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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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열 시에 세림이 왔다.
앞치마를 매기 전에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어제 사 간 백 그램이다. 반으로 접혀 있고 접힌 자리가 하나다.
카운터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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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썼어?"
"안 썼어."
세림이 앞치마를 맸다.
"집에 가서 폈다가 접었어."
"…….."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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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종이를 안 만졌다.
만지면 두께를 재게 된다. 한 장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고, 안에 뭐가 적혔는지 아닌지는 두께로 안 나온다.
그래도 손이 가려고 해서 카운터 밑으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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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진열대로 갔다. 파란 줄이 일흔둘이라 두 칸을 쓴다. 어제 나눠 놓은 것을 오늘 다시 세었다.
소리를 내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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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에 손님이 왔다.
예순쯤 된 남자였고 문을 열고 한참 서 있다가 들어왔다. 들어와서 봉투 진열을 봤다.
"편지도 써 주십니까."
"씁니다."
"…….."
"얼마나 걸립니까."
"항목 주시면 오늘 안에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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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님 의자에 앉았다.
"항목이 뭡니까."
"하고 싶은 말을 낱개로요. 문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가 손을 무릎에 놓았다.
"세 갠데요."
"셋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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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면지를 꺼내 적었다.
그가 부르는 대로 적었다.
`군대 갈 때 태워다 준 거`
`작년 김장`
`이번에 병원 온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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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고 나서 그가 말했다.
"근데 어디서부터 씁니까."
나는 펜을 놓았다.
"손님."
"네."
"어느 게 제일 말하기 쉽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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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종이를 봤다.
"…….."
"둘째요."
"그럼 둘째부터 씁니다."
"그게 됩니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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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 종이를 꺼냈다.
`작년에 김장하시는 데 갔다가 손을 다 얼렸습니다.`
한 줄을 쓰고 그에게 보였다.
그가 그것을 읽었다.
"그다음은요."
"손님이 말씀하시면 제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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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 배추가 삼백 포기였는데요."
"……."
"장갑을 안 끼셨습니까."
"꼈는데 젖었어요. 젖으면 안 낀 거나 마찬가지예요."
"……."
"그래서요."
"어머니가 자기 장갑을 벗어서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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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거기서 한 번 멈췄다.
"그게 더 젖은 거였어요."
나는 그 말을 적었다.
김장 이야기를 하다가 병원 이야기가 나왔고, 병원 이야기를 하다가 군대 갈 때 이야기가 나왔다. 순서가 저절로 정해졌다.
열 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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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 넣습니까."
그가 물었다.
"열 줄은 깁니다."
"…….."
"여섯 줄로 줄이겠습니다."
"뭘 뺍니까."
"제가 뺀 걸 손님이 보시고 정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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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줄로 만들어 드렸다.
그가 읽고 한 군데를 짚었다.
"이거는 넣어 주세요."
나는 그 줄을 도로 넣었다. 일곱 줄이 됐다.
그가 값을 치르고 봉투에 넣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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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고 나서 세림이 카운터로 왔다.
"수진아."
"응."
"저거 어제 나한테 말한 거잖아."
"응."
"…….."
"저 사람은 둘째가 어느 건지 알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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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말하기 쉬운 거."
"응."
"…….."
"나는 그게 뭔지 몰라."
세림이 자기가 가져온 종이를 봤다.
"항목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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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들었다.
세림에게는 항목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백지다.
그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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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아."
"응."
"항목 있어."
세림이 나를 봤다.
"어디."
"여기."
나는 서류함 셋째 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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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의 항목 종이를 꺼냈다.
일곱 달 전에 세림이 손님 의자에 앉아서 쓴 것이다. 세 줄이고, 세 번 이상 고쳐 쓴 글씨라 획이 흐려진 데가 없다.
카운터에 놓았다.
세림이 안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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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무른 거잖아."
"의뢰를 무른 거야."
내가 말했다.
"항목은 네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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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종이를 봤다.
한참 봤다. 집지는 않고 눈으로만 세 줄을 위에서 아래로 갔다.
`열일곱 겨울, 현관 비밀번호`
`졸업식 날 아침`
`이천십육년 이월, 어머니가 준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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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들어간 날이야."
세림이 말했다.
