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십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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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시립도서관에 전화했다.
"자료 문의가 아니고요, 예전 휴관일을 좀 여쭤보려고요."
"어느 때요?"
"이천십육년 이월이요."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 소리가 났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였다.
"십 년 전이면 좀 걸릴 수 있는데요. 잠시만요."
기다리는 동안 나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얹고 있었다. 벽시계 초침이 세 바퀴 돌았다.
"찾았습니다. 그해 이월에 서고 정리로 임시 휴관이 있었네요."
"며칠부터요."
"십오일부터 십구일까지요. 닷새요."
"닷새요."
"네. 그때 서가 이전 공사가 있었어요. 공지 남아 있습니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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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이월 나는 낮에 도서관에 있었다.
어제 나는 그렇게 적었다. 적은 게 아니라 생각했다. 그 무렵 낮에는 도서관에 있었으니 벨이 울려도 내가 못 나갔을 것이다, 라고.
십오일부터 십구일까지 도서관은 닫혀 있었다.
십칠일에 나는 도서관에 없었다.
어디 있었는지는 모른다.
집에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데 있었을 수도 있다. 스물두 살 이월의 평일 낮에 스물두 살이 어디 있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거절한 적이 없다.
이 문장을 어제도 속으로 말했다. 오늘 다시 말해 보니 어제와 같은 문장이 아니었다. 어제는 도서관이 뒤에 있었고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
기억은 그대로인데 받쳐주던 게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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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은 열한 시에 왔다.
은행 봉투를 놓고 앞치마를 맸다. 진열대를 한 번 정리하고 계산기를 켰다.
"세림아."
"응."
"어제 왜 안 물었어."
세림의 손이 계산기 위에서 멈췄다.
"뭘."
"내가 복사했다고 했잖아. 뭘 복사했냐고 안 물었어."
"물어봐도 됐어?"
"평소에 너는 물어."
세림이 계산기를 껐다.
"물으면 네가 대답해야 되잖아."
"그게 왜."
"네가 대답하면 나도 대답해야 되고."
세림은 그 말을 하고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넣었다가 뺐다. 넣을 게 없는 주머니였다.
"무슨 대답."
"몰라."
"세림아."
"진짜 몰라. 뭘 물어볼지 모르겠는데 물어볼 것 같아서 무서워."
세림은 나를 안 보고 있었다. 진열대 쪽을 보고 있었는데 거기 아무것도 안 바뀌었다.
나는 다음 말을 준비했다가 안 했다.
준비한 말은 어제 알아낸 것들이었다. 등기, 수취 거절, 두 통, 뜯긴 나흘. 그걸 지금 꺼내면 세림은 대답을 해야 한다.
세림이 무서운 게 그거였다.
"밥 먹었어?" 내가 물었다.
"아니."
"국수 먹으러 가자."
세림이 앞치마를 벗었다.
나가면서 세림이 한 번 돌아봤다.
"수진아, 나중에 물어볼 거지?"
"응."
"그때는 대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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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숫집에서 세림은 고춧가루를 두 번 넣었다.
원래대로였다.
"뜨겁다."
"응."
"너 아직도 못 먹지."
"못 먹어."
"근데 왜 먹어."
"식으면 불어."
세림이 웃었다. 지난번에도 여기서 웃었는데 그때는 웃고 나서 국물을 안 먹었다. 오늘은 먹었다.
계산은 세림이 했다. 홀수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세림이 옆에서 걸었다. 반 걸음 뒤가 아니었다.
"수진아."
"응."
"나 요새 잠을 잘 못 자."
"언제부터."
"어머니 뵙고 온 날부터."
나는 걸음을 안 늦췄다. 늦추면 세림이 멈춘다.
"약 먹어?"
"아니. 그냥 새벽에 깨."
"깨서 뭐 해."
"천장 봐."
세림은 거기까지 말하고 더 안 했다. 가게 앞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고, 그 침묵은 국숫집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라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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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는 여덟 시에 왔다.
