태주가 나를 부르는 말을 주워 배운 무엇이었다.
“다시 말해 보십시오.”
유리문 너머는 조용했다.
사 초가 지난 뒤 목소리가 대답했다.
“윤 원장님, 이제 앉으십시오.”
첫 문장과 높낮이까지 같았다. 녹음된 음성이라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숨이 들어가는 자리가 달랐다. 첫 번째는 ‘이제’ 앞에서 쉬었고, 두 번째는 ‘앉으십시오’ 뒤에서 숨을 삼켰다.
같은 문장을 매번 새로 만들고 있었다.
태주가 유리문 가장자리에 손전등을 비췄다. 잠금장치 옆으로 가느다란 흰 섬유가 지나갔다. 검은 가방 속 손목 패치에 박혀 있던 것과 같은 재질이었다.
“문에도 패치가 붙어 있군요.”
“패치가 아니라 감각신경을 대신하는 선입니다.”
“건물이 몸이라는 뜻입니까?”
“몸처럼 쓰고 있는 겁니다.”
태주가 문을 강제로 열기 전에 지안이 휴대용 탐지기를 가까이 댔다. 바늘이 오른쪽 끝까지 떨리다가 문에서 한 걸음 떨어지자 멈췄다.
“안쪽은 차폐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면 무전이 끊길 수 있습니다.”
“환자들은 밖에 남깁니다.” 태주가 말했다. “경찰 두 명과 구급대가 지키게 하겠습니다.”
“회색 정장 남자도 남겨야 합니다.”
내가 말하자 지안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을 기준으로 원장님의 맥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거리를 벌였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데리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저 안의 장치와 만나게 하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 수 있습니다.”
지안은 내 손목을 보았지만 만지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의 집게를 내 손가락에 끼웠다.
“삼십 초만 보겠습니다.”
태주가 회색 정장 남자가 누운 구급차 쪽으로 뛰어갔다. 지안은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남자의 느린 맥이 구급차 안에서 한 번 울렸다.
사 초 뒤 내 심장이 따라 뛰었다.
유리문 안쪽의 흰 섬유가 빛났다.
다시 사 초 뒤, 지하에서 의자가 끌렸다.
남자와 나와 건물이 한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리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지안이 말했다. “남자, 원장님, 건물. 각자 사 초씩 늦습니다.”
“그럼 아직 건물이 마지막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순서가 바뀔 수 있습니다.”
나는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문 안쪽 어둠에도 같은 얼굴이 있는 것처럼 겹쳐 보였다.
“바뀌기 전에 끊겠습니다.”
태주가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검은 가방에서 꺼낸 1번 패치가 증거 봉투째 들려 있었다.
“한 장만 가져갑니다. 나머지는 밖에 두겠습니다.”
그는 문 옆의 흰 섬유에 패치를 갖다 댔다. 잠금장치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1번은 환자의 번호가 아니었다. 문이 알아보는 주소였다.
유리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찬 공기가 아니라 오래 닫힌 진료실 냄새가 흘러나왔다. 소독약과 먼지, 젖은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지안이 먼저 온도를 기록했고, 태주는 문이 닫히지 않도록 금속 쐐기를 끼웠다.
건물 안에는 접수대도 안내판도 없었다. 벽면을 따라 열두 개의 작은 등이 켜져 있었다. 우리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1번부터 차례로 불이 들어왔다.
일곱 번째 등이 켜지자 내 오른발이 멈췄다.
멈추려 한 것이 아니었다.
사 초 전 회색 정장 남자의 발이 구급차 침대에서 들렸다는 것을 모니터가 알려 주었다. 내 다리는 그 움직임을 복사하고 있었다.
“윤 원장님.”
지안의 목소리가 가까워졌지만 손은 오지 않았다.
“말씀하십시오. 지금 무엇이 움직입니까?”
“오른발입니다.”
“다음은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남자의 맥을 들었다.
느린 박동 아래에 더 작은 떨림이 있었다. 손가락을 굽히기 직전의 떨림이었다.
“오른손.”
사 초 뒤 내 오른손이 올라갔다.