"셋째는 나간 날이고."
"…….."
"둘째는."
세림이 손끝으로 가운데 줄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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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있었던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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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조용했다.
바깥에서 아이 둘이 뛰어갔다. 토요일 오전에는 학원 차가 골목에 서기 때문에 아이들이 뛴다.
세림이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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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졸업식 날 아침에 미역국 있었어."
"알아."
"…….."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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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끓였잖아."
"그날 네 것도 있었어."
세림이 말했다.
"근데 내 거는 따로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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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다.
"따로라니."
"냄비가 두 개였어."
세림이 카운터 모서리를 짚었다.
"큰 냄비에 네 거랑 어머니 거랑 있고, 작은 냄비가 하나 더 있었어."
"…….."
"왜 두 개야."
"내가 소고기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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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그 말을 하고 나서 잠깐 있었다.
"어머니가 그거 언제 아셨는지 나는 몰라. 물어본 적 없어."
"…….."
"두 해 있었는데 한 번도 안 물어보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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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아침을 떠올려 봤다.
떠오르는 것은 미역국 냄새하고 교복하고, 엄마가 부엌에 서 있던 뒷모습이다. 냄비가 몇 개였는지는 안 떠오른다.
나는 그날 내 것만 먹었다.
세림이 뭘 먹었는지 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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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아."
"응."
"나는 그거 몰랐어."
"알아."
세림이 카운터에서 손을 뗐다.
"나도 오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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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세림이 종이를 집었다.
집어서 뒤집었다. 뒷면은 백지다.
"이거 뒤에 써도 돼?"
"안 돼."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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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건 항목 종이야."
"…….."
"항목이랑 편지를 한 장에 쓰면 나중에 어느 게 어느 건지 몰라."
세림이 웃었다.
"그건 또 무슨 규칙이야."
"내 규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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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세림이 사 간 백 그램을 가리켰다.
"거기다 써."
세림이 그 종이를 폈다.
접힌 자리가 하나다. 어제 한 번 접었고 집에서 세 번 폈다 접었으니까 자국이 깊다.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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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한 줄을 썼다.
쓰는 동안 나는 봤다. 손님이 쓸 때는 안 보는데 세림은 손님이 아니다.
`졸업식 날 아침에 냄비가 두 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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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펜을 놓았다.
"이거 맞아?"
"뭐가."
"이렇게 시작해도 돼?"
"돼."
"…….."
"고맙다는 말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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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뒤에 와."
내가 말했다.
세림이 종이를 봤다.
"뒤에 뭐가 오는데."
"그건 네가 쓰면서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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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펜을 다시 들었다.
들고 십 초쯤 있다가 놓았다.
놓고 그 한 줄을 다시 읽었다.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니 소리를 안 내고 읽는 것이었다.
두 번 읽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래."
"응."
세림이 종이를 접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적힌 종이를 접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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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적힌 종이를 가방에 넣었다.
넣고 앞치마를 고쳐 맸다.
"수진아."
"응."
"어제 그 방법 말이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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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님한테 하는 거 보니까 알겠더라."
세림이 진열대로 갔다.
"말로 들을 때는 무슨 소린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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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에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이재였다.
여덟 시가 아니고 네 시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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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문 안쪽에 서서 안을 봤다.
세림이 진열대에서 돌아섰다.
"이재 씨."
"세림 씨."
두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나는 오랜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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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닦을 게 없는데 닦았다.
"저 안에 좀 있을게요."
세림이 그렇게 말하고 안쪽으로 갔다. 창고 문을 반쯤 열어 두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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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손에 든 것을 카운터에 놓았다.
종이 봉투였다. 문구점에서 주는 것이고 위가 접혀 있었다.
두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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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봤다.
문구점 봉투는 우리 진열대에도 있다. 옆집에서 파는 것이고 한 장에 삼백 원이다. 어제 어머니가 들고 온 것도 같은 것이었다.
이 골목에서 종이를 담아 오는 사람은 다 저 봉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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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옆면이 부풀어 있었다. 종이가 여러 장 들었을 때 나오는 두께다.
몇 장인지는 만져 보면 안다.
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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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씨."
"네."
"이거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
"뭡니까."
이재가 봉투 위를 폈다.
---
"열네 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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