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하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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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걸었다.
넷째 자리까지 엿새라고 했으니 절반이다.
길이 넓어졌다. 셋째 자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들이 나오고, 들에는 마을이 촘촘하다. 반나절에 하나씩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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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저녁에 전대를 셌다.
주막 마루에서 한지운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셈을 셀 때 옆에 사람이 있으면 두 번 세게 된다.
두 번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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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로 돌아온 값이 있고, 마유의 외상이 있고, 도가에게 낸 관값이 있다.
셋을 빼고 남은 것으로 회읍까지 가려면 모자란다.
얼마나 모자라는지는 셀 수 있었다. 모자라는 것을 아는 것과 그다음에 뭘 하느냐는 다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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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표사."
한지운이 마루 끝에 앉았다.
"셈이 안 섭니까."
"섭니다."
"…….."
"모자란다는 셈이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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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보퉁이를 열지 않았다.
"제 것도 있습니다."
"압니다."
"…….."
"안 쓰시겠지요."
"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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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더 안 말했다.
이 사람은 두 번 권하지 않는다. 권해서 될 일이면 한 번에 되고, 안 될 일이면 두 번째가 무례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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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아침에 마을에 들어갔다.
장날이었다.
길가에 좌판이 늘어서 있고 소달구지가 셋 서 있었다. 사람이 많고 소리가 컸다.
장터 끝에서 남자 하나가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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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질 사람 없소!"
서진하가 걸음을 멈췄다.
"오늘 나룻배가 두 번 뜨는데 지고 갈 사람이 모자라오! 하루치 쳐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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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그쪽으로 갔다.
"몇 명 필요합니까."
남자가 그를 위아래로 봤다. 등에 진 것을 보고 눈이 잠깐 멈췄다.
"그거 지고는 못 하오."
"압니다."
"…….."
"내려놓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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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좌판 뒤를 가리켰다.
"저기 두시오. 우리 창고요."
"창고 주인이 누굽니까."
"나요."
"성함이요."
남자가 눈썹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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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런 걸 묻소."
"맡기는 겁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맡기려면 누가 맡는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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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잠깐 있다가 대답했다.
"방가요. 방칠수."
"서진하입니다."
"…….."
"연수표국 표사입니다."
"그런 국은 못 들었소."
"없어진 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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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창고 안을 봤다.
가마니가 벽을 따라 쌓여 있고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지붕에서 볕이 한 줄 들어왔다. 흙바닥이고 물이 든 자국은 없었다.
문은 걸쇠였다. 자물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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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궤짝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놓았다. 창고 바닥이 흙이라 소리가 안 났다.
내려놓고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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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굽힌 채로 봉인을 봤다.
둘이다. 위쪽 것은 사십 년 됐고 아래쪽 것은 그보다 뒤에 붙었다. 둘 다 뜯긴 자국이 없다.
손끝으로 두 번 짚었다.
"방 어르신."
"말하시오."
"여기 봉인이 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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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칠수가 몸을 숙였다.
"그렇구려."
"보셨습니까."
"봤소."
"…….."
"제가 돌아왔을 때도 둘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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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칠수가 허리를 폈다.
"내가 뭘 뜯겠소."
"안 뜯으실 겁니다."
서진하가 일어섰다.
"그런데 지금 보신 게 둘이라는 걸 어르신도 알고 저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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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가 다르오."
"저녁에 하나가 없으면 누가 뜯었는지를 따집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둘인 걸 지금 같이 봤으면, 저녁에 둘이면 아무도 안 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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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칠수가 웃었다.
"별걸 다 하는구려."
"별거 아닙니다."
"…….."
"그럼 다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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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옆에서 보퉁이를 열었다.
책과 붓을 꺼냈다.
새 책 앞장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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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방칠수의 창고에 궤를 맡김. 봉인 둘, 뜯긴 자국 없음. 맡는 이와 맡기는 이가 같이 봄.`
한지운이 적고 붓을 뗐다.
"어르신."
"또 뭐요."
"여기 성함 한 자만 적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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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칠수가 붓을 받았다.
받아서 한참 들고 있었다.
"내가 글을 모르오."
"그러면 표를 하십시오."
한지운이 종이를 밀었다.
"동그라미도 되고 작대기도 됩니다. 어르신이 하신 것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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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칠수가 작대기를 두 개 그었다.
