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국밥 한 그릇의 값

7

펴진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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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늦게 왔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이었다. 어귀는 비었고, 국솥만 종일 끓었다. 곰국이 아니라 맑은 장국이었다. 사골 첫물은 어제 버렸고, 두 번째 물부터 밤새 받아 아궁이를 지켰다. 정만호의 눈 밑이 검었다. 남설은 그 밤 내내 부뚜막 곁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자도 잡지 않았다. 그저 정만호가 부지깽이로 불씨를 모으는 손을, 검 두덩의 굳은살이 불빛에 드러났다 잠기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자, 남설이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정만호의 손이 국자에서 멎었다. 남설은 종이를 폈다. 어미의 글씨였다. 삐뚤고 힘이 빠진 획. 아픈 손으로 쓴 것이었다. 낮은 어깨. 오른팔을 끄는 걸음. 검 두덩에 두꺼운 못. 그리고 마지막 줄—궂은 날 오른 어깨를 문지르는 자. 남설은 그것을 소리 내 읽지 않았다. 정만호도 묻지 않았다. 방 안에 국 끓는 소리만 남았다. "어제," 남설이 종이를 부뚜막에 내려놓았다. "장 파한 값을 이따 받겠다 했지요." 정만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밤새 헤아렸습니다." 남설의 끝이 날카로웠으나, 떨렸다. "어미는 갚을 사람을 찾으라 했지, 벨 사람을 찾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이 종이에 적힌 건, 갚을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벤 사람의 얼굴입니다." 정만호의 오른 어깨가 결렸다. 그는 이번엔 누르지 않았다. 대신 국자를 들어, 식은 뚝배기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냈다. 한 번. 두 번. "어미는 그 둘을 같은 종이에 적었습니다." 남설이 말했다. "갚을 사람과 벤 사람을. 나는 이제껏 그게 다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세 번째 국물이 밥알 속으로 배어들었다. 김이 서리 낀 문살에 닿았다. 정만호가 뚝배기를 남설 앞에 놓았다. "먹어라." 그가 말했다. 그러곤 멈추지 않았다. "……값은, 네가 정해라." 남설은 뚝배기를 보았다. 김이 올랐다. 손을 대지 않았다. "어르신." 남설이 종이를 다시 접었다. 이번엔 품에 넣지 않고, 부뚜막 위,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이 종이의 값을, 국밥으로 받겠느냐 다른 걸로 받겠느냐—그리 물으셨지요." 정만호의 손끝이 뚝배기 전을 눌렀다. "나는 아직 모릅니다." 남설이 말했다. "허나 벨 사람이었다면, 어미가 약값보다 급하다며 십오 년을 찾지 않았을 겁니다. 어미는 갚을 사람을 찾았습니다. 벤 자에게 무얼 갚으라 했을까요." 정만호는 국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깨가 미세하게 굽었다. "차 주인이 안다 했다." 정만호가 낮게 말했다. 대사가 격언이 아니라 고백에 가까웠다. "그 겨울, 그 셈을 누가 붙였는지. 여각 장부 마지막 장에 무얼 적을지." "압니다." 남설이 처음으로 뚝배기에 손을 댔다. 데지 않을 만큼 식은 것을 확인하듯. "어르신 이름은 벤 사람으로 적히겠지요. 붙인 사람은 이름이 안 적힌다 했으니." 정만호가 돌아보았다. "그럼 나는," 남설이 뚝배기를 두 손으로 감쌌다. "여각에 가서, 붙인 사람의 이름을 어미 글씨 옆에 적어 넣을 겁니다. 벤 사람만 적히는 장부는, 반쪽 셈이니 말입니다." 정만호의 굳은살 박인 손이 잠깐 떨렸다. "위험하다." 그가 말했다. "어르신도 아침마다 위험을 끓이시지 않습니까." 남설이 국물을 한 술 떴다. 밥알 속까지 온기가 배어 있었다. 서두르지 않은 토렴이었다. "장 파한 값입니다. 이제 받았습니다." 바깥 어귀에 눈이 다시 내렸다. 여각 쪽에만 불이 밝았다. 그 불빛 아래 두꺼운 장부 한 권이, 이제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만호는 오른 어깨를 눌렀다. 남설이 보는 앞에서. 이번엔 감추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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