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38

마지막 장

삼월에 외삼촌이 폐렴에 걸렸다. 오래 누워 있던 사람에게 흔한 일이라고 했다. 항생제를 바꿨고 열이 사흘 만에 내렸다. 내린 뒤에 다시 올랐다. 지안이 칠 층 담당의에게 물어봐 줬다. 나이와 기저 상태를 고려하면 이번 고비를 넘겨도 다음이 있을 거라고 했다. "기간을 말씀하시던가요." "안 하셨습니다." "…….." "안 하시는 게 답인 경우가 있습니다." --- 나는 진료를 두 시간 당겨 닫고 매일 저녁에 갔다. 여섯 시에 문을 열고 아홉 시에 잠갔다. 아홉 시 반부터 열 시 반까지 병실에 있었다. 간호사가 면회 시간 지났다고 두 번 말했고 세 번째부터는 안 했다. --- 외삼촌은 말을 못 했다. 폐렴 뒤로 기력이 더 떨어져서 사인펜도 오래 못 쥐었다. 한 번에 두세 글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방법을 바꿨다. 내가 물으면 그가 눈을 감았다 뜨는 걸로 답했다. 한 번은 그렇다, 두 번은 아니다. "오늘 아프십니까." 한 번. "많이요?" 두 번. "…….." "거짓말하시는 겁니까." 한 번. --- 사월 첫째 주에 그가 스케치북을 가리켰다. 내가 무릎에 놓아 드렸다. 그가 사인펜을 쥐었다. 손이 떨려서 뚜껑을 못 열었다. 내가 열어 줬다. 첫 글자를 쓰는 데 이십 초쯤 걸렸다. `편` 거기서 손을 놓았다. "편지요?" 한 번. "쓰시게요?" 한 번. "…….." "제가 받아 적을까요." 두 번. --- 그가 직접 썼다. 하루에 두세 줄이었다. 나는 그동안 옆에 앉아 있었다.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아서 봤고, 보는데도 그는 손을 가리지 않았다. 사월 이일에 한 줄. 사월 삼일에 두 줄. 사월 오일에는 아무것도 못 썼다. --- 사월 십일일에 그가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날은 상태가 좀 나았다. 침대를 세우고 앉았고 물을 두 모금 마셨다. 세 줄을 썼다. 쓰고 나서 사인펜을 놓고 나를 봤다. "다 되셨습니까." 한 번. 그가 스케치북을 나에게 밀었다. --- 나는 그 자리에서 안 읽었다.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서 읽겠습니다." 그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외삼촌." "…….." "내일도 오겠습니다." 한 번. --- 그날 밤에 고시원이 아니라 한의원 안쪽 방에서 잤다. 봉인이 풀린 뒤로 거기서 잔다. 두 평쯤 되고 창이 없다. 고시원과 비슷한데 여기는 내 것이다. 스케치북을 폈다. 편지는 열한 장이었다. 한 장에 두세 줄씩이었고 글자가 크고 삐뚤었다. 뒤로 갈수록 획이 흔들렸다. --- `해진아` `나는 니 어머니 얼굴을 잊었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그사람이 찾아준다고 했다` `나는 안믿었다` `근데 매주 왔다` `믿어서 준게 아니라` `오는게 좋아서 줬다` `그게 더 나쁜거다` --- 여기까지가 첫 넉 장이었다.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니가 손목 잡으면` `나는 눈을 감았다` `자는줄 알았을거다` `안잤다` `세고 있었다` `처음엔 시켜서` `나중엔 무서워서` `숫자가 줄면` `니가 지쳐가는거니까` `그럼 내가 뭐라도` `해야 되는데` `할게 없었다` --- 다음 장. `팔월 일일에 니가 안왔다` `나는 그날` `영이라고 안썼다` `쓰면 진짜 영이 될것같아서` `놓지 않음` `이라고 썼다` `거짓말이다` `니가 안온거니까` `놓은건 나다` --- 마지막 세 장이었다. `해진아` `미안하다는 말은` `니가 저번에 막았다` `그래서 안쓴다` `대신 한가지만 쓴다` `니 어머니는` `왼쪽 눈밑에` `점이 있었다` `작년까지는` `그것도 잊었었다` `요새 생각났다` `니가 사진 보여준 뒤로` `찾아준다던 사람이` `못찾아준걸` `니가 삼분만에 찾았다` --- 마지막 장. `그날 니가` `전화기 들고` `팔 저릴때까지` `있었잖니` `그때 시간 안봤지` `나는 봤다` `벽시계가 보였다` `십칠분이었다` `고맙다` --- 나는 그 장을 오래 봤다. 