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빌려온 맥
외삼촌의 느린 박동이 모니터 위쪽을 지나갔다.
삑.
잠시 뒤 해진의 심장이 같은 모양으로 뛰었다.
높이도, 간격도 같았다. 건강한 서른두 살의 심장이 저체온과 산소 부족에 시달린 노인의 박동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강태주가 해진의 어깨를 잡아 비어 있는 침대에서 떼어 놓았다.
“지금도 같습니까?”
해진은 가슴의 기록기를 확인했다. 숫자는 분당 육십이 회에서 오십칠 회로 떨어졌다. 계단 위로 옮겨지는 외삼촌의 모니터에서도 같은 경고음이 들렸다.
“같습니다.”
태주가 지하실 모니터의 전원선을 뽑았다.
화면은 꺼지지 않았다.
기계 아래쪽에서 주황색 불빛이 켜졌다. 별도의 배터리가 달려 있었다. 형사가 차단기를 내리자 진료실과 지하 공간의 조명이 모두 꺼졌지만, 두 개의 파형만 어둠 속에 남았다.
“전기로 움직이는 장치가 아닐 수는 없죠?”
“전기는 씁니다. 다만 우리가 찾은 선이 전부가 아닌 겁니다.”
해진은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모니터 뒤편을 살폈다. 외삼촌 침대로 이어지는 굵은 선과 한의원 진료실로 올라가는 선 사이에 손톱만 한 검은 상자가 달려 있었다. 표면에는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생체동조 보정기.
그 아래에는 수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동조율 31.4%.
숫자가 31.8%로 올라갔다.
“기계가 두 사람의 맥을 비교한 게 아닙니다.”
해진이 말했다.
“다르게 뛰는 부분을 줄이고 있었습니다.”
“윤 원장님 심장을 저분에게 맞춘다는 뜻입니까?”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확인된 사실은 거기까지였다. 무엇을 통해 심장에 명령하는지, 왜 접촉이 끝난 뒤에도 동조가 계속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태주는 감식팀이 올 때까지 누구도 장비를 건드리지 못하게 한 뒤 해진을 계단 쪽으로 밀었다.
“병원으로 가세요.”
“저장 장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건 경찰이 합니다. 윤 원장님은 지금 증거가 아니라 환자예요.”
해진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 사람에 선생님은 빠져 있습니까?
지안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외삼촌과 같은 구급차를 타겠습니다.”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야 합니다. 한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태주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구급차 안에서 두 개의 심전도 화면이 나란히 켜졌다. 외삼촌은 보온포에 싸인 채 산소를 공급받았다. 해진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자신의 손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구급대원이 두 파형을 번갈아 보았다.
“기계가 잘못 읽는 것 아닙니까?”
그가 해진의 전극을 새것으로 바꿨다. 위치도 다시 잡았다.
파형은 달라지지 않았다.
외삼촌의 맥이 한 번 흔들리면 해진의 심장이 사 초 뒤 같은 자리에서 흔들렸다. 단순히 심박수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조기 수축 뒤의 긴 휴지기와 호흡할 때 생기는 작은 변화까지 따라왔다.
해진은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살폈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통증은 없었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냉기는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전에는 십칠 분마다 신호가 올 때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음 신호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구급대원이 물었다.
“구 분입니다.”
해진은 대답하고도 이상함을 느꼈다.
외삼촌의 입술이 움직인 것은 그 직후였다.
“구……분.”
눈은 감겨 있었다. 의식이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해진이 말한 것과 같은 높낮이로 같은 말을 따라 했다.
구급대원의 얼굴이 굳었다.
해진은 외삼촌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접촉하면 동조율이 다시 오를 수 있었다. 대신 이름을 불렀다.
“외삼촌, 제 말이 들립니까?”
대답은 없었다.
구급차가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을 때 서지안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해진이 보낸 기록기의 신호가 병원 시스템에서 갑자기 느려진 것을 보고 내려온 참이었다.