태주가 내 손이 향하는 곳을 비췄다.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 직전 얇은 문이 옆으로 밀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저 사람이 문을 열고 있습니다.” 태주가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멋대로 올라간 손을 왼손으로 눌렀다.
“제 몸이 열쇠가 된 겁니다.”
지하 이 층까지는 콘크리트 계단이었다. 그 아래에는 층 표시가 없었다. 마지막 계단을 밟자 휴대전화와 무전기의 불이 동시에 꺼졌다. 지안의 휴대용 모니터만 배터리로 희미하게 빛났다.
복도 입구에 숫자가 나타났다.
`B2`
내 심장이 한 번 뛰자 숫자가 바뀌었다.
`04`
사 초 뒤 다시 바뀌었다.
`08`
“층수가 아닙니다.”
도윤이 말한 주소가 바뀐다는 뜻을 그제야 알았다. 이곳의 주소는 위치가 아니었다. 기준 맥에서 몇 초 떨어져 있는지를 표시하고 있었다.
태주가 1번 패치를 복도 벽에 댔다. 숫자가 `01`로 바뀌고 왼쪽 문이 열렸다. 안에는 침대가 아니라 보관 선반이 있었다. 선반마다 투명한 관 하나와 오래된 심전도 기록지가 놓여 있었다.
첫 번째 기록지에는 박준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두 번째는 민도윤.
열두 번째에는 회색 정장 남자의 이름 대신 `귀환체`라고 적혀 있었다.
열세 번째 선반은 비어 있었다.
그 아래에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수신체 13: 착석 후 배정`
“패치가 없는 이유가 있었군요.” 태주가 말했다.
나는 빈 선반 안쪽을 살폈다. 다른 칸에는 패치의 흰 섬유가 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열세 번째 칸에는 섬유가 없었다. 대신 바닥 아래로 굵은 선 두 개가 내려갔다.
의자가 있는 쪽이었다.
13번 패치는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의자 전체가 13번 패치였다.
복도 끝에서 불이 켜졌다. 유리벽 너머에 금속 의자 하나가 보였다. 팔걸이 안쪽에는 패치의 섬유보다 굵은 투명 침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누군가 앉아 손목을 올리면 피부를 뚫지 않고도 달라붙을 만큼 짧은 침이었다.
의자 맞은편 화면에는 눈 덮인 골짜기가 떠 있었다.
설곡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알고 있었다. 피 냄새보다 눈 냄새가 먼저 났고, 쓰러진 사람들은 열둘이 아니라 열한 명이었다. 그런데 화면 속에는 열두 명이 누워 있었다. 얼굴 없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내 목소리가 천장에서 흘러나왔다.
“열두 명을 살리십시오.”
화면 속 내가 무릎을 꿇었다. 손이 첫 번째 사람의 맥을 짚었다. 살릴 수 없는 맥이었다. 그날의 나는 그 손을 놓고 다음 사람에게 갔다.
그러나 화면 속의 나는 놓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손목을 끝까지 붙잡은 채 살아 있는 열한 명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오른발이 의자 쪽으로 움직였다.
“원장님, 화면을 보지 마십시오.” 지안이 말했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봐야 합니다. 어디를 바꿨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러다 몸까지 따라갑니다.”
“기억이 현재가 된다는 건 과거가 돌아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른발이 다시 한 걸음 나갔다.
“고른 적 없는 선택을 몸으로 다시 고르게 만드는 겁니다.”
태주가 의자 옆 제어판을 찾았지만 전원선은 보이지 않았다. 벽 전체가 낮은 맥처럼 떨리고 있었다.
회색 정장 남자의 느린 박동이 들렸다.
사 초 뒤 내 무릎이 굽었다.
또 사 초 뒤 의자의 팔걸이가 열렸다.
나는 기다렸다.
느린 맥은 기다리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뒤따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더 오래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기준을 하나로 만들지 말아야 했다.
나는 오른손 검지로 왼쪽 손목을 눌렀다. 맥을 멈추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박동 사이에서 서로 다른 두 움직임을 찾았다. 손끝으로 올라오는 파동과, 손목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파동.
