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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나에게 보낼 편지를 나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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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열한 시에 손님이 왔다. 마흔쯤 된 여자였고 들어와서 봉투를 안 봤다. 바로 카운터로 왔다. "편지 하나 부탁드릴게요." "앉으십시오." --- 여자가 손님 의자에 앉았다. 가방을 무릎에 놓고 두 손을 그 위에 얹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기다렸다. --- "항목만 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항목이요?" "하고 싶은 말을 낱개로요. 문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 여자가 손가락을 하나 폈다. "작년 여름에 병원에 같이 가 줬어요." "…….." "두 번째는요." "제 결혼식에 안 왔어요." --- 세 번째는 오래 걸렸다. 여자가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올해 제 생일에 문자가 왔어요." "…….." "뭐라고요." "'생일 축하해'요. 다섯 글자." --- 나는 세 개를 적었다. `작년 여름 병원` `결혼식에 안 옴` `생일 문자 다섯 글자` 적고 나서 여자를 봤다. "어느 게 제일 말하기 쉽습니까." "세 번째요." --- "그럼 세 번째부터 쓰겠습니다." 나는 새 종이를 꺼냈다. 펜을 들었다. --- 첫 줄이 안 나왔다. 여덟 해 동안 첫 줄이 안 나온 적이 없다. 항목이 셋이면 셋 중 하나를 골라 앞에 놓고 그다음은 손이 한다. 손이 안 갔다. --- 펜 끝이 종이에 닿아 있었다. 닿아 있으면 잉크가 번진다. 오래 대고 있으면 점이 하나 생긴다. 점이 생겼다. 나는 그 점을 봤다. ---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나는 대개 손을 쉬지 않는다. 쓰는 중이라는 게 보이면 사람이 안 불안하다. 오늘은 손이 멈춰 있었고 여자가 그것을 봤다. --- 나는 종이를 한 번 봤다. `생일 축하해` 이 다섯 글자로 시작하려면 앞에 뭘 놓아야 하는지 나는 안다. 오늘 받았다고 쓰거나, 오래 못 봤다고 쓰거나, 다섯 글자였다고 쓰면 된다. 셋 다 쓸 수 있다. 셋 중에 어느 것도 내가 정할 수 없었다. --- "선생님?" 여자가 불렀다. "네." "천천히 하셔도 돼요." "…….." "네." ---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새 면에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부터 써 보려고 했다. 결혼식에 안 왔다는 것. `제 결혼식에` 거기서 멈췄다. --- `제`가 누구인지 나는 안다. 이 여자다. 그런데 이 문장을 쓰는 사람은 나다. 여덟 해 동안 나는 이 자리에서 한 번도 그 생각을 안 했다. 손님이 «제»라고 하면 나는 «제»라고 적었고, 적으면 그 «제»는 손님의 것이 됐다. 오늘은 안 됐다. --- 펜을 놓았다. "손님." "네." "오늘은 못 쓰겠습니다." --- 여자가 나를 봤다. "왜요." "…….." "안 나옵니다." --- "제가 뭘 더 말씀드려야 돼요?" "아닙니다." "…….." "항목이 부족해요?" "셋이면 충분합니다." --- 여자가 가방끈에서 손을 뗐다. "그럼 뭐가 문제예요."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손님이 아닙니다." --- 여자가 가방을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저 이런 데 처음 와요." "…….." "오는 데 두 달 걸렸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다. "…….." "제가 오늘 못 쓰는 겁니다. 다른 데서는 됩니다." "다른 데가 어딘데요." "…….." "이 동네에는 없습니다." 여자가 웃지 않았다. --- 여자가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었다. "그러면 선생님이에요?" "그렇습니다." "…….." "아프세요?" "아니요." --- 나는 종이 두 장을 그 앞에 놓았다. 하나는 항목 셋을 적은 것이고 하나는 반 줄만 쓴 것이다. "이건 가져가십시오." "이걸요?" "손님이 주신 겁니다." --- 여자가 그것을 집었다. 집어서 접었다. "돈은요." "안 받습니다." "…….." "쓰다 만 것도 값이 있지 않아요?" "없습니다." --- 여자가 일어섰다. 