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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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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초를 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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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이 퇴원 가방을 쌌다. 세면도구를 먼저 넣고, 갈아입을 옷을 그 위에 올리고, 지퍼를 한 번에 닫았다. 중간에 손을 멈춘 적이 없었다. “원장님도 오늘 나가십니까?” “내일이라고 합니다.” “원장님이 더 오래 계시네요.” 그는 웃었다. 비 오는 밤에 한의원 문턱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과 같은 얼굴이었다. 창밖 정문 앞에서는 흰 승합차의 뒷문이 아직 열려 있었다. 점검팀 두 사람이 장비 가방을 내리고 서류를 확인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한 사람이 건물을 올려다보았고, 사 초 뒤에도 다른 사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그 사 초를 세고 있는 나 자신을 알아차렸다. 어제까지 사 초는 나에게 오는 것이었다. 오늘은 내가 세고 있었다. “저 차 아십니까?” 도윤이 물었다. “모릅니다. 그래서 보고 있습니다.” 강태주가 병실로 들어왔다. 외투가 젖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는 도윤에게 목례를 하고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재활병원에서 받아 왔습니다.” “외삼촌 기록입니까?” “면회 기록하고, 병실에서 나온 메모입니다.” 지안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는 봉투를 열기 전에 내 손목을 짚었다. 짧았다. “앉아서 보십시오, 환자분.” 봉투 안에는 복사지 몇 장이 있었다. 면회 기록에는 내 이름이 열네 번 적혀 있었다. 현대로 돌아온 뒤 외삼촌을 찾아간 횟수였다. 나는 그보다 자주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 다른 종이가 있었다. 병실 서랍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줄이 그어진 공책을 찢은 종이였고, 왼쪽에 날짜, 오른쪽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5/9 조카. 62` `5/26 조카. 41` `6/17 조카. 22` 숫자는 계속 내려갔다. “단위가 뭡니까?” 태주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초입니다.” “무슨 초요?” “제가 외삼촌 손목을 잡고 있던 시간입니다.” 재활병원의 병실은 늘 같은 냄새가 났다. 나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외삼촌 옆에 앉아 손목을 잡았다. 처음에는 오래 잡았다. 뇌 안에 고인 피와 오래된 두려움을 읽으려고 했다. 읽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는 짧아졌다. 나는 그것을 세어 본 적이 없었다. 외삼촌은 세고 있었다. “왜 이걸 적습니까?” 태주가 물었다. “의원이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하면 손을 놓습니다.” 내가 말했다. “놓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그 사람의 판정 기준입니다.” 지안이 종이를 넘겼다. 마지막 장에는 날짜가 세 개 더 있었다. `7/2 조카. 9` `7/19 조카. 4` 거기서 숫자가 멈췄다. “사 초.” 지안이 말했다. “어제 화면에 뜬 숫자입니다.” `구제 판정창 4.0초` 세림바이오가 설곡의 기록에서 뽑아냈다고 생각한 숫자는 설곡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눈밭에서 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숫자를 잰 사람은 재활병원 침대에 누워 조카의 손을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기억을 돌려준다고 했답니다.” 태주가 조서 사본을 꺼냈다. “외삼촌 진술은 못 받았지만, 병원 직원이 기억합니다. 누가 찾아와서 뇌 치료 얘기를 했고, 그 뒤로 공책을 사 오라고 했다고요.” “누나 얼굴을 잊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였다. 나는 종이를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62초에서 4초까지 내려가는 동안 외삼촌은 매번 나를 기다렸고, 매번 내가 손을 놓는 것을 셌고, 그것을 적었다. 그리고 그 숫자를 넘겼다. 지안이 마지막 장을 넘겼다. 한 줄이 더 있었다. `8/1 조카. ` 숫자 칸이 비어 있었다. 대신 그 옆에 글씨가 있었다. `놓지 않음` 팔월 일 일은 내가 사고를 당한 날의 전날이었다. 그날 나는 외삼촌의 병실에 가지 않았다. “이날 면회 기록이 있습니까?” 지안이 물었다. 태주가 목록을 확인했다. “없습니다.” 오지 않은 조카를 두고 외삼촌은 그 칸을 비워 두었다. 그리고 숫자 대신 세 글자를 적었다. 병실이 조용했다. 도윤이 가방 지퍼를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소리를 내려고 그런 것 같았다. “저 나가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도윤 씨한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지안이 자기 태블릿을 켰다. “그 전에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저장 장치에서 나온 자료를 밤에 봤습니다.” “열세 번째 것 말씀입니까?” “용량이 이 메가바이트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파일 목록을 띄웠다. “맥파 원본이 없습니다. 심전도도 없습니다. 