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괴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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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셋이 내려갔다.
노인이 앞서고 서진하가 뒤에 섰다. 한지운이 맨 뒤다.
궤짝은 움막에 두고 왔다. 서진하가 문을 닫고 한 번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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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말 앞을 지나쳤다.
노인이 거기서 안 섰다. 지팡이로 팻말을 한 번 짚고 지나갔다.
"저기가 아닙니까."
"저기는 표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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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의 표시입니까."
"내려가는 데의 표시요."
노인이 오른쪽으로 갔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마흔 걸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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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빽빽해졌다.
풀이 없고 낙엽만 깊었다. 위가 가려서 비가 덜 드는 자리다.
마흔 걸음쯤 가니 바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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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처마처럼 나와 있었다.
아래가 오목하고 어른 셋이 앉을 만하다. 안쪽은 흙이 말라 있었다.
낙엽이 얕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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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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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앉았다.
손으로 낙엽을 걷었다. 마른 것이 위에 있고 삭은 것이 아래에 있다. 삭은 것을 걷으니 흙이 나왔다.
흙 위에 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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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만 한 것이다.
한 뼘쯤 떨어져 또 하나가 있었다. 걷어 보니 셋째가 나오고 넷째가 나왔다.
넷이 사각으로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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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임돌입니다."
한지운이 그렇게 말했다.
"궤를 땅에 바로 안 놓습니다. 습기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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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넷 사이를 재 봤다.
한 자 반쯤이다. 자기 궤짝이 한 자 반이다.
돌 윗면이 닳아 있었다. 손으로 쓸어 보니 매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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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가 다 그랬다.
옆면은 거칠고 윗면만 매끄럽다. 냇가에서 주운 돌이면 사방이 다 닳는다.
이건 한쪽만 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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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얹혀 있었다는 뜻이다.
얹힌 것이 무거우면 돌이 흙에 박힌다. 손가락을 넣어 보니 반 치쯤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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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서진하가 옆으로 갔다.
"어르신."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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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을 놓으셨습니까."
"안 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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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낙엽을 더 걷었다.
돌 사각에서 두 자쯤 옆이다. 거기서 또 돌이 나왔다.
하나가 나오고 둘이 나오고 셋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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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가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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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더 걷었다.
바위 안쪽까지 걷고 밖으로도 걷었다. 낙엽을 다 밀어 놓고 손으로 흙을 훑었다.
넷째 자리에는 흙이 오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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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있었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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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주위를 봤다.
두 걸음 밖에 돌이 하나 굴러 있었다. 주먹만 하고 한쪽 면이 닳아 있다.
집어서 오목한 데에 놓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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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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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그것을 봤다.
"빠진 겁니까."
"빠진 게 아닙니다."
서진하가 돌을 도로 들었다.
"빠지면 옆으로 눕습니다. 이건 두 걸음 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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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찼습니까."
"찼거나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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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두 무리를 나란히 봤다.
하나는 넷이 다 있고 하나는 셋이다. 사이가 두 자다.
두 자면 사람 하나가 서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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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책을 폈다.
`바위 아래. 괴임돌 두 무리. 하나는 넷, 하나는 셋.`
`빠진 넷째 돌은 두 걸음 밖에 있음. 아귀가 맞음.`
`두 무리 사이 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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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서진하가 노인 쪽으로 돌아앉았다.
"어르신."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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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끈이 한 짝이라 하셨습니다."
"한 짝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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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궤가 둘 있었습니다."
노인이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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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면 끈이 넷입니다."
서진하가 말했다.
"한 짝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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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지팡이를 무릎에 놓았다.
"셋은 안 봤소."
"…….."
"안 보셨습니까, 없었습니까."
"안 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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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바위 밖을 봤다.
"나는 여기 안 들어왔소."
"…….."
"어제 안 밟았다 하신 게 그 말입니까."
"그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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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은 어디 있었습니까."
노인이 지팡이로 밖을 가리켰다.
"저 밖이오. 팻말 세운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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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일어섰다.
바위 밖으로 나가서 팻말 쪽을 봤다. 마흔 걸음이다.
여기서는 바위 아래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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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앉았다.