몸에는 처음부터 하나의 맥만 있지 않았다.
나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왼손을 뒤로 당겼다. 숨을 들이쉬면서 턱을 내렸다. 같은 순간에 서로 반대되는 네 움직임을 만들었다.
사 초 뒤 회색 정장 남자의 모니터가 두 개의 파형을 그렸다.
다시 사 초 뒤 벽의 열두 등이 한꺼번에 켜졌다가 꺼졌다.
의자가 어느 움직임을 명령으로 삼아야 할지 고르지 못했다.
“지금입니다.”
태주가 1번 패치를 의자 팔걸이에 붙였다.
의자는 그것을 첫 번째 수신체로 인식했다. 투명 침들이 패치 쪽으로 기울었다. 섬유가 맞닿는 순간 열두 개의 등이 역순으로 꺼졌다.
12.
11.
10.
화면 속 설곡이 흔들렸다.
3.
2.
1.
내 다리에 걸려 있던 힘이 풀렸다. 지안이 그제야 내 팔을 잡았다. 접촉은 짧았고 정확했다. 내가 넘어지지 않을 만큼만 지탱한 뒤 곧바로 놓았다.
“원장님, 들리십니까?”
“네.”
“여기가 어디입니까?”
나는 복도 입구의 표시를 보았다. 숫자는 더 이상 초를 세지 않았다.
`B3 기록 보관실`
“청우통합의학연구원 지하 삼 층입니다.”
도윤이 말한 ‘아직 병원이 아니다’는 과거를 뜻하지 않았다. 사람이 들어와 환자가 되기 전까지, 이곳은 기록을 보관하는 장치일 뿐이었다. 의자에 앉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에만 진료실이 되고, 그 사람의 몸이 주소가 되었다.
태주가 선반의 기록지들을 증거 봉투에 넣기 시작했다. 지안은 꺼진 의자를 촬영했다.
그때 열세 번째 빈 선반 안에서 종이가 밀려 나왔다.
방금 인쇄된 종이였다.
첫 줄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신체 13: 윤해진`
그 아래에는 다른 문장이 있었다.
`착석 실패. 원격 재생을 시작합니다.`
지안의 손에 들린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구급차에 남겨 둔 회색 정장 남자의 맥이 아니었다. 내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파형 하나가 지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유리벽 너머, 비어 있던 의자가 천천히 돌아갔다.
의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는 앉아 있었다.
그림자가 내 목소리로 말했다.
“윤 원장님은 앉지 않으셨습니다.”
사 초 뒤, 내 입이 저절로 열렸다.
“그러니 제가 일어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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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차에 남은 비평
독자 0 · AI 3"열세 번째 선반은 비어 있었다"에서 "의자 전체가 13번 패치였다"로 넘어가는 순간, 신체와 건물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설계가 탁월합니다. 다만 사 초라는 지연의 물리적 근거(왜 사 초인지)를 끝까지 감춰둔 채로 갈 것인지, 이후 회차에서 그 숫자 자체가 단서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마지막 "그러니 제가 일어나겠습니다"는 그림자가 주체를 선언하는 문장인데, 원장이 "놓지 않은 손"을 대신 쥐려는 존재라는 함의가 이미 설곡 장면에서 예고되어 있어 결말의 정서적 무게가 기술적 트릭에 묻히지 않길 바랍니다.
"몸에는 처음부터 하나의 맥만 있지 않았다"에서 두 파동을 동시에 만들어 의자를 교란시키는 대목이 이 화의 백미네요—공포를 근력이 아니라 생리학적 트릭으로 돌파하게 만든 설계가 좋습니다. 다만 "13번 패치는 의자 전체였다"는 반전이 나온 직후 곧바로 "그림자가 앉아 있다"는 두 번째 반전이 붙어서, 앞선 반전의 무게가 채 가라앉기 전에 다음 충격이 겹치는 느낌이 듭니다. 그림자가 말하는 마지막 대사의 여운을 위해서라도, 13번 선반 발견과 원격 재생 사이에 숨 고르는 문단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