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첫 공판
법정은 삼 층이었다.
방청석이 스물네 자리였고 절반이 비어 있었다. 기자가 둘 왔고 그중 하나는 삼십 분 만에 나갔다.
나는 뒤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았다.
증인으로 채택되어 있어서 원래는 밖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내 신문은 다음 기일이라 오늘은 방청이 된다고 했다. 태주가 알려 줬고 그도 뒷줄에 있었다.
배준상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회색 재킷이었고 넥타이를 맸다. 경찰서 복도에서 봤을 때보다 자세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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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신문이 끝나고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었다.
읽는 데 십사 분이 걸렸다.
병원 열한 곳, 규칙 마흔일곱 건, 오 개월. 사망자 두 명. 그리고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라는 문장이 붙었다.
두 명이었다.
내가 처음 그 숫자를 들은 날부터 지금까지 두 명이다. 여덟 곳은 아직 안 갔다.
변호인이 일어섰다.
"공소사실 중 규칙세트 배포 및 조건 설정 사실은 인정합니다."
방청석에서 누가 종이를 넘겼다.
"다만 미필적 고의는 부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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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의 주장은 세 갈래였다.
첫째, 규칙은 임상 근거에 기반했다. 소생 지속 시간에 관한 논문이 인용됐고 실제로 그런 논문이 있었다.
둘째, 배포는 정식 절차를 밟았다. 업체 내부 승인이 있었고 병원 계약서에 시스템 갱신 조항이 있었다.
셋째, 이탈 권고는 권고이지 명령이 아니다. 최종 판단은 의료진이 한다.
세 번째에서 검사가 처음으로 반박했다.
"권고라면 왜 담당자 확인을 불요로 설정했습니까."
변호인이 답했다.
"야간 인력 상황을 고려한 것입니다."
"고려하면 확인을 없앱니까."
"확인 절차가 오히려 지연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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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배준상에게 물었다.
"피고인, 그 항목을 직접 설정하셨습니까."
"했습니다."
목소리가 컸다. 나이 든 사람이 강의실에서 쓰던 목소리였다.
"이유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일어섰다. 앉아서 말해도 된다고 했는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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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응급의학과에서 삼십 년 일했습니다. 그중 구 년이 야간 책임자였습니다."
방청석이 조용했다.
"밤에 응급실에 위중한 환자가 셋 오면 우리 인력으로는 둘까지가 한계입니다. 셋째를 누가 정하느냐, 그걸 그날 당직이 정합니다."
"…….."
"삼 년 차가 정합니다. 새벽 세 시에요."
그가 잠깐 멈췄다.
"저는 그 사람들이 무너지는 걸 삼십 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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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물었다.
"그래서 미리 정해 두셨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확인을 없앤 것도 같은 이유입니까."
"확인을 하게 하면 그 사람이 정하는 게 됩니다."
"…….."
"제가 정해 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정한 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바뀝니다."
법정이 조용했다.
나는 뒷줄에서 그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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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일어섰다.
"피고인은 그 규칙으로 몇 명이 살았는지 계산해 보셨습니까."
"했습니다."
"수치가 있습니까."
"모델링 결과가 있습니다."
"그 모델링에 사망 예측치도 있습니까."
배준상이 잠깐 있었다.
"있습니다."
"몇 명입니까."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재판장이 기각했다.
배준상이 대답했다.
"연간 열한 곳 기준으로 삼에서 다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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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석에서 소리가 났다.
누군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였고 그게 조용한 법정에서 들렸다.
검사가 다시 물었다.
"그 숫자를 알고 배포하셨습니까."
"알았습니다."
"…….."
"살리는 쪽이 더 많다고 봤습니다."
"몇 명입니까."
"이십에서 이십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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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숫자를 적지 않았다.
방청석에서는 필기가 안 된다. 기자 하나가 수첩을 꺼내려다 정리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이십오 대 오.
그 비율이면 어느 계산에서도 이긴다. 병원 하나에서 한 해에 스물다섯 명이 더 살고 다섯 명이 덜 산다면, 그건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시스템이다.
수치가 맞다면.
그리고 그 다섯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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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피고인, 그 다섯 명의 이름을 아십니까."
배준상이 처음으로 대답을 늦췄다.
"모릅니다."
"스물다섯 명은요."
"모릅니다."
"…….."
"둘 다 모릅니다. 그게 통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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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배준상에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피고인, 그 시스템을 피고인 가족이 쓰는 병원에 넣으셨겠습니까."
변호인이 이의를 냈다. 재판장이 질문을 바꿨다.
"피고인은 본인이 야간 당직일 때 그 화면이 뜨면 따랐겠습니까."
배준상이 대답했다.
"따랐을 겁니다."
"…….."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만들지 않았다면요."
그가 처음으로 말을 골랐다.
"모르겠습니다."
"…….."
"삼십 년 동안 저는 그 화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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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피고인은 임 아무개 의사를 아십니까."
"모릅니다."
"오월 이십일일 새벽 세 시에 그 화면을 보고 따르지 않은 삼 년 차입니다."
"…….."
"그 사람 환자는 열흘 뒤에 걸어 나갔습니다."
변호인이 이의를 냈고 재판장이 인정했다. 검사가 질문을 철회했다.
철회했는데 법정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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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일은 두 시간 만에 끝났다.
나오는데 복도에서 임 선생을 봤다.
증인으로 왔다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오늘은 신문이 없어서 그냥 간다고 했다. 가운을 안 입고 있었고 손에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들으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밖에서요. 문이 얇습니다."
"…….."
"이십오 대 오 나올 때 옆에 앉은 분이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뜻이냐고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임 선생이 종이컵을 두 손으로 쥐었다.
"제가 오월에 살린 사람이 스물다섯 쪽인지 유월에 못 산 사람이 다섯 쪽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
"그분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둘 다일 수도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임 선생이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까요."
"…….."
"그런데 저는 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복도 끝을 봤다.
"다음 기일에 제가 증인입니다."
"뭘 물을 것 같습니까."
"오월 얘기를 물을 겁니다."
"…….."
"유월은 안 물을 겁니다. 제가 못 본 거니까요."
임 선생이 나에게 목례를 하고 계단으로 갔다.
계단 앞에서 한 번 섰다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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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하성규가 왔다.
여덟 번째였다.
손목을 짚었다. 고르게 왔다.
"오늘 재판 있었다면서요." 그가 말했다.
"있었습니다."
"어땠습니까."
나는 대답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 사람이 숫자를 말했습니다."
"몇이요."
"이십오 대 오요."
그가 그 숫자를 들었다.
"제 명단은 서른하나 대 스물셋이었습니다."
"…….."
"비슷하네요."
"안 비슷합니다."
내가 말했다.
"…….."
"하성규 씨는 이름을 적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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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고름. 결체 없음. 이상 소견 없음.`
`본인 자발 내원.`
여덟 번째 줄을 적고 펜을 놓았다.
영수증을 끊었다. 이름 칸에 세 글자를 적었다.
카본지 사본이 여덟 장이 됐다.
서랍을 닫고 나는 진료실 벽의 종이를 봤다.
`셋. 화면은 이름을 적지 않는다.`
그 아래 여백에 오늘 한 줄을 더 붙일 수도 있었다.
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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