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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22

단축

이 회차는 이전 비평을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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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태주에게 전화해서 하나를 더 물었다. "조서에 그 사람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어느 분이요." "회색 정장 남자요." "성명 불상 남자입니다." "다섯 달 동안요." "다섯 달 동안 그렇습니다." 나는 접수대에 앉아 있었다. 어제 쓴 진료기록부가 펴져 있었다. "제가 왜 안 물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 "그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태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열두 번째 수신체, 귀환체, 열세 번째의 길잡이. 저는 그 사람을 부를 때마다 기능으로 불렀습니다. 회색 정장도 사람 이름이 아니라 옷 이름이고요."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사님은 성명 불상이라고 적으셨습니다. 그건 이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모른다는 뜻입니다." "…….." "저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찾겠습니다." 태주가 말했다. "네." "원장님은 진료 보십시오." --- 낮에 손님이 셋 왔다. 허리가 아픈 여자, 손목이 아픈 남자, 그리고 어깨 환자가 다시 왔다. 어제 백육십 도까지 올라갔던 팔이 오늘 아침에 다시 내려갔다고 했다. "다시 놓겠습니다." "어제보다 나은데 왜 내려가요?" "근육이 원래 자세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세 번쯤 하면 자리를 잡습니다." "세 번요." "안 잡히면 안 잡힌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침을 놓고 십오 분 두었다. 그동안 나는 접수대에서 진료기록부를 정리했다. 세 사람 다 응급이 아니었다. 세 사람 다 마지막 칸에 같은 줄을 적었다. `판정 전 대기 없음. 응급 아님.` 적을 필요가 없는 줄을 세 번 적었다. --- 여덟 시 사십 분에 남자가 들어왔다. 예순 안팎이었다. 혼자였고 걸어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접수대 앞에 서더니 잠깐 그대로 있었다. "체한 것 같아서요." "언제부터입니까." "저녁 먹고요. 한 시간쯤 됐습니다." 목소리가 낮았고 말끝이 짧았다. 참는 사람의 말투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침대에 앉히고 겉옷을 벗게 했다. 셔츠 등판이 젖어 있었다. 가게 안은 덥지 않았다. "땀이 많이 나십니까." "먹고 나서부터요." 체온계를 댔다. 정상이었다. 혈압을 쟀다. 위쪽이 낮았다. "어디가 답답하십니까." 그가 명치를 가리켰다. 그러고 나서 손을 조금 위로 올렸다. "여기도 좀." 가슴 가운데였다. "왼팔은 어떻습니까." "…….." "저리거나 무겁지 않으십니까." "아까부터 좀 무겁긴 한데 그건 제가 오늘 짐을 날라서요." 나는 그의 왼손을 잡았다. 손끝이 찼다. 맥을 짚었다. --- 박동이 고르지 않았다.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니었다. 세 번에 한 번씩 한 박자가 빠졌다. 빠지고 나서 다음 박동이 조금 세게 왔다. 손끝을 조금 옮겨 깊이 눌렀다. 얕게 짚었을 때보다 세게 왔다. 표면이 아니라 안쪽에서 밀려 나오는 힘이었고, 그 힘이 일정하지 않았다. 중원에서 이 맥을 여러 번 짚었다. 산을 넘어온 늙은 짐꾼이 마당에 앉아 있던 날이 있었다. 숨은 붙어 있고 말도 했고 물도 마셨다. 나는 그날 다른 환자가 급해서 그를 뒤로 미뤘다. 미룰 만하다고 봤다. 반 시진 뒤에 그는 앉은 자리에서 넘어갔다. 그때 내가 짚은 맥이 이 맥이었다. 그 뒤로 나는 이 박동을 만나면 다른 걸 다 뒤로 미룬다. 배운 게 아니라 그날 하나 잃고 얻은 것이다. 지친 심장을 살리는 방법은 그때도 지금도 침이 아니다. 중원에서는 그다음이 없었다. 여기에는 있다. 턱을 봤다. 그가 자꾸 아래턱을 만지고 있었다. "턱도 아프십니까." "이가 아픈가 싶었는데." 나는 손을 놓았다. 벽시계를 봤다. 여덟 시 사십삼 분이었다. 들어온 지 삼 분이었다. --- 벽에 붙은 종이가 접수대 옆에 있었다. `하나. 응급 판정 전 최소 이십 분을 본다.` 이십 분을 보면 아홉 시 삼 분이다. 이십 분은 내가 정한 숫자였다. 임 선생이 세던 숫자였고 배준상이 삼십 년 쓴 숫자였고 그가 십오 분으로 줄인 숫자였다. 나는 그것을 벽에 붙이면서 줄이지 않겠다고 쓰지 않았다. `둘. 이십 분을 줄일 때는 줄인 사람의 이름과 이유를 적는다.` 이 줄을 쓸 때 나는 배준상을 생각하면서 썼다. 그가 줄였고 이름을 안 남겼으니, 줄이려면 이름을 남기라는 뜻으로 썼다. 