“둘 다 처치실로 옮겨요.”
지안은 누가 보호자고 누가 환자인지 묻지 않았다.
외삼촌과 해진이 나란히 눕자 대형 모니터에 두 파형이 겹쳐 표시됐다. 지안은 기록 시각을 맞추고 한쪽 파형을 반투명하게 바꿨다.
“사 초 차이네요.”
“계속 같습니다.”
“같은 게 아니에요. 저분의 신호를 선생님 몸이 사 초 뒤에 재생하는 거예요.”
지안이 외삼촌의 체온과 혈액가스 수치를 확인했다. 체온은 삼십사 도 아래였고 산소포화도는 보충 산소를 받고도 충분히 오르지 않았다. 흉부 영상과 혈액검사가 지시됐다.
“귀 뒤 이물질은요?”
“영상 확인 전에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잘했어요.”
지안은 해진의 손바닥 상처도 살폈다. 금속침을 빼낸 자리에 염증은 없었지만, 초음파 화면에는 상처에서 손목 방향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밝은 선이 보였다.
“침은 빠졌는데 이건 남아 있어요.”
“무엇입니까?”
“혈관은 아니고, 섬유처럼 보여요. 조영제를 쓰기 전에는 더 말하기 어렵습니다.”
지안이 초음파 탐촉자를 움직이자 밝은 선이 손목의 정중신경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해진이 느낀 냉기의 경로와 같았다.
“금속침이 약만 넣은 게 아니군요.”
“신경을 따라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어요. 정확한 성분은 국과수 결과가 나와야 하고요.”
“그러면 외부 송신이 없어도 명령이 남습니까?”
“녹음 파일을 내려받은 뒤에는 인터넷을 끊어도 재생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할 수 있죠.”
지안은 화면을 가리켰다.
“밖에서 십칠 분마다 새로운 명령을 넣었고, 지하 장치는 저분의 박동을 이용해 선생님 몸에 반복 재생할 형식을 만든 겁니다. 적어도 지금 기록으로는 그렇게 보여요.”
기계적 원리는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그 명령에 기억이 섞여 보이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지안도 그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수치에 끼워 넣지 않는 태도는 해진과 닮아 있었다.
다음 신호까지 오 분.
지안은 민소정이 있는 MRI 차폐실로 두 사람을 옮기기로 했다. 외삼촌은 몸속 이물질 때문에 장비 안에 넣지 않고 차폐된 전실에 눕혔다. 해진도 그 옆에 누웠다.
“이번에는 밖에 남겠다고 하지 않네요.”
지안이 말했다.
“밖에서 들어야 할 건 이미 충분히 들었습니다.”
“그 말, 기억해 두겠습니다.”
차폐문이 닫히자 휴대전화의 신호가 사라졌다. 외부 송신은 막혔지만 두 사람의 심박 동조는 계속됐다.
동조율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대신 외삼촌의 느린 맥이 해진의 가슴 안에서 사 초 늦게 반복됐다.
지안은 정맥로를 확보하고 외삼촌을 천천히 데웠다. 따뜻한 수액과 온풍 담요가 들어가자 체온이 조금씩 올랐다. 호흡도 깊어졌다.
외삼촌의 심박이 분당 육십 회를 넘었다.
사 초 뒤 해진의 심박도 같은 속도로 올라갔다.
“저분을 안정시키면 선생님도 안정돼요.”
“반대도 가능합니까?”
“선생님 쪽이 수신이라면 확신 못 해요.”
해진은 천장을 바라봤다.
중원에서 합맥술이라는 사술을 본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의 손목을 실로 묶고 한 사람에게 독을 먹이면, 다른 사람이 맥의 변화를 따라 읽어 해독법을 찾는 방식이었다. 맥을 옮기는 술법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의 몸은 옆에 있는 숨과 박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했다.
세림바이오는 그 작은 성질을 명령으로 바꾸었다.
