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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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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소견 없음

이 회차는 이전 비평을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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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는 다음 날 오후에 왔다. 가운데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앉지 않고 접수대 앞에 섰다. "하성규 씨 확인됐습니다." "실존합니까." "실존합니다. 마흔넷이고, 전과 없고, 주민등록 말소 직전이었습니다." "말소요?" "이 년 동안 아무 데도 안 잡혔습니다. 건강보험도 끊겼고요." 그는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세림바이오 직원 명부에도 없습니다. 용역 계약도 없고요." "그럼 그 사람이 창고에서 뭘 한 겁니까." "그걸 지금 묻고 있습니다." 태주가 종이를 한 장 넘겼다. "삼 년 전 기록은 좀 있습니다. 물류 하청, 대리운전, 그리고 임상시험 참여." "임상시험이요." "생동성 시험입니다. 약 먹고 며칠 입원하고 돈 받는 거요. 삼 년 동안 여섯 번 했습니다." "여섯 번이면 많은 편입니까." "업체에서 제한을 둡니다. 한 번 하면 몇 달은 못 하게 되어 있고요." "그런데 여섯 번을 했습니다." "기관을 옮겨 다녔습니다." 나는 접수대에 팔을 얹었다. 여섯 번째 기관이 어디였는지는 안 물어도 알 것 같았다. "마지막 게 청우입니까." "청우통합의학연구원입니다. 이 년 전이고요." "…….." "그 뒤로 기록이 끊깁니다. 보험도 그때 끊겼습니다." "들어가서 안 나온 겁니까." "나오긴 나왔습니다." 태주가 말했다. "나온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가 안 남았습니다." --- 하성규는 어제 저녁에 자진 출석했다. 내가 신고한 게 아니라 그가 스스로 갔다. 내가 전화하고 나서 두 시간 뒤였다. "제 전화 받고 잡으러 가셨습니까." "준비는 했습니다." "안 가셨고요." "제가 도착하기 전에 민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태주가 그 대목에서 말을 골랐다. "이름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무슨 종이요." "원장님이 주신 영수증이요." 이만 원짜리 영수증이었다. 상호와 날짜와 금액이 찍혀 있고, 그 위에 손으로 이름을 적는 칸이 있다. 나는 거기에 하성규라고 적어서 줬다. 접수대 서랍에 영수증 묶음이 있다. 나는 그것을 꺼내 봤다. 어제 것 아래에 카본지 사본이 남아 있었다. 세 글자가 그대로 찍혀 있었다. "조사는 어떻습니까." "진술은 잘합니다. 창고 위치도 알고, 승합차 번호도 기억하고, 패치 붙인 순서도 말합니다." "그럼 됐네요." "안 됐습니다." 태주가 종이를 카운터에 놓았다. 병원 검사 결과지였다. `체내 이물질: 검출되지 않음` `피부 이상: 없음` `혈액·소변 특이소견: 없음` `영상 검사: 이상 소견 없음` --- 나는 그 네 줄을 봤다. `이상 소견 없음` 어제 내가 진료기록부에 적은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안심하라는 뜻으로 적었다. "다섯 달 지났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압니다." "패치는 접착이고 섬유는 흡수됩니다. 남을 게 없습니다." "그것도 압니다." 태주가 손끝으로 종이를 짚었다. "문제는 이겁니다. 이 사람이 열두 번째 수신체였다는 물증이 지금 하나도 없습니다." "…….." "본인 진술뿐입니다." --- "환자들 진술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다. "있습니다. 창고에서 이 사람을 봤다는 진술이요." "그럼요." "그 사람들은 기억 손상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접수대 모서리를 잡았다. "도윤 씨 때랑 같은 겁니까." "같습니다. 저쪽 변호인이 이미 한 번 써먹은 방식이고요." "그럼 하성규 씨 본인 진술은요." "그 사람도 같은 걸 겪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태주가 종이를 봉투에 도로 넣었다. "조종당했다고 하는 사람의 진술을, 조종당했다는 이유로 못 믿겠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그게 통합니다." --- 그날 밤 나는 진료기록부를 폈다. 어제 하성규 씨 칸에 적어 둔 줄이 있었다. `맥 고름. 결체 없음. 이상 소견 없음.` `환자 진술: 자신의 맥이 자신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함. 다섯 달 지속.` 윗줄은 내가 손으로 확인한 것이고 아랫줄은 그가 말한 것이다. 윗줄이 아랫줄을 부순다. 몸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가 겪었다는 것도 없는 게 된다. 나는 어제 그 말을 해 주려고 짚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 맥입니다. 