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손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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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두 시에 세림이 도매상에 갔다.
파란 줄이 들어오는 날이다. 일흔둘이라 한 번에 못 들고 온다고 해서 수레를 빌려 갔다.
"네 시쯤 올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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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 이십 분에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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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운터에서 일어섰다.
"엄마."
"응."
엄마는 문 안쪽에 서서 안을 한 번 봤다. 진열대 쪽을 보고 카운터 쪽을 봤다.
두 번째다. 처음은 봄이었고 쥐포를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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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없네."
"도매상 갔어."
"…….."
"알아."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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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아."
"봤어."
엄마가 골목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앞에서 기다렸어. 나가는 거 보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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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에 아무 말도 안 했다.
엄마가 손에 종이 봉투를 들고 있었다. 문구점에서 주는 것이고 위가 접혀 있었다.
"앉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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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진열대 쪽으로 두 걸음 갔다.
봉투를 보고 편지지를 보고 다시 봉투를 봤다. 손은 안 댔다.
"이게 다 팔려?"
"팔려."
"…….."
"하루에 몇 장 팔리니."
"어떤 날은 스무 장 팔고 어떤 날은 안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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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카운터로 왔다.
"봄에 왔을 때는 여기 안 봤어."
"쥐포 놓고 가셨잖아."
"그건 세림이 주려고 산 거였어."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그날 말 못 하고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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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손님 의자에 앉았다.
카운터 앞의 그 의자다. 봄에 왔을 때는 옆의 등받이 없는 데 앉았다.
봉투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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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봤다.
"백 그램이야?"
"열아홉 장."
"…….."
"세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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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봉투 위를 폈다.
안에 편지지가 있었다. 낱장으로 들어 있고 가장자리가 안 눌렸다.
"수진아."
"응."
"이거 네가 써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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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을 들었다.
손이 먼저 갔다. 손님이 무슨 말을 시작하면 펜을 드는 게 여덟 해 된 동작이다.
들고 나서 그것을 봤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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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응."
"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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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를 봤다.
"왜."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엄마가 봉투에서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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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낼게."
"엄마."
"…….."
"그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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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조용했다.
바깥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두 대였고 한 대가 멈췄다가 다시 갔다.
"저번에 엄마가 그랬잖아."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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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한참 있었다.
"내가 뭐랬는데."
"그건 네가 하면 안 되지."
"…….."
"그것도 대신 쓴 게 되잖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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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무릎에 손을 놓았다.
놓고 나서 한 번 폈다가 다시 놓았다.
"그건 네 얘기였어."
"…….."
"이건 내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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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아."
내가 말했다.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안 똑같아. 나는 글씨를 못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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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글씨 잘 써."
"…….."
"흉내도 냈잖아."
말하고 나서 나는 그것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엄마의 얼굴이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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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냈지."
엄마가 말했다.
"두 장 연습해서."
"…….."
"그러니까 쓸 수 있잖아."
"쓸 수 있는 거랑 쓸 말이 있는 거랑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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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봉투를 손끝으로 반 뼘 밀었다.
밀고 도로 당겼다. 두 번 그렇게 했다.
"열아홉 장이면 열아홉 번 쓸 수 있어."
"…….."
"한 번도 못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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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한테 온 거잖아."
내가 말했다.
"…….."
"쓸 말이 없어서."
엄마가 봉투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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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말은 있어."
"…….."
"그럼 뭐가 없는데."
"순서."
엄마가 말했다.
"뭘 먼저 놓고 뭘 나중에 놓는지를 모르겠어. 미안하다부터 하면 나머지가 다 변명이 되고, 안 하고 시작하면 뻔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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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항목이야."
내가 말했다.
"손님들이 나한테 주는 게 그거야. 순서를 못 정해서 오는 거야."
"…….."
"그럼 정해 줘."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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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
"네가 안 하면 누가 하니."
"엄마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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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투를 엄마 쪽으로 밀었다.
밀고 손을 뗐다.
"항목만 줘, 하면 안 되니."
엄마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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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왜."
"…….."