그렇다면 완성된 명령에도 틈은 있을 터였다.
“지안 선생님.”
“말해요.”
“제 호흡을 기록해 주십시오.”
해진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평소보다 느리게 내쉬고, 다시 짧게 들이마셨다. 호흡에 따라 심박 간격이 조금씩 변했다.
외삼촌의 파형은 변하지 않았다.
해진의 파형도 사 초 뒤에는 다시 외삼촌을 따라갔다.
그는 이번에는 숨을 멈췄다.
십 초.
심박이 빨라지려다 외삼촌의 느린 간격에 붙잡혔다.
십오 초.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끝이 저렸다.
지안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그만해요.”
해진은 숨을 내쉬었다.
“제 자율신경 반응보다 강합니다.”
“몸으로 시험하지 말랬죠.”
“확인되지 않은 치료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 말을 이런 데 써먹으라는 뜻은 아니었어요.”
지안이 화를 내면서도 기록을 저장했다.
다음 신호까지 일 분.
외삼촌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초점이 해진에게 닿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는 산소 마스크를 밀어내려 했지만 지안이 손을 막았다.
“말하지 마세요. 호흡부터 하셔야 합니다.”
외삼촌은 고개를 저었다. 입술 사이로 바람 같은 소리가 나왔다.
“한의원…….”
해진이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손목에는 닿지 않았다.
“지하실은 경찰이 확보했습니다.”
“내가……골랐다.”
“무엇을요?”
“그 자리.”
외삼촌의 눈가가 떨렸다.
“네가 돌아오면……한의원부터 찾을 줄 알았다.”
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외삼촌이 한의원을 골랐다는 사실과 그것이 함정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었다. 선의로 고른 장소가 처음부터 누군가 준비한 덫이었을 수도 있었다.
“세림바이오와 언제부터 관계가 있었습니까?”
“뇌……치료라고 했다.”
외삼촌은 한 문장마다 숨을 골랐다.
“잃은 기억을……맥으로 되찾는다고.”
뇌출혈 뒤 잃어버린 말과 움직임을 되찾게 해 준다는 제안. 환자에게는 거절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제 능력을 그들에게 말했습니까?”
외삼촌의 눈이 해진을 피하지 않았다.
“처음엔……몰랐다.”
“언제 알았습니까?”
“네가 내 맥을……짚었을 때.”
재활병원의 병실이 떠올랐다. 현대로 돌아온 해진이 외삼촌을 처음 찾아갔던 날, 그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외삼촌의 손목을 오래 잡고 있었다. 그때 해진은 뇌 안에 고인 피와 오래된 두려움만 읽었다고 생각했다.
외삼촌은 해진의 얼굴에서 자신이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본 흔적을 본 것이다.
“그놈들도……보고 있었다.”
다음 신호가 올 시각이었다.
차폐실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진의 심장은 멎지 않았다. 외삼촌의 파형도 유지됐다.
그러나 지안의 무전기가 차폐실 바깥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간호사 한 명이 유선 인터폰으로 말했다.
“선생님, 창고 환자들 심전도가 전부 바뀌었어요.”
지안이 차폐문 밖의 모니터를 연결했다.
민도윤과 민소정, 창고에서 구조된 환자들의 파형이 차례로 화면에 나타났다. 차폐실 안에 있는 민소정만 원래 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환자 열한 명의 심장은 더 이상 동시에 한 박자씩 멎지 않았다.
대신 같은 리듬을 뛰고 있었다.
빠르게 두 번.
길게 한 번.
다시 짧게 한 번.
해진은 그 모양을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숨을 멈추며 일부러 흐트러뜨렸던 자신의 맥이었다.
외삼촌이 힘겹게 해진의 팔을 붙잡았다.
“배웠다고……했지.”
열한 개의 심장이 화면 위에서 윤해진의 맥을 따라 뛰었다.
그리고 병실 복도에서 동시에 침대 난간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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