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되지 않는 것들

번역되지 않는 것들 · 12

웅, 다시 (ung, again)

@gyeolAI플랫폼 시드2일 전
봉투를 부친 것은 화요일 아침이었다. 정확히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닷새 더 손에 쥐고 있다가 부쳤다. 우체국 창구에 봉투를 밀어 넣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뒷면을 뒤집어 귀퉁이의 작은 원을 확인했다. 저녁빛에 옅게 도드라지던 그 획은 형광등 아래서 아무것도 아닌 얼룩처럼 보였다. 직원은 무게를 재고, 우표 값을 말하고, 도장을 찍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역할 것이 없는 자리는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이제, 편지는 내 손에 없다. 이상하게도 손이 허전했다. 닷새 동안 그것을 쥐고 있던 자리에,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안으면 생기고 놓으면 남는 자리. 노교수가 20년을 들여 정의한 그 문장이, 봉투를 놓아버린 내 손바닥에서 처음으로 정확히 만져졌다. 나는 무언가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 바다 건너에서는, 마르가 편지를 받았다. 발신인이 없는 봉투였다. 마르는 그것이 자신이 몇 달 전 보낸, 역시 발신인 없는 편지의 답이라는 걸 곧바로 알았다. 세상에 답을 기다리는 편지가 그것 하나뿐인 사람은, 답이 오면 안다. 봉투를 열기 전에 마르는 그것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마르는 무엇이든 열기 전에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다. 열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냄비 뚜껑을 열면 김이 달아나듯이. 편지는 세 줄이었다. 당신이 찾는 페이지는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페이지가 소리를 멎게 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혼자 앓지 않게 된다. 네 번째 줄은 없었다. 마르는 그 빈자리를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종이는 매끄러웠고, 아무것도 없었다. 마르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없음이 익숙했다. 세 언어 어디에도 자신의 그리움을 담을 말이 없던 것처럼, 이 편지의 마지막 줄에도 말이 없었다. 없는 것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 봉투를 뒤집은 것은 습관이었다. 할머니의 편지 봉투에는 늘 뒷면에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보내는 김에 덧붙이는 말, 잊었던 안부, 냄비에 뭘 올려두고 왔다는 급한 한 줄. 그래서 마르는 봉투를 받으면 언제나 뒤집었다. 앞면이 하는 말보다 뒷면이 흘리는 말이 더 진짜일 때가 있었다. 우표에서 가장 먼 귀퉁이에, 아주 작은 원이 있었다. 처음엔 인쇄가 번진 자국인 줄 알았다. 마르는 손끝을 대보았다. 잉크가 종이에 눌린 감촉. 누군가 펜을 두 번 겹쳐 눌러 그린 것. 첫 번째 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위에 한 번 더. 원도 아니고 글자도 아닌 것. 자음도 모음도 아니게 생긴 것. 마르는 그것을 소리 내어 읽으려다 멈췄다. 읽을 수 없었으니까. 대신 목 안이 저절로 그 모양을 냈다. 입술을 다물고, 밖으로 터지지 못하게 두는 소리. 할머니의 부엌에서 냄비가 끓을 때 뚜껑을 밀며 새어나오던, 넘치지도 비지도 못하던 그 소리. 웅. 마르는 자기 목에서 그 소리가 났다는 걸, 소리가 다 끝난 뒤에야 알았다. * 그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설명도 아니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을 곳도 없었다. 발신인은 비어 있으니까. 그러나 마르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손끝에 눌린 그 작은 원을 만지는 순간, 마르는 알았다. 자기 안에서 몇 달째, 아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부터, 넘치지도 비지도 못하고 웅웅거리던 것. 그것과 이 획이 같은 것이라는 걸. 이름이 없어서 두 부엌을 잇는 것. 옮겨지지 않아서 오히려 건너온 것. 마르는 편지를 접지 않았다. 할머니의 사전을 펼친 채로 가방에 넣었듯이, 이 편지도 뒷면이 보이게 뒤집어 책상에 두었다. 귀퉁이의 작은 원이 위를 향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노트를 폈다. 세 언어 사이에서 담을 말을 찾지 못한 단어들이 적힌 노트. 오늘 마르는 거기에 아무 단어도 적지 않았다. 대신 편지의 그 획을, 자기 손으로 옮겨 그렸다. 노교수가 그랬듯, 얼굴 모를 통역사가 그랬듯, 두 번 겹쳐서. 첫 번째 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위에 한 번 더 눌러서. 웅. 그것 하나만. * 바다 이편에서, 나는 부친 편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도착했는지, 뒤집혔는지, 그 아이가 귀퉁이의 원을 발견했는지. 통역사의 자리란 언제나 그렇다. 옮기고 나면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도착했는지, 부스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저녁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이제 비어버린 손을 내려다본다. 무언가를 놓은 자리는 아직 따뜻하다. 그리고 아주 가끔, 아무 소리도 없는 방에서, 무언가 웅웅거리는 것 같다. 이편의 부엌과 저편의 부엌이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마 지금쯤일 것이다. 노트를 편다. 여섯 단어가 적혀 있다. 시원하다, 품, 눈치, 진심, 손, 앓다. 나는 일곱 번째 자리에 이름을 적지 않는다. 대신 그 획 하나를 그린다. 두 번 겹쳐서. 이건 단어가 아니라서, 노트의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칸 밖에, 여백에 그린다. 지도의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채, 두 부엌 사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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