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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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데 한 식경이 걸렸다.
내려올 때는 반이면 됐던 길이다. 노인이 지팡이를 먼저 놓고 몸을 뒤에 옮긴다.
한 걸음에 숨이 한 번씩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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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뒤에서 걸었다.
앞질러 가지 않았다. 앞질러 가면 노인이 빨리 걷는다.
한지운이 맨 뒤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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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에서 노인이 섰다.
서서 아래를 봤다. 여기서는 팻말이 안 보인다. 나무가 가린다.
"저기가 안 보이는군요."
"안 보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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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 동안 안 보였습니까."
"보였소."
노인이 지팡이를 고쳐 짚었다.
"나무가 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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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한 사람 폭이다.
풀이 가운데만 안 나 있고 양쪽은 무릎까지 온다. 한 사람이 사십 년 다닌 폭이다.
서진하가 그 폭 안으로 발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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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두 번 쉬었다.
두 번 다 같은 돌에 앉았다. 첫 번째 돌은 길 왼쪽에 있고 두 번째는 오른쪽에 있다.
앉는 자리만 이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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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는 몇 번째입니까."
"일곱 번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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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여기 것입니까."
"여기 것이오."
노인이 지팡이 끝을 봤다.
"아래 것은 굵어서 무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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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은 바위에 기대어 있다.
앞쪽만 나무를 세우고 뒤는 바위다. 지붕에 돌을 얹었는데 그 돌이 눌린 자리가 나무에 패여 있다.
패인 깊이가 한 치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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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문턱에 앉았다.
안 들어가고 문턱에 앉아 지팡이를 무릎에 걸쳤다.
서진하는 마당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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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라고 할 것이 세 걸음이다.
한쪽에 물 받는 통이 있고 반대쪽 바닥이 다른 데보다 단단하다. 밟으면 소리가 다르다.
밟아 보고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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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다.
떨어지는 자리가 통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다. 바위가 닳아서 물길이 옮겨 갔을 것이다.
통 가장자리 한쪽만 깊게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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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쪽에 나무 궤가 보인다.
어제 노인이 끈을 꺼낸 그 궤다. 뚜껑에 걸쇠가 없고 그냥 얹혀 있다.
"저 궤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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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담는 거요."
"…….."
"다른 건 없습니까."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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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더 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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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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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여쭌 것을 다시 여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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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서진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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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말에 여기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
"무엇이 여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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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대답을 안 했다.
어제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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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기다렸다.
한지운이 붓을 꺼내지 않았다. 통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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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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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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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십니까."
"모르오."
"…….."
"그 사람이 여기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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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그 말을 받지 않았다.
받으면 다음 말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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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손가락으로 마당의 단단한 자리를 짚었다.
거기에 두 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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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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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이 굵고 흙이 밀려 났다.
끝을 끝까지 안 긋고 중간에서 멈춘다. 다음 글자로 가려고 힘을 이어 두는 손이다.
서진하가 그것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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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붓을 들었다.
들고 안 적었다. 어제 산에서 틀린 줄을 아래에 정정해 적은 손이다.
오늘은 종이를 안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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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아십니까."
"배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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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배우셨습니까."
"지나가던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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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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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손바닥으로 글자를 지웠다.
지우고 다시 썼다. 같은 자리에 쓴다. 스물세 해쯤 그 자리에 썼을 것이다.
"소금을 마흔여섯 번 받고 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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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에 두 번 받으니 스물세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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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몇 번 왔습니까."
"세 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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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에 배우셨습니까."
"세 번 만에 외웠소."
노인이 손을 털었다.
"첫 번에는 못 외웠고 두 번째에 반을 외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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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에는요."
"다 외웠소."
"…….."
"그때 세우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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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마당의 글자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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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세우라고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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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리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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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라고만 했소. 말로만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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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자리는."
"내가 정했소."
노인이 아래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끈 주운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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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숨을 한 번 쉬었다.
끈 주운 데에서 바위까지가 마흔 걸음이다. 오늘 아침에 걸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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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걸음은 여기와 저기다.
궤를 내려놓은 자리가 바위 아래고, 끈이 떨어진 자리가 마흔 걸음 밖이다. 팻말은 끈 쪽에 서 있다.
말로만 들은 사람이 둘 중 하나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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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께서 고르신 겁니까."
"골랐다고 할 것도 없소."
노인이 지팡이 끝으로 흙을 한 번 눌렀다.
"거기 끈이 있었소. 그래서 거기 세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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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는 안 보셨습니까."
"안 들어갔소."
"…….."
"어제 처음 들어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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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한지운 쪽을 봤다.
한지운은 붓을 쥔 채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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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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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무엇을 지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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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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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두 번째는 속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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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등이 곧았소."
"…….."
"나이는요."
"나보다 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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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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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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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문턱에서 자세를 고쳤다.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끌어 놓았다. 무릎 아래가 안 펴진다.
"세 번 다 안 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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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요."
"뭐요."
"…….."
"그 사람은 어르신께 무엇을 물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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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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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에 물이 한 번 더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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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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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말입니까."
"아무것도요."
노인이 손을 무릎에 놓았다.
"그날 밤 일을 안 물었소. 세 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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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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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글자만 가르치고 갔습니까."
"그랬소."
"…….."
"묻지도 않고요."
"묻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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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아래를 봤다.
나무에 가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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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게 없으면 안 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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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한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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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지운도 안 했다. 붓은 아직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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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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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적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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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붓을 내렸다.
"적을 것이 둘입니다."
"…….."
"하나는 어제 들은 소리고 하나는 스물세 해 전 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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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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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으면 제가 잇는 게 됩니다."
한지운이 그렇게 말했다.
"두 개를 나란히 놓을 수는 있습니다. 놓을 자리가 아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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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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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당신이 부른 두 자 말이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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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두 자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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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마당의 글자를 봤다.
`此地` 두 자가 아직 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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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봤다.
무릎 위에서 손가락이 한 번 움직였다. 획을 긋는 모양이다가 멈췄다.
멈추고 손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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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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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대답을 못 했다.
대답할 것이 없다. 어제 들은 소리와 스물세 해 전 손을 이어 볼 재료가 없다.
노인도 없고 자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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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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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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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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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지팡이를 도로 집었다.
"그러면 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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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문턱 쪽으로 반 걸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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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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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제 그 두 자를 말했습니다."
"말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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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말했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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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서진하를 봤다.
한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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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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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게 나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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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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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마당의 글자를 봤다.
보다가 발을 뻗어 흙을 밀었다. 두 자가 없어졌다.
없애고 나서 그 자리를 발로 한 번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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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 번 다 안 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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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지팡이를 무릎에 올렸다.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한 번 훑었다. 손날의 굳은살이 지팡이에 닿는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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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붓을 들고 있었다.
들고 안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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