일어서서 잠깐 서 있었다. "선생님." "네." "저 사실 뭐라고 쓸지 정하고 왔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다. "…….." "근데 정하고 오면 안 되는 거였죠." "그건 아닙니다." "…….." "정하고 오시는 분이 더 많습니다." "선생님." "네." "다음 주에 다시 와도 돼요?" --- 나는 그 질문을 받았다. "…….."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는 게 문 닫는다는 뜻이에요?" "그건 아닙니다." ---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와 볼게요."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문이 닫히고 나서 골목 쪽으로 발소리가 났다. 오른쪽으로 갔다. --- 세림이 진열대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앞치마 끈에 손을 얹은 채로 서 있었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카운터를 정리했다. 정리할 게 없어서 펜을 통에 넣고 종이를 한쪽으로 밀었다. --- "수진아." "응." 세림이 왔다. "저 손님 그냥 갔어?" "응." "…….." "값 안 받았어?" "안 받았어." --- 세림이 더 안 물었다. 물으려다 안 물은 게 아니라 물을 게 없어서 안 물은 얼굴이었다. 카운터 옆에 서 있다가 진열대로 돌아갔다. --- 돌아가다가 한 번 섰다. "수진아." "응." "어제 그 사람이 뭐라고 했다고 했지." "…….." "많았대." "응." 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세림도 답을 기다리지 않고 갔다. --- 오후에 손님이 둘 더 왔다. 하나는 봉투를 샀고 하나는 겉봉 이름 두 장을 맡겼다. 이름 두 장은 십 분에 썼다. 썼다. --- 겉봉은 써진다. 이름은 손님 것이고 나는 옮기기만 한다. 옮기는 것과 만드는 것이 다르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여덟 해 동안 그 둘을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 두 시에 서랍 아래 칸을 열었다. 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봉투를 다 꺼내서 카운터에 놓았다. --- 열두 개였다. 세어 본 적이 없다. 여덟 해 동안 하나씩 늘 때마다 한 개 늘었다고만 알았고, 다 꺼내서 한 번에 센 적은 없다. 한 줄로 놓으니 카운터 반이 찼다. --- 나는 하나씩 만졌다. 두께가 다 다르다. 한 장짜리가 여섯이고 두 장짜리가 넷이고 세 장이 둘이다. 제일 두꺼운 것은 사 년 전 것이다. 그 손님은 열두 줄을 부탁했고 열두 줄은 한 장에 안 들어간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 겉면에 이름이 있는 것이 일곱이었다. 없는 것이 다섯이다. 이름이 있는 것은 받는 사람을 정하고 가신 분들이고, 없는 것은 안 정하고 가신 분들이다. --- 나는 이름 있는 일곱을 왼쪽에 놓았다. 없는 다섯을 오른쪽에 놓았다. 놓고 나서 오른쪽을 봤다. --- 세림 것이 거기 있다. 어머니 것도 거기 있다. 어머니 것은 겉면에 `오세림` 세 자가 있으니 왼쪽이어야 하는데, 그건 어머니가 세림에게 보낸 것이고 세림이 여기 둔 것이라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 나는 그것을 가운데에 놓았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자리다. 놓고 나서 손을 뗐다. --- 일곱, 다섯, 하나. 합이 열셋이 됐다. 열두 개인데 열셋이 됐다. --- 나는 다시 세었다. 왼쪽 일곱, 오른쪽 넷, 가운데 하나. 열둘이 맞았다. 아까 오른쪽을 다섯으로 셌는데 그중 하나가 가운데로 갔다. 옮겨 놓고 옮긴 것을 안 뺐다. --- 세림이 진열대에서 소리를 내어 셌다. 흰 큰 것 스물넷. 흰 작은 것 스물아홉.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카운터를 봤다. --- 세 무더기가 있었다. 가운데 것은 한 개다. 한 개짜리 무더기를 무더기라고 부를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 어제 이면지에 선을 하나 그었다. 오늘은 카운터에 무더기를 셋 만들었다. 둘 다 내가 했고, 둘 다 아무도 안 시켰다. --- 나는 가운데 것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옮기고 나서 다시 가운데로 가져왔다. 두 번 그렇게 하고 가운데에 뒀다. --- 여섯 시에 문을 닫았다. 열두 개를 상자에 도로 담았다. 담을 때 순서를 안 지켰다. 어차피 상자에 들어가면 다 섞인다. 뚜껑을 덮었다. --- 서랍에 넣기 전에 상자를 한 번 들어 봤다. 가벼웠다. 여덟 해 치가 이만큼이다. --- 넣고 서랍을 닫았다. 닫고 카운터 밑을 봤다. 열쇠가 못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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