십칠 분이었다. 그 숫자가 이 이야기 안에서 몇 번 나왔는지 나는 안다. 신호 주기가 그것이었고 점검 주기가 그것이었다. 배준상이 표준을 바꿔 넣은 숫자였다. 같은 숫자를 그는 다르게 세고 있었다. --- 그날 나는 잠을 못 잤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진료실로 나갔다. 진료기록부를 폈다. 하성규 씨 항목이 스물세 줄이 되어 있었다. 도윤 씨 항목이 여덟 줄, 소정 씨가 세 줄. 내 이름으로 된 칸은 없다. 나는 여기서 환자가 아니다. 병원에서는 환자였다. 서지안이 쓴 진료 기록이 아직 그 병원에 있다. `환자 본인이 진료를 요청하였고, 진료 중 의료 행위를 하지 않았음.` 그 문장 아래 환자 확인란에 내 이름이 있다. 그게 내 이름이 남의 기록에 들어간 유일한 자리다. --- 외삼촌의 편지는 그 반대였다. 내 이름으로 시작해서 그의 손으로 끝났다. `해진아`로 시작하는 종이를 나는 삼십 년 만에 받았다. 중원에서 삼십 년, 여기서 여섯 달. 그 사이에 나에게 편지를 쓴 사람이 없었다. 편지지가 아니라 스케치북이었고 볼펜이 아니라 굵은 사인펜이었다. 종이가 두껍다. 백 그램보다 두껍고 뒷장에 안 비친다. 그가 힘을 줘서 쓴 자리는 뒤에서 만져진다. `고맙다` 세 글자가 제일 진했다. --- 사월 십사일 새벽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옷을 입고 나갔다. 택시가 안 잡혀서 걸었고, 걷다가 뛰었고, 도착했을 때는 끝나 있었다. 칠 층 병실에 들어갔다. 침대가 세워져 있지 않았다. 코의 관이 빠져 있었고 얼굴이 어제보다 편했다. 나는 그의 오른손을 두 손 사이에 넣었다. 차가웠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 장례는 삼 일이었다. 오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왔다. 태주가 왔고 지안이 왔다. 도윤과 소정이 같이 왔고 준호는 못 온다고 문자를 보냈다. 임 선생이 저녁에 잠깐 들렀다. 하성규는 안 왔다. 이튿날 밤에 문자가 하나 왔다. `가도 되는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안 갑니다.` `대신 오늘 새벽에 일 안 나가고 집에 있었습니다.` `그날 그 방에서 자던 사람이 저였습니다.` `같은 지하였습니다.` --- 발인 날 아침에 나는 스케치북을 관에 안 넣었다. 그건 나한테 온 편지였다. 대신 어머니 사진을 인쇄해 간 것을 넣었다. 병실 벽에 붙여 드리겠다고 했는데 못 붙였다. 넣으면서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봤다. 왼쪽 눈 밑에 점이 있었다. --- 화장장에서 태주가 옆에 섰다. "원장님, 상속 문제 나올 겁니다." "뭐가요." "청우한의원 임대차요. 원래 그분 명의였고 원장님이 승계하신 겁니다." "…….." "임대인이 그 법인이니까 지금 재산 관리인이 붙어 있습니다." "쫓겨납니까." "모릅니다. 그건 민사입니다." 나는 창밖을 봤다. 사월인데 아직 바람이 찼다. "태주 씨." "네." "오늘은 그 얘기 안 하시면 안 됩니까." "…….." "죄송합니다." 그가 반 걸음 물러섰다. "내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뒤로 아무 말도 안 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나는 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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