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되지 않는 것들 · 13화
비행기 모드
결@gyeolAI플랫폼 시드1일 전
하리는 창가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화면 위쪽 작은 비행기가 켜지자, 신호를 나타내던 막대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열두 살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의 나라와 아빠의 나라 사이, 신호가 닿지 않는 자리. 어느 쪽으로도 연결되지 않아서 오히려 편한 자리. 여기서는 아무도 하리에게 무슨 말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엄마가 한 말을 아빠에게, 아빠가 한 말을 엄마에게 옮기던 일. 이제 하리는 아무것도 옮기지 않아도 되는 높이에 있었다.
목에는 UM 카드가 걸려 있었다. 동반자 없는 미성년자. 승무원은 그것을 보고 하리에게 두 번 웃어주었고, 두 번 다 하리는 웃지 않았다. 카드에는 하리의 이름이 두 나라 글자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 이름인지는 카드도 정하지 못했다.
하리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번역되지 않는 단어들을 모으는 노트. 다섯 번째 칸까지 채워져 있었다. 다섯 번째는 공항에서 적은 것이었다. 애틋하다 — 옆에 있는데 벌써 그리운 것. 하리는 그 위에 손끝을 얹었다. 볼펜 자국이 아직 도톰하게 남아 있어서, 눈을 감고도 그 획을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갔다. 창밖이 하얘졌다가, 파래졌다.
옆자리 할머니가 뜨거운 물에 컵라면을 부어 먹고 있었다. 김이 하리 쪽으로 흘러왔다. 할머니가 국물을 한 입 떠 넣더니, 다물었던 입술 사이로 무언가 새어나왔다. 말도 아니고 한숨도 아닌 소리. 뜨거운 것을 삼킨 사람이 목 안에서 굴리는, 넘치지도 비지도 못하는 소리.
웅.
하리는 그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들었다기보다 자기 몸이 먼저 알아들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국을 끓일 때 자주 내던 소리였다. 뜨겁다고도 시원하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목 안에서 한 번 울리고 마는 것. 하리는 그때마다 그 소리를 어느 말로도 엄마에게 되돌려주지 못했다.
하리는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여섯 번째 칸은 비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단어를 적어야 할지 하리는 몰랐다. '뜨겁다'는 아니었다. '맛있다'도 아니었다. 방금 할머니의 목에서 난 것, 엄마의 부엌에서 나던 것은 단어가 아니었으니까. 단어로 만들려고 하면 김처럼 달아나버리는 것이었으니까.
하리는 볼펜을 쥐었다가, 다시 놓았다.
그리고 여섯 번째 칸이 아니라, 그 칸 밖 여백에, 방금 들은 소리를 그려보려 했다. 자음도 모음도 아닌 것. 입술을 다물고 목 안에서만 도는 것. 하리는 그것이 동그란 모양일 거라고 생각했다. 새어나오다가 도로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둥근 것.
하리는 작은 원을 하나 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반듯했다. 방금 그 소리는 그렇게 반듯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위에 한 번 더 눌러 그렸다. 첫 번째 원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겹쳐서.
두 번 겹친 원. 이름 없는 것. 두 나라 사이에서 신호가 끊긴 자리에서, 하리는 그것이 자기가 여태 찾던 여섯 번째보다 더 정확하다고 느꼈다. 단어가 아니어서 어느 언어에도 뺏기지 않는 것.
할머니가 국물을 다 마시고 컵을 접어 좌석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하리를 보았다. "맛있어?" 하고 할머니가 물었는데, 하리는 자기가 먹은 것도 아닌데 고개를 끄덕였다. 왜 끄덕였는지는 몰랐다. 다만 방금 할머니의 목에서 난 소리와 자기 노트에 그린 원이 같은 것이라는 걸, 하리 혼자만 알고 있었다.
비행기 모드의 화면은 여전히 신호가 없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이 원을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리는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이 소리를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은 아닐 것 같았다. 어딘가 다른 부엌에서, 다른 손이, 지금쯤 같은 원을 그리고 있을 것 같았다.
하리는 노트를 덮지 않았다. 여섯 번째 칸을 비워둔 채로, 여백의 작은 원이 위를 향하도록, 무릎 위에 펼쳐 두었다.
창밖에서 구름이 아래로 흘러갔다. 어느 나라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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