남아 있는 건 조건문뿐입니다.” 화면에 짧은 줄 두 개가 떠 있었다. `맥 확인 → 반응 없음 → 4.0초 대기 → 다음 대상` `반응 있음 → 처치 지시 → 대기 없음` 나는 그 두 줄과 외삼촌의 공책을 나란히 놓았다. 같은 것이었다. 한쪽은 손으로 적혔고 한쪽은 기계가 읽었다. “맥은 옮길 수 없습니다.” 지안이 말했다. “사람 하나의 하루치 심전도가 이 파일보다 백 배 큽니다.” “그럼 창고의 열두 명은 왜 필요했습니까?” 태주가 물었다. “규칙이 사람에게서만 나오니까요.” 가방 안에서 들었던 빈 맥의 정체가 그제야 맞아떨어졌다. 사람도 기계도 아닌 신호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이유를 뺀 뒤 남은 절차였다. 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숫자 하나와 이름 하나면 됐다. “그러면 열두 명은 어떻게 됩니까?” “몸에 남은 게 없습니다.” 지안이 파일을 닫았다. “다시 심으려면 다시 붙여야 하고, 붙이려면 사람이 가야 합니다.” “그건 제 일입니다.” 태주가 말했다. 지안이 병동에 연락해 퇴원 준비를 지시했다. 수화기 너머로 간호사가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준호, 민소정, 민도윤. 어제까지 번호로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전산실 직원이 어제 뽑아 둔 화면을 다시 열었다. 취소된 오더 아래 예약 항목의 날짜 칸이 채워져 있었다. `분류 재검토: 오늘 10:21` “점검이 끝나는 시각입니다.” 태주가 말했다. “바꾸는 게 점검이겠군요.” 재검토에는 근거 문서 열한 장이 걸려 있었다. 임대차 계약서, 개원 신고 서류, 의료폐기물 위탁 계약서. 여덟 번째에서 지안의 손이 멈췄다. `진료정보 제공 동의서 — 대리인 서명` `관계: 보호자(외삼촌)` 서명 아래 생년월일의 3은 가운데 획이 두 번 끊겨 있었다. 접수 날짜는 외삼촌이 쓰러지기 넉 달 전이었고, 접수 창구는 청우한의원 주소였다. 내가 그 건물에 가 보기도 전이었다. “본인 확인은 받았습니까?” 태주가 물었다. 직원이 이력을 열었다. 비어 있었다. “한 번도 안 왔습니다.” “막을 수 있습니까?” “재검토는 업체 항목이라 손댈 수 없습니다. 다만 분류가 미리 확정돼 있으면 단독 계정이 못 바꿉니다. 근거 문서가 둘 이상이면 사람이 확인해야 넘어가고요.” “하나면요?” “그 하나로 바뀝니다.” 지안이 어제 남긴 진료 기록을 열었다. 한 장이었다. “태주 씨, 조서에 어제 제 상태가 남아 있습니까?” “부축받아 올라왔다고 적었습니다. 지금 보내겠습니다.” 두 장이 됐다.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외부 문서는 근거로 안 잡힐 수 있습니다. 병원 안에서 나온 게 하나 더 있으면 확실합니다.” 도윤이 퇴원 가방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제가 씁니까?” “어제 지하에서 나올 때 저를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형사님이 부축하고 계셨어요.” “그걸 진술로 남겨 주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나를 보았다. “원장님이 환자라고 쓰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도윤은 협탁 위의 볼펜을 집었다. 한 번에 집었다. 간호사가 가져온 양식에 이름과 날짜를 적고, 본 것을 세 줄로 썼다. 획이 끊기지 않았다. 세 건이 등록되자 화면 위쪽 항목의 색이 바뀌었다. `분류: 환자 (확정)` `변경: 사람 확인 필요` 열 시 이십일 분에 예약된 재검토가 실행됐다. 화면이 한 번 깜빡였다. `재검토 불가 — 확정 분류` 서버실 문이 열렸다. 점검팀 두 사람이 나와 대장에 서명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창밖에서 흰 승합차가 정문을 빠져나가는 데 한참이 걸렸다. 아침 면회객들의 차가 앞을 막고 있었다. 태주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짧았다. “다른 병원에서도 한 건 있었습니다.” “시행됐습니까?” 지안이 물었다. “야간 간호사가 확인 전화를 걸었답니다. 담당의가 그날 당직이 아니었대요.” “전화를 안 받았으면요?” “두 번 걸었답니다.” 지안이 태블릿을 껐다. 도윤이 가방을 들고 병실 문 앞에 섰다. 나는 그를 따라 복도까지 나갔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한 번도 발을 바꿔 딛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그가 돌아섰다. “원장님, 야간 진료 언제 다시 합니까?” “모르겠습니다.” “하시면 가겠습니다. 아픈 데 없어도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나는 병실로 돌아와 외삼촌의 종이를 다시 접었다. 마지막 줄이 안쪽으로 들어가게 접었다. “서 선생님.” “네.” “외출 허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청우한의원입니다. 열한 장 중에 열 장은 제가 썼습니다. 나머지 한 장 원본이 거기 서류함에 있습니다.” 지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창가로 가서 정문 쪽을 한 번 보고 돌아왔다. “혼자 가시는 겁니까?” “태주 씨가 갑니다.” “제가 묻는 건 그게 아닙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어제 지하에서 내 손목을 받치던 얼굴이었다. “혼자 가지 않겠습니다.” 그가 가운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작성자 칸에 그의 이름이 들어갔고, 환자 칸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 “여섯 시까지입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십시오.” “그 한의원은 밤에 여는 곳입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나는 허가서를 주머니에 넣었다. 외삼촌의 종이가 든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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