들어와서 카운터 앞에 섰다. 손을 내밀지 않고 서 있었다.
나는 봉투를 꺼냈다. 어제 받은 그대로였고 복사본은 서랍에 따로 넣어 두었다.
그가 봉투를 받았다.
받아서 가방을 열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그것을 다시 놓고, 뒤집었다.
어제는 안 뒤집었다. 앞면만 보여주고 손을 얹고 있었다.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것을 삼 초쯤 보고 다시 앞으로 돌렸다.
오른쪽 위의 네모난 도장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반송`
그 아래 `수취 거절`.
엄지로 그 자리를 한 번 문질렀다. 잉크가 번진 지 십 년 된 도장이라 문질러도 아무것도 안 묻어났다.
한 번 더 문질렀다.
세 번째에 손을 뗐다.
"이재 씨."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어제 집에 가셔서 뭐 하셨습니까."
"…….."
"주무셨습니까."
"아니요."
그는 봉투를 집었다. 이번에는 가방에 넣었다. 지퍼를 올리는데 걸리지 않았다.
"수진 씨."
"네."
"저는 십 년 동안 이게 주소를 잘못 썼거나 우체국이 잘못한 줄 알았습니다."
"…….."
"어제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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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씨."
"네."
"그날 제가 집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손이 가방끈에서 멈췄다.
"도서관에 있었을 거라고 어제 생각했는데, 그날 도서관이 문을 안 열었습니다."
"…….."
"오늘 아침에 확인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제와 같은 침묵이 아니었다. 어제는 말을 안 찾는 침묵이었고 오늘은 말을 고르는 침묵이었다.
"제가 거절했으면 기억이 났을 겁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셨겠죠."
"그런데 그날 제가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
"둘 다 기억이 안 나는데 하나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봤다.
"수진 씨."
"네."
"안 거절하셨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거절하셨으면 그다음 통도 안 받으셨을 테니까요."
나는 그 말에 바로 대답을 못 했다.
십구일에 온 편지를 나는 받았다. 받아서 세 번 읽고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십 년 동안 거기 있었다.
이틀 사이에 같은 이름으로 두 통이 왔고, 나는 한 통은 안 받고 한 통은 받았다.
받은 쪽이 두 번째였다.
"이재 씨."
"네."
"두 번째 통은 뭐라고 쓰셨습니까."
그가 나를 봤다.
"두 번째요."
"십구일에 온 것이요."
그는 대답을 바로 안 했다. 카운터를 짚었다가 손을 뗐다.
"저는 한 통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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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조용했다.
나는 서랍을 열었다.
십 년 전 편지를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봉투째였다. 소인이 위로 오게 놓았다.
`2016. 2. 19.`
"이겁니다."
그는 봉투를 안 집었다.
카운터에 두 손을 올려놓고 그것을 봤다. 어제 자기 봉투를 놓았던 자리와 같은 자리였다.
"발신인 칸에 이재 씨 이름이 있습니다."
"…….."
"주소도 있고요. 삼 층까지 적혀 있습니다."
그는 몸을 조금 숙였다. 글씨를 가까이 보려는 자세였는데 손은 여전히 카운터 위에 있었다.
"수진 씨."
"네."
"이거 열어도 됩니까."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십 년 동안 이 봉투를 연 사람은 나 하나다. 세 번 읽고 접었고 그 뒤로 안 폈다. 어제 처음 뒤집었고 오늘 처음 남에게 보였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모르시는데 여십니까."
"제 이름이 적혀 있으니까요."
나는 봉투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그가 손을 뻗었다.
뻗어서 봉투 모서리에 손끝을 댔다가 뗐다.
"내일 열겠습니다."
"왜요."
"오늘 열면 제가 뭐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봉투는 카운터에 그대로 두었다.
"내일 여덟 시에 오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카운터 위에 봉투가 하나 남았다. 십 년 만에 서랍 밖에서 밤을 보내게 됐다.
나는 그것을 서랍에 도로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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