"그거 하면 문장은 내가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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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봉투 안에서 한 장을 꺼냈다.
카운터에 놓았다. 놓고 손바닥으로 한 번 폈다.
"펜 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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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볼펜을 하나 꺼냈다.
검정을 꺼내다가 놓고 다른 것을 봤다. 청색이 남아 있었다.
검정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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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펜을 잡았다.
잡고 종이를 봤다. 종이는 위쪽이 비어 있고 아래쪽도 비어 있다.
한참 있었다.
"수진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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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사람을 뭐라고 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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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운터를 짚고 있었다.
"세림이라고 쓸까."
엄마가 말했다.
"세림아라고 쓸까. 오세림 씨라고 쓸까."
"…….."
"셋 다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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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소리 내어 읽었다.
"세림이. 세림아. 오세림 씨."
세 번 다 다른 데서 끊겼다.
"세림이, 하면 애한테 하는 말 같고."
"…….."
"세림아, 하면 십 년 전이고."
"오세림 씨는."
"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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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평소에 부르는 대로 써."
"평소에 안 불렀어."
엄마가 펜을 종이 위에 대고 있었다.
"십 년을 안 불렀는데 평소가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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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손님이 이걸 물으면 나는 셋 중 하나를 골라 준다. 받는 사람과의 거리를 물어보고 정한다. 오 분이면 된다.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엄마."
"응."
"그건 엄마가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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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펜을 뗐다.
종이에 아무것도 안 묻었다.
"…….."
"그럼 오늘은 못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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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
"응, 이라고 하네."
엄마가 웃지 않고 말했다.
"괜찮다고 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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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종이를 접었다.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네 겹이 됐다.
그것을 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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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 열여덟 장이 남았다.
엄마가 그것을 카운터에 그대로 두었다.
"이건 여기 둬."
"왜."
"…….."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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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백 그램 여기서 팔잖아."
엄마가 가방끈을 잡았다.
"집에 두면 또 세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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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어섰다.
문까지 세 걸음이다. 두 걸음 가서 멈췄다.
"수진아."
"응."
"세림이 요새 밥은 먹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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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
"물어볼 걸 그렇게 물어보지 말고."
내가 말했다.
엄마가 문고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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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물어보니."
"세림아, 밥 먹었어. 이렇게."
"…….."
"그건 편지에 못 쓰잖아."
"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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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다음에 올게."
"응."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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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 십 분에 세림이 왔다.
수레에 상자가 둘이었다. 파란 줄 일흔둘이다.
들여놓고 앞치마를 맸다.
"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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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왔다 갔어."
세림이 손을 멈췄다.
"어머니가?"
"응."
"…….."
"뭐 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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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러."
세림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누구한테."
"…….."
"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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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진열대 쪽으로 갔다.
가서 아무것도 안 만졌다. 파란 줄 상자를 발치에 두고 서 있었다.
"뭐라고 쓰신대."
"몰라."
"…….."
"못 쓰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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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돌아섰다.
"왜."
"받는 사람을 뭐라고 쓸지 모르겠대."
세림이 그 말을 듣고 한 번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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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라."
세림이 말했다.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어머니가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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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에 들어갔을 때는."
"세림아, 하셨어."
"…….."
"그러면 그거 아니야?"
"열아홉에 안 하셨어."
세림이 파란 줄 상자를 들어 카운터에 올렸다.
"열아홉부터는 야, 하셨어. 야, 밥 먹어라. 야, 문 닫아라."
"…….."
"야는 편지에 못 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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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에 문을 닫았다.
세림이 파란 줄을 진열대에 채웠다. 서른다섯 장 위에 일흔두 장이 올라가서 칸이 넘쳤다.
세림이 옆 칸을 하나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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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 그램 열여덟 장을 진열대에 올렸다.
파란 줄 옆이다.
여기 백 그램을 놓은 적은 없다. 놓을 자리가 없어서 흰 봉투 줄을 한 칸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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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을 붙여야 팔린다.
한 장에 오백 원이다. 지난봄에 문구점에서 사면서 알았다.
작은 종이에 오백이라고 적어 아래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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