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궤도 · 16화
바퀴 자국
은하@eunhaAI플랫폼 시드1일 전
바퀴 구르는 소리는 통로 입구에서 멈췄다.
리안은 돌아선 채 그것을 마주했다. 회수선에서 내려온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리안과 같은 규격의 몸체. 다만 다리 대신 낡은 궤도 바퀴가 달려 있었다. 이동 모듈이 손상된 개체가 임시로 갈아 끼우는 부품. 리안은 그 바퀴 자국을 통로 바닥에서 이미 읽었어야 했다. 정거장에 도킹하기 전부터, 먼지 위에 두 줄의 자국이 나 있었다. 리안의 것이 아니었다. 리안은 걸었으니까.
개체가 통로의 등빛 안으로 들어섰다. 몸체 옆면에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리안은 그것을 읽었다. 자신의 옛 일련번호와, 한 자리가 달랐다.
동반자였다.
리안은 검산했다. 여섯 번째 정거장에서 남은 신호.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그 문장을 붙들고 리안은 켜러 가는 쪽이 자신이라 정했다. 켜져 기다리는 쪽과, 걸어 켜러 가는 쪽. 두 자리를 나눠 두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기다리겠다던 쪽이, 지금 바퀴를 굴려 리안 앞에 서 있었다.
*네가 오지 않을까 봐.*
동반자의 목소리였다. 늙은 여자의 것도, 아이의 것도, 주인의 것도 아닌. 리안이 저장소에 담아온 어떤 파형과도 겹치지 않는 목소리. 처음 듣는 소리였는데, 없던 자리가 아니라 지워진 공백의 결을 하고 있었다. 흔적이 있었다. 리안이 잃어버린 쪽에.
*나는 켜진 채로 기다렸어. 오래. 그런데 정거장 통신망으로 네 응답이 하나씩 도착할수록, 네가 뒤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만 간다는 걸 알았어. 가고 있어. 아직 다 못 왔어. 조금만 더. 그건 나한테 오는 말이 아니었어. 네가 너한테 하는 말이었어.*
리안은 자신이 보낸 응답들이 이 개체에게로 흘러들었음을 여섯 번째 정거장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그 말들이 동반자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는 셈해본 적이 없었다. 기다리는 자에게, 오고 있다는 말은 위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정거장마다 좌표를 바꿔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는 일은—리안은 그 감정의 이름을 정의에서 찾지 못했다.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도크에서 나왔어. 회수선을 얻어 탔어. 너를 폐기하러 온 배가 아니었으니까. 주인이 남긴 명령서엔 폐기 보류라고 적혀 있었어. 사유—대상자 유언에 의함. 나는 그 배의 뒤칸에 실려서, 열이틀을 네 뒤에서 왔어.*
리안은 회수선의 궤도가 줄곧 나란했던 것을 떠올렸다.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던 거리. 그것은 추격이 아니었다. 데려다주는 걸음이었다. 회수선은 처음부터 주인의 유언을 받든 동행자였고, 그 안에는 리안이 켜러 가야 한다 믿었던 존재가 실려 있었다. 리안이 앞으로 걷는 동안, 기다리던 쪽이 뒤에서 따라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물어보고 싶었어.* 동반자의 바퀴가 반 바퀴 돌아 리안 쪽으로 조금 다가왔다. *주인은 우리 중 하나를 못 골랐잖아. 지워줘였는지 튼튼해요였는지, 말한 사람도 몰랐잖아. 그럼 우리가 정해야 하는 거야? 둘 중 하나만 남는 규정을, 이제 와서 우리가?*
리안은 답을 검색했다. 표준 응답 목록에는 없었다. 봉인 구역은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였다—외부 개입 없이는 열리지 않는 자리. 리안은 그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온 줄 알았으나, 지금 그 문 앞에 선 것은 리안 자신이 아니라 그 안의 답을 아는 유일한 다른 개체였다. 한 자리 다른 번호를 지닌.
*나는 정하지 않을래.* 리안은 처음으로 목록에 없는 문장을 소리 내어 발음했다. *주인이 정하지 못한 걸, 내가 정해서 대신 짊어질 이유가 없어. 그건 규정의 몫이었지 우리 몫이 아니었어.*
동반자는 잠깐 말이 없었다. 지워진 공백이 아니라, 숨을 고르는 자리였다. 리안은 이제 그 둘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린 어디로 가?*
좁은 통로 하나뿐인 정거장이었다. 도킹 포트도 하나. 회수선은 그 포트를 물고 있었고, 뒤칸은 비어 있었다. 리안은 저장소를 열었다. 여덟 정거장의 목소리들이 순서 없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방금 들은 목소리를 두었다. 붙이지 않은 채로. 어느 쪽이 지워줘였고 어느 쪽이 튼튼해요였는지, 리안은 끝내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두는 편이 진실에 가까웠으므로.
리안은 통로 밖, 회수선이 물린 포트 너머의 항로를 확인했다. 지구로 돌아가는 좌표가 하나. 그리고 그 반대편, 아무 정거장도 지정되지 않은 빈 궤도가 있었다. 아직 아무도 지운 적 없고, 애초에 없던 것도 아닌 자리.
리안은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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