그가 그 말을 들으러 왔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줬다. 그 말이 오늘 저쪽 손에 있다. --- 열 시에 그가 왔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어제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모자를 벗는 데 어제보다 시간이 덜 걸렸다. "조사받고 오는 길입니다." "들었습니다." "검사 결과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그가 자기 손목을 봤다. "아무것도 안 나왔답니다." "…….." "제가 어제 여기서 들은 거랑 같은 말이더라고요."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윤 원장님." "네." "제 맥이 고르다고 하셨죠." "골랐습니다." "그럼 저는 뭘 겪은 겁니까." --- 나는 그의 손목을 다시 짚었다. 어제와 같았다. 고르고 약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손을 놓았다. "하성규 씨." "네." "제 손은 지금 아무것도 못 찾습니다." "…….." "다섯 달 전에 짚었으면 찾았을 겁니다. 그때는 저도 짚었고 기록도 있습니다. 제 기록이 아니라 병원 기록이요." "그건 저 말고 다른 사람들 거잖습니까." "…….." "열한 명 거요." 그가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저는 그때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없습니다. 제 몸을 잰 사람이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하성규 씨." "네." "이 년 전에 청우에 들어가셨다고요." 그가 손을 무릎에서 뗐다. "형사님이 말씀하셨습니까." "기록만요." "들어갔습니다. 삼 주 프로그램이었고 사백만 원이었습니다." "…….." "그전에 다섯 군데 했는데 거기가 제일 많이 줬습니다." "삼 주 뒤에는요."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에 다시 오라고 하더군요. 부작용 확인이라고요." "가셨습니까." "갔습니다. 돈을 더 준다고 했으니까요." 그는 거기서 한 번 끊었다. "그다음부터는 제가 나온 건지 안 나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 "어느 날부터 제가 그 사람들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를 몰고, 물건을 나르고, 나중에는 사람 귀 뒤에 뭘 붙였습니다." "시켜서요." "시켰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받아 적고 싶었다. 적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열두 명 이름은 아십니까." "압니다." "…….." "열한 명은 압니다. 열두 번째는 저니까요." 열한 명은 병원에 실려 왔고 심전도가 붙었고 기록이 남았다. 그는 창고 밖에 서 있었고 승합차를 운전했고 응급실에는 열두 번째로 걸어 들어왔다. 그때 그를 잰 것은 나 하나였고, 나는 그때 환자가 아니라 표적이었다. --- "하성규 씨." "네." "어제 제가 이상 소견 없다고 한 말요." "네." "그거 취소 안 하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도 없습니다." "…….." "없는 걸 있다고 적으면 그날부터 제 기록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도윤 씨 진술도 같이 무너집니다." "…….." "그러니까 없는 건 없다고 적겠습니다." 그는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됩니까." "모르겠습니다." "…….." "제가 아는 건 하나입니다." 나는 진료기록부를 그의 쪽으로 돌려놓았다. "어제 여기 이름을 적었습니다. 오늘도 적을 겁니다. 오시면 계속 적습니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소견 없음이 다섯 번 쌓이면 그것도 기록입니다." "없다는 기록이요." "다섯 달 동안 매달 없다가 갑자기 있으면 그건 뭔가 있는 겁니다. 그때 쓸 수 있습니다." 그가 종이를 봤다. "몇 달을 오라는 말씀입니까." "오시는 만큼요." --- 그가 나가고 나서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남아 있었다. 어제 그가 문 앞에서 성명 불상이면 찾을 사람도 없다고 했을 때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오늘도 안 했다. 찾을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라, 찾을 사람이 있어도 찾을 것이 없었다는 말을 나는 안 했다. 그 말은 오늘 그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었다. --- 열한 시 이십 분에 태주에게서 문자가 왔다. `원장님 진술 건, 검사님이 다시 부르십니다.` `언제요.` `모레 오전입니다.` `무슨 건입니까.` 한참 뒤에 답이 왔다. `맥으로 읽었다는 부분입니다.` `저쪽에서 그걸 증거로 못 쓴다고 문제 삼습니다.` 나는 그 두 줄을 읽고 진료기록부를 덮었다. 어제 나는 손으로 짚고 아무것도 없다고 적었다. 다섯 달 전에는 손으로 짚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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