바위 아래는 그늘이라 한낮에도 어둡다. 밖에서 보면 낙엽 덮인 비탈로만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은 여기가 있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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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은 사십 년 동안 이 아래를 안 보셨습니다."
"안 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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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보셨습니까."
노인이 지팡이를 한 번 짚었다.
"무서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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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그 말을 받았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밤에 소리가 났고 아침에 끈이 있었소. 사람은 없었소. 그러면 안쪽에 뭐가 있는지 안 보는 게 낫소."
"…….."
"보면 치워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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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면 어떻게 됩니까."
"치운 사람이 되오."
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성이 없소. 성이 없는 사람이 시체를 치우면 그게 내가 한 일이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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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그것을 적었다.
적는 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노인이 마른 잎을 하나 집어 손에서 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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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 알리지는 않으셨습니까."
"안 알렸소."
"…….."
"관이 오면 누가 봤느냐고 묻소."
노인이 부순 잎을 털었다.
"본 사람이 나뿐이면 나만 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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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붓을 멈췄다.
"어르신."
"말하시오."
"사십 년 동안 아무한테도 안 하셨습니까."
"할 사람이 없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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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 왔다 하셨습니다."
"나무꾼은 나무를 하러 오오."
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소금 파는 사람은 소금을 팔러 오오. 사십 년 만에 짐을 지고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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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고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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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고개를 들었다.
노인이 손을 털었다.
"어제 말은 안 들렸다 했소."
"하셨습니다."
"…….."
"한 마디는 들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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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입니까."
"두 자요."
노인이 말했다.
"사십 년 동안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소. 사람 이름인 줄도 몰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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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셨습니까."
"어제 알았소."
노인이 서진하를 봤다.
"어제 당신이 그 두 자를 말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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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움직이지 않았다.
한지운의 붓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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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단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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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가 조용했다.
밖에서 새가 한 번 울고 그쳤다.
한지운이 붓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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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쪽입니까, 낮은 쪽입니까."
서진하가 물었다.
노인이 잠깐 있었다.
"낮은 쪽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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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쪽이 부른 겁니까."
"낮은 쪽이 그 두 자를 냈소."
노인이 말했다.
"높은 쪽은 두 자를 안 냈소. 소리만 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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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다시 붓을 들었다.
`낮은 소리가 「오단」 두 자를 냄. 높은 소리는 말이 아니었음.`
`노인은 어제까지 그것이 이름인 줄 몰랐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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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품에서 끈을 꺼냈다.
어제 움막에서 받아 넣은 것이다. 낙엽 위에 폈다.
매듭 쪽을 넷 있는 돌 무리에 놓고 풀린 쪽을 셋 있는 무리 쪽으로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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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 반이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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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닿습니다."
한지운이 말했다.
서진하가 끈을 도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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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끈은 어깨에 거는 쪽입니다."
서진하가 매듭을 짚었다.
"이쪽을 궤에 묶고 이쪽을 어깨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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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쪽이 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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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풀린 끝을 다시 만졌다.
실 하나를 당겼다. 힘없이 빠졌다.
옆의 것을 당겼다. 세 번 만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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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은 놓고 한 손은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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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하고 서진하가 손을 뗐다.
노인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한지운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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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십시오."
"…….."
"이건 표사 말입니까, 짐꾼 말입니까."
한지운이 그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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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돌 넷을 봤다.
닳은 면이 위로 와 있다. 사십 년 전에 누가 이 면을 위로 놓았다.
"짐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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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이 적었다.
`풀린 실의 길이와 힘이 제각각. 한쪽은 놓고 한쪽은 잡았다고 함.`
`서진하의 말. 표사의 판정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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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바위 천장에 머리가 닿을 뻔했다. 고개를 숙이고 두 걸음 나갔다.
"올라갑시다."
"…….."
"해가 들면 여기는 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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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가 끈을 걷었다.
걷어서 품에 넣었다. 넣으면서 매듭 쪽을 안쪽으로 오게 돌려 넣었다.
넣기 전에 낙엽을 원래대로 덮었다. 돌 일곱 개가 다시 안 보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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