가로 하나, 세로 하나. 열십 자였다.
한지운이 그 옆에 적었다.
`방칠수 본인이 그림. 십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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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창고를 나왔다.
나오면서 뒤를 안 돌아봤다.
돌아보면 확인이 되고, 확인은 방금 만든 절차를 자기 손으로 무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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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는 낮에 두 번 떴다.
첫 배에 소금 가마니를 실었다. 한 가마니가 서진하 궤짝보다 무거웠고, 장터에서 나루까지가 삼백 걸음이었다.
여섯 번 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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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걸음이 안 맞았다.
가마니를 어깨에 올리는 자리가 궤짝 끈 자리보다 위다. 위로 올리면 목이 눌리고 목이 눌리면 앞이 좁게 보인다.
두 번째부터 자리를 반 뼘 내렸다.
내리니까 앞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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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왕복에서 어깨의 자리가 아팠다.
이틀 전에 궤짝 끈이 눌렸던 자리다. 소금 가마니는 끈이 없어서 어깨로 직접 받는다. 받는 자리가 같았다.
세 번째부터는 반대쪽으로 졌다.
반대쪽으로 지면 걸음이 반 뼘 짧아진다. 삼백 걸음이 삼백스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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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국밥이 나왔다.
일하는 사람들이 나루 옆에 앉아서 먹었다. 서진하도 앉았다.
앉을 때 등이 가벼워서 한 번 휘청했다. 아침에 궤를 내려놓고 여섯 번을 지고 다녔는데도 등은 아직 궤가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물었다.
"어디서 왔소."
"북쪽에서 왔습니다."
"어디 가시오."
"회읍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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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멀지."
"멉니다."
"…….."
"뭐 하러 가시오."
서진하는 국밥을 한 술 떴다.
"짐 갖다 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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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웃었다.
"그럼 우리랑 같은 일이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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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배는 해가 기울어서 떴다.
마지막 가마니를 싣고 나니 손바닥이 벗겨져 있었다. 소금이 묻어서 쓰렸다.
방칠수가 삯을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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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요."
동전을 헤아려 손에 놓았다.
서진하가 그것을 받았다.
받아서 세지 않고 전대에 넣었다.
들어가면서 동전이 아래쪽 것들에 부딪혔다. 아침보다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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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세시오?"
"어르신이 세셨습니다."
"내가 잘못 셌으면."
"그러면 잘못 셌겠지요."
방칠수가 허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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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로 갔다.
궤짝이 아침에 놓은 자리에 있었다. 흙바닥에 눌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위에 궤가 얹혀 있다.
서진하가 무릎을 굽혔다.
봉인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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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었다.
"어르신."
"보시오."
"둘입니다."
방칠수가 옆에 와서 같이 봤다.
"둘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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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책을 폈다.
`저녁에 찾음. 봉인 둘. 맡는 이와 찾는 이가 같이 봄.`
적고 나서 방칠수에게 붓을 내밀었다.
방칠수가 이번에는 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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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했잖소."
"찾을 때도 합니다."
"…….."
"두 번 하오?"
"두 번 합니다."
방칠수가 붓을 받아서 열십 자를 하나 더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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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궤짝을 들었다.
두 손으로 들어 등에 얹었다. 끈을 어깨에 걸었다.
오른쪽 어깨였다.
왼쪽은 오늘 소금을 받은 자리라 걸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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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를 나오는데 방칠수가 뒤에서 불렀다.
"표사."
서진하가 돌아섰다.
"그 궤 안에 뭐 들었소."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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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칠수가 눈을 좁혔다.
"모르는 걸 지고 다니오?"
"그렇습니다."
"…….."
"그럼 왜 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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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한지운이 같은 것을 물었고 그때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께는 «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오늘은 그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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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대신 궤짝 끈을 한 번 고쳐 쥐고 고개를 숙였다.
숙이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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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나와서 들길로 접어들었다.
한지운이 반 걸음 뒤에서 걸었다.
"서 표사."
"네."
"오늘 것 앞장에 적었습니다."
"…….."
"맡긴 것도 길입니까."
"짐이 손을 떠나 있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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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걸으면서 적었다.
서진하는 뒤를 안 봤다.
해가 다 넘어가기 전에 다음 마을까지 가야 했고, 어깨가 아픈 쪽으로 지면 걸음이 짧아진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오늘은 오른쪽으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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