쓸 때는 그게 나한테 적용될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이십 분을 채우면 나는 규칙을 지킨 사람이 된다. 채우는 동안 이 사람은 앉아 있고, 나는 옆에서 맥을 다시 짚고, 아홉 시 삼 분에 판정한다. 그때 구급차를 부르면 도착이 아홉 시 십 분쯤이다. 지금 부르면 여덟 시 오십 분이다. 이십 분이라는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안다. 응급실에서 소생을 얼마나 이어갈지 재는 숫자다. 사람이 이미 쓰러진 뒤에 쓰는 숫자다. 이 사람은 앉아 있다. 앉아서 자기 턱을 만지고 있다. 쓰러지기 전을 재는 데는 다른 숫자가 필요하다. 나는 그 숫자를 갖고 있지 않았다.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 침 놔주시면 되죠?" "아닙니다." 나는 접수대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 구급차 부르겠습니다." "예? 아니 저는 체한 건데." "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뭔데요." "제가 여기서 확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두 번 가고 연결됐다. 증상과 활력징후를 불렀다. 식은땀, 명치와 가슴 가운데 통증, 왼팔 무거움, 아래턱 통증, 혈압 낮음, 맥 결체. 나이와 주소를 불렀다. 끊고 나서 남자에게 갔다. "눕지 마시고 이대로 앉아 계십시오. 숨을 억지로 크게 쉬지 마십시오." "그렇게 심각한가요." "아직 모릅니다." "모르는데 부르셨어요?" "몰라서 부릅니다." --- 구급차는 육 분 만에 왔다. 대원들에게 같은 내용을 다시 전달했다. 언제부터인지, 무엇을 봤는지, 무엇을 안 했는지. 침은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자가 들것에 실리기 전에 나를 봤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면 어떡해요." "아무것도 아니면 좋습니다." "돈은요." "안 받았습니다." 구급차 문이 닫혔다. 붉은 불빛이 젖지 않은 골목을 훑으며 멀어졌다. --- 가게로 들어와 접수대에 앉았다. 진료기록부를 폈다. 날짜와 이름을 적고 증상을 적었다. 처치란에는 아무것도 안 적었다. 침을 놓지 않았으니 적을 게 없었다. 마지막 칸에서 펜을 멈췄다. 지난 사흘 동안 나는 이 칸에 같은 줄을 적어 왔다. 판정 전 대기 없음, 응급 아님. 응급이 아니었으니 대기가 필요 없었고 필요 없는 걸 적었다. 오늘은 필요했다. `대기 이십 분 → 삼 분으로 단축.` `단축자: 윤해진.` `사유: 발한, 흉골 하부 및 가슴 중앙 통증, 좌측 상지 중압감, 하악 통증, 맥 결체. 심장 문제 의심. 본원에서 확인 불가.` `처치 없음. 이송 우선.` 펜을 놓았다. --- 배준상은 이십 분을 십오 분으로 줄였다. 나는 오늘 이십 분을 삼 분으로 줄였다. 그가 줄인 오 분보다 내가 줄인 십칠 분이 더 크다. 숫자만 보면 내가 더 많이 줄였다. 그런데 그가 줄여서 만든 것은 다음 대상으로 넘어가라는 문장이었고, 내가 줄여서 만든 것은 여기서 못 본다는 문장이었다. 같은 단축인데 손이 가는 방향이 반대다. 한쪽은 놓는 쪽으로 줄이고 한쪽은 넘기는 쪽으로 줄인다. 그리고 오늘 그 십칠 분을 줄인 사람 이름이 종이에 적혀 있다. 틀렸으면 내 이름이 남는다. 그 남자가 정말 체한 것이었으면 나는 구급차를 헛으로 부른 한의사가 되고 그것도 여기 적혀 있다. 배준상의 십오 분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것이 나머지 반이었다. --- 열한 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지안이었다. "방금 들어온 환자분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조영술 들어갔습니다." "…….." "보내주셔서 다행입니다." "…….." "원장님." "네." "몇 분 보셨습니까." "삼 분이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적으셨습니까." "적었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서 선생님." "네." "오늘 제가 규칙을 어겼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가 숨을 한 번 쉬었다. "어긴 게 아니라 쓴 겁니다." "…….." "안 줄이겠다고 쓰신 게 아니잖습니까." "…….." "줄일 때 이름을 적으라고 쓰셨고, 오늘 적으셨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나는 진료기록부를 덮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자정까지 오십 분 남아 있었고 손님은 더 오지 않았다. 열한 시 사십 분에 벽의 종이를 떼어 다시 붙였다. 아래쪽 모서리가 들떠 있었다. 붙이면서 셋째 줄을 봤다. `셋. 화면은 이름을 적지 않는다.` 오늘 이름을 적은 건 화면이 아니라 나였고, 적힌 이름이 틀렸을 수도 있다. 틀렸으면 내일 그 사람이 멀쩡히 걸어 들어와서 왜 구급차를 불렀냐고 물을 것이다. 물